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63세 라이더, ‘자전거 세계여행’의 서막을 열다

by 낮달2018 2023. 1. 3.
728x90
SMALL

[서평] 장호준의 자전거 여행 기록 <자전거로도 지구는 좁다>

▲ 장호준 지음 〈자전거로도 지구는 좁다〉 매일신문사, 22,000원

세 살 터울의 내 친형이 세계를 일주하겠다며 한국은 떠난 것은 2015년 4월이었다. 세계 일주라면 비행기나 열차를 이용하는 여행을 상상하겠지만, 그가 선택한 이동 수단은 자전거였다. 순전히 두 다리의 힘으로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자전거로 세계를 일주하는 건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이라도 마땅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2015년 4월, 60대 라이더 600일의 자전거 여행을 떠나다

물론, 그게 전례 없는 일은 아니지만, 사실상 나는 그걸 응원해야 하는지, 말려야 하는지조차 헛갈렸다. 어쨌든 그해 4월 그를 보내고 나는 블로그에 그의 출발을 알리는 글을 썼다. 그는 만만찮은 준비 끝에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톈진(天津)으로 떠났었다. [관련 글 : 63세 라이더, 세계를 향해 페달을 밟다]

그의 밑천은 두말할 것 없이 한번 꽂히면 끝을 보는 집요함이다. 십 오륙 년 전에 산악자전거(MTB)에 입문한 그는 타고난 체력과 집요함으로 ‘라이딩(riding)’을 즐기기 시작했고, 그렇게 세계를 주유하겠다는 욕망을 키워온 것이었다. 그런 그의 도저한 행동주의 유전자는 피를 나눈 내게는 약에 쓸래도 없는 형질이다.

그는 떠난 지 20개월 만에 노트북에 쟁인 두꺼운 여행 기록, 그리고 사진과 함께 돌아왔다. 중국에서 시작된 그의 자전거 여행은 30,000㎞, 동남아시아, 튀르키예와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를 종단하여 닿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끝났다. 이 책은 2015년 4월 1일, 톈진에 닿은 이래 라오스로 떠난 7월 25일까지, 그가 중국에 머문 116일의 기록이다.

▲ 시안을 떠나는 지은이. 오른쪽은 성벽이다. 사진이 작아서 해상도가 떨어진다.

2007년 대구에서 동해안 통일전망대로 휴가를 떠나기로 한 나는 이동 수단으로써 자전거를 선택했다. 자전거의 시작이었다. 그 1년 후 나는 산악자전거동아리에 가입했다. 한동안 물이 나를 미치게 했던 것처럼 장난처럼 시작한 산악자전거는 내 삶의 절대적 의미가 되었다. 자전거가 이동 수단에서 운동 수단으로 이윽고 오락 수단으로 넘나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지만, 신체적 운동능력은 그저 팀에서 꼴찌는 면하는 그런 정도다. 나는 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한다. 사진 찍기도 좋아한다. 뭔가 조합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사실이다. 나의 이런 성향이 자전거 세계 일주를 계획하게 했으며 이 책을 내게 된 배경이다. 돌이켜봐도 이 여행의 시간은 나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 <자전거로도 세계는 좁다> 책날개에서

길위에서 만나는 타인들로 ‘존재를 확인’하는 여행

자전거 탄다고 해서, 아니 산악자전거를 즐긴다고 해서 누구나 작가가 책날개에서 밝힌 소회처럼 세계 일주를 꿈꾸지 않는다. 일찍이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면서 수중사진을 찍었던 그는 다이빙 여행에서 느꼈던 여행의 갈증을 자전거 세계여행이라는 방식으로 풀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내겐 미지(未知)며 만나는 사람마다 첫 대면’이라면서 ‘여행은 결국 타지에서 타인들을 만나는 것이다. 그 타인들은 그들의 세상 속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며 여행을 풍성하게 해 준다’라고 믿었다.

그리고 2015년 3월에서 7월까지, 중국 베이징(北京), 타이위안(太原), 핑야오(平遥), 시안(西安), 정저우((郑州), 리장( 丽江), 다리(大理), 쿤밍(昆明)을 거쳐 라오스 루앙 프라방에 도착하기까지의 중국 여정을 기록한 이 책으로 그는 자전거 세계여행의 서막을 열었다.

‘자전거 여행’이란 표현은 지극히 중립적이다. 거긴 여행 수단을 건조하게 드러낼 뿐, 여행에 따르는 괴로움이나 외로움, 고달픔 따위는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속 팡파르를 울리며 떠났지만, 그의 자전거 여행은 쉽지 않았다. 도착 첫날에는 공안국 건물 벽에 기대어 비를 피하며 잠들어야 했고, 중국어를 몰라 비자를 연장하는 데 잔뜩 애를 먹었고, 엉뚱한 길로 들어 헤매기도 했다. 때론 좁은 방에서 여러 명과 잠들어야 했고, 때론 산비탈에 야영을 하기도 했다.

▲ 지은이의 자전거 중국 여행의 경로. 톈진에서 출발하여 라오스의 루앙 푸라방으로 넘어가는 데 거의 116일이 걸렸다.

출발 때부터 그의 짐은 전부 열 뭉치였다. 그는 노트북과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 슬리핑백, 텐트, 옷, 자전거 수리 기구 등 60kg의 짐에다 자신의 몸무게 70kg을 보태어 20kg 자전거에 실었다. 여느 사람이라면 바퀴를 굴려 앞으로 나아가는 것조차 쉽지 않은 조건이다.

그런데도 그는 그걸 타고 여행을 이어가면서, 묵을 때마다 노트북을 켜고 그날의 일정과 견문, 소회를 기록했다. 여행 중 여러 차례 탈이 난 컴퓨터를 고치기 위해서 적잖은 고역을 치렀고, 카메라와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들은 아차 하는 순간에 날리기도 하면서 길을 재촉했다.

‘길 위의 친구’들에게 보내는 감사와 사랑

고장 나는 건 컴퓨터뿐이 아니다. 카메라도, 휴대전화도, 무엇보다도 오롯한 이동 수단인 자전거도 지쳐서 퍼진다. 어디 집만 나서면 수리점을 만날 수 있는 대도시도, ‘신속한 에이에스(A/S)’를 자랑하는 대한민국도 아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이고, 망망대해 같은 길 위에서다. 나 같으면 진작에 접었을 여행을 그는 600일이나 이어갔다. 예사롭지 않은 그의 멘탈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초행이어서 끝을 알지 못하는, 미지의 행로를 한결같이 갈 수는 없다. 체력이 허락지 않아 원치 않게 쉬어가야 할 때도 있고, 아름다운 풍광에 마음을 빼앗겨 발걸음을 늦출 때도 있다. 무엇보다도 길에서 만난 벗들과 나누는 우정의 시간도 소중했다. 그가 책의 ‘에필로그’에서 ‘수많은 사람의 도움’을 언급하면서 이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보낸 까닭이다.

길 위에서 만나 연을 맺는 동무들이 하나같이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 그의 휴대전화와 카메라를 슬쩍해 간 우간다의 소매치기나, 휴대전화를 훔쳐 간 중국의 여성 오토바이 여행자들이 그렇다. 그러나 그는 그들에게도 자신의 여행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다며 고마움을 표한다. 삶의 장면마다 명멸하는 기쁨과 슬픔이 어찌 길 위에서라고 모르는 척 비껴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책은 비교적 잘 읽힌다. 그의 글에는 이른바 먹물들이 보여주는 사변적 어휘 따위는 없다. 그는 어떤 현상과 사물이 주는 느낌을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소화해서 독자에게 고스란히 날것으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운영해 온 블로그에 열혈 독자들이 적지 않았던 이유다.

짤막한 단문 위주로 이어지는 글의 호흡은 편안하다. 인물과의 만남과 동행을 표현하는 방식도 현재형의 대화 위주로 구성하여 현장감과 실감을 더 한다. 가는 곳마다 거듭되는 만남과 헤어짐을 마치 현미경을 들이대듯 세밀하게 묘사하는 글인데도 지겹지 않고, 쉬 읽히는 것은 문체가 지닌 힘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 구이린의 치싱공원에서 지은이가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잘 읽히는 책, 후속편은 독자의 응원에 달렸다

600여 일간의 자전거 여행을 그는 4권으로 묶어내고 싶어 하는데 이 책은 그 첫 권이다. 애당초 여행의 전 과정을 한 권으로 묶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그는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깨달았을 것이다. 여정과 상관없이 그 안에 담긴 에피소드만을 가려 뽑는다면, 그건 모험에 가까웠던 이 여행의 맥락을 무시하는 일이기도 했을 터이다.

그러나 후속편은 이 첫 권의 성패에 달려 있다. 이 첫 권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이 일정하게 이루어져야만 후속 작업도 무리 없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펴낸 책의 성패란, 전적으로 시장과 독자에게 달려 있을 뿐, 지은이가 어찌할 수는 없다.

어쨌든, 이 책이 독자들의 호응과 응원으로 시리즈 완간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이는 단순히 책 한 권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에 맞섰던 한 인간의 땀과 도전에 대한 이웃들의 응원과 격려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3. 1. 3. 낮달


 

 

자전거로도 지구는 좁다 : 중국 편

2015년 3월에서 7월, 중국 베이징, 타이위안, 핑야오, 시안, 정저우, 리장, 다리, 쿤밍을 거쳐 라오스 루앙 프라방에 도착하기까지의 기록이다. 호기롭게 떠났지만 자전거 여행은 평탄하지 않았다.

www.aladin.co.kr

 

 

자전거로도 지구는 좁다 : 중국편 - YES24

자전거로도 지구는 좁다 : 중국편

www.yes24.com

 

반응형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