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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한파 …, 돌아온 ‘추운 겨울’

by 낮달2018 202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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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길에서 만나는 가맛골의 논. 농기계가 지나며 팬 논바닥이 꽁꽁 얼어붙었다.

며칠째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겨울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 경상북도 남부지방에선 추위가 끈질기지 않다. 아침에 곤두박질친 수은주도 날이 들면서 이내 영상으로 회복되곤 하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 와서 11년째이지만, 추웠던 겨울이 금방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이는 확실하다.

 

‘춥지도 눈도 오지 않는’ 경북 남부

 

퇴직 전에 마련한 중량 오리털 재킷을 이태나 입지 않았던 이유다. 장시간 바깥 활동을 하지 않는 한, 중무장에 가까운 옷차림이 필요하지는 않은 까닭이다. 좀 가볍게 입었다 싶어도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차니 굳이 두껍고 어둔한 옷을 고를 이유가 없지 않은가.

 

눈도 거의 오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눈은 여기에 온 첫해인 2012년 3월 말께에 드물게 쌓일 정도로 퍼부은 게 다다. 여름에 비도 잘 오지 않는다. 전국에 비가 온다고 예보해도 이 도시는 비껴가기 쉽다. 글쎄, 그게 내 기억의 편향 탓인지, 아니면 실제로 그랬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 벼 그루터기만 남은 논이 얼어붙었다. 어릴 적에 우리가 얼음을 지친 곳은 이보다 물이 더 많아 그루터기가 잠긴 논이었다.

인간의 기억이란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특정한 기억은 객관적 데이터가 아니라, 늘 자신의 주관적 느낌과 판단으로서 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는 매운바람에 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고, 손과 발이 시려서 동동걸음을 쳤던 기억으로 생생하게 떠오른다.

 

1960년대, 그 유년의 겨울 풍경

 

지금보다 옷이나 방한 장구 따위가 형편없어서기도 하지만, 실제로 지금보다 온도가 낮았던 것은 분명하다. 7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산업화 근대화가 시작되었고, 그게 지구 온난화로 이어졌을 테니 말이다. 내가 자란 마을 앞은 낙동강이었는데, 마을 쪽의 샛강은 겨우내 얼어 있었던 거 같다. 거긴 꽝꽝 두꺼운 얼음이 얼어 있지 않으면, 윗부분은 살얼음이 낀 상태였다.

▲ 우리가 어릴 적에 타던 전통 썰매. 날은 굵은 철사로, 송곳에는 대못을 박아 썼다.

우리는 ‘시겟도’(스케이트)라 부른 전통 썰매를 가지고 남몰래 언 강으로 나가기도 했지만, 대체로 마을 근처의 얼어붙은 고논(봇물이 맨 먼저 들어오는 물꼬가 있는 논)에서 썰매를 지쳤다. 추수 뒤 벼 그루터기만 남은 논의 고인 물 위에 언 얼음은 녹거나 꺼져도 신발만 적실 정도여서 절대 안전한 썰매장이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만들어준 썰매를 탔지만, 고학년이 되면서 집안에 굴러다니는 나무를 말라 굵은 철사를 날로 박아 썰매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철사를 불에 달구어 나무에 박아 날을 만들고, 머리를 뭉뚱그린 대못을 달구어 박은 송곳으로 지치는 썰매 타기는 한겨울의 가장 즐거운 놀이였다.

▲ 한강에서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 1960년대 풍경이다.

그 전근대의 풍경이 아직도 어제처럼 떠오른다. 아이들 대부분은 검정 고무신을 신었고, 운동화를 신은 아이들은 드물었다. 구멍 난 양말을 기워 신던 시절이라 손발 시린 게 그중 힘들었다. 옷은 얼마나 허술했는가. 그래도 나일론 잠바라도 하나 걸치면 추위도 두려울 게 없었다.

 

아이들 가운데 장갑을 끼는 아이도 몇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목장갑이라도 낄 만했는데, 목장갑을 낀 아이도 기억에 없다. 원통형의 털모자는 70년대가 지나야 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귀에는 끈이 달린 귀마개를 했는데, 그래도 드러난 귓바퀴가 떨어질 것처럼 시렸다. 그런 형편이었는데도 아이들은 틈만 나면 썰매를 타러 논으로 나오곤 했다.

 

모처럼의 한파, 혹은 지구 온난화

 

최근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아침에만 영하고, 한낮에는 영상인 그런 날씨가 아니라 종일 수은주가 얼어붙은 그런 날들 말이다. 그래도 든든하게 차려입고 걸으러 집을 나섰는데, 어쩌다 살얼음이 끼곤 했던 가맛골의 논에도 얼음이 꽁꽁 얼었다.

▲ 내 휴대전화의 어플의 캡쳐 화면으로 본 요즘 우리 지역 날씨. 영하가 이어지고, 최고 온도가 영하인 날도 있다.

지난 18일 내 휴대전화의 날씨 어플에서 캡처한 화면에서 보는 것처럼 거의 매일 최저기온이 영하다.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날도 있고, 최고 온도가 영하인 날도 이틀이나 있다. 글쎄, 어쩌면 이런 날씨의 패턴은 그동안 익숙한 것일 수도 있으련만,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남은 겨울의 안부가 궁금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구 온난화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 기상 통계에서 최근 10년의 한파일 수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파’는 주로 겨울철 유라시아 대륙에 정체된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그 가장자리를 따라 차가운 북풍이 한반도 등 동아시아 지역에 유입돼 기온이 급강하하는 현상을 이른다고 한다.

 

어릴 적 우리가 썰매를 지치던 그런 논은 아니지만, 물기가 남은 이랑과 트랙터 같은 농기계가 지나가며 팬 땅에 고인 물도 꽁꽁 얼어붙었다. 얼음을 지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거기서 아이들을 만날 수는 없다. 동네에 아이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요즘 아이들은 따뜻한 방안에서 게임을 하느라고 바쁠 터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이 매스컴에서 보도되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에게 그 위기는 멀기만 하다.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급격한 변화를 느끼기는 쉽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책길의 반환점을 돌 때쯤, 굳었던 몸이 풀리면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12월은 겨울의 초입, 본격적인 겨울은 아직 남았다. 앞으로 우리가 남은 겨울에 맞이하여야 할 추위는 어떨까를 생각해 본다. 아내와 딸애가 기다리는 눈이라도 한번 펑펑 내릴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그래도 추위에 움츠러들지 않고 의연하게 겨울을 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22. 12.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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