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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길 위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스마트 코리아’

by 낮달2018 2022.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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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으로 치닫는 현병철 위원장의 국가인권위원회

▲'행복한 사회 스마트 코리아'에 출연한 현병철 인권위원장 ⓒ <YTN> 화면 갈무리

경찰과 보수 세력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 ‘희망 버스’는 부산으로 달려갔다. 전국에서 모인 일만오천의 시민들은 ‘인간의 삶과 일’을 위해 싸우는 한 해고노동자에게 ‘인간의 사랑과 연대’를 뜨겁게 전했다. 그것은 새삼 ‘인간은 아름답다’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국가인권위, 직원들 ‘부당징계’ 강행

 

이런 벅찬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29일에는 그예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인권위 노조 간부 해고에 항의하며 1인 시위를 벌인 직원들의 징계를 강행했다. 그것도 애초에 현병철 위원장이 요구한 징계 수위(3명 중징계, 8명 경징계)보다 높은 4명에겐 중징계인 정직을, 다른 7명에게는 경징계인 감봉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일찍이 인권위는 비슷한 사안에 대해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 의견을 표명한 바 있었다. 2009년 11월, 행정안전부의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일부 개정령(안)’에 신설된 ‘공무원 정부 정책 반대 금지’ 등 규정에 대해서다. 인권위는 ‘공무원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본적 인권의 주체이므로 국가가 공무원의 기본적 인권을 임의로 제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반대 근거로 들었다.

 

그리고 2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인권위는 스스로가 내린 권고를 간단히 뒤엎었다. 1인 시위를 통해 인권위의 인사에 반대 의견을 표시한 직원들을 징계위원회에 넘겼고 이해할 수 없는 경·중징계를 강행한 것이다. 인권위는 징계사유로 국가공무원법 제63조(품위유지의 의무)와 제66조(집단행위의 금지) 위반을 들었지만 정작 징계 의결서에는 ‘처음으로 1인 시위를 했기 때문’이라고만 적혀 있었다고 한다.

 

현 정부 들어 사회의 각 부문에서 이루어진 퇴행이야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흔히들 ‘마지막 인권의 보루’로 불린다. 그런 국가 독립기관에서 자기 직원들을 대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당징계가 자행된 것은 인권위가 자신의 존재 의미를 부인하는 심각한 자기부정과 다르지 않다.

 

인권위 징계 소식을 확인하면서 떠오른 두 개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얼마 전에 와이티엔(YTN)을 시청하다가 뜻밖에 거기서 만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다. 다른 하나는 어제 아침 <한겨레>에 실린 칼럼 ‘ 인권위, 부끄러운 전직의 고언’을 통해 드러난 안경환 전 국가인권위원장의 우울한 얼굴이다.

 

 

# 장면 1

‘인권은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행복한 사회 스마트 코리아'에 출연한 현병철 위원장 ⓒ <YTN> 화면 갈무리

현 위원장은 국가인권위원장의 자격으로 와이티엔(YTN)에서 방영하는 ‘행복한 사회 스마트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YTN 누리집에서 확인해 보니 ‘행복한 사회 스마트 코리아’는 ‘2011년 YTN 어젠다’라는 이름이 붙은 공익 캠페인 성격의 프로그램인 모양이었다.

 

1월부터 방영하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주간 단위로 사회의 저명인사나 정부 기관장을 출연시켜 일정한 주제에 대한 의견을 드러낸다. 그간 출연한 이로는 소설가 이호철, 최근덕 성균관장, 산림청장, 농협중앙회장, 강지원 변호사, 산악인 엄홍길 씨 등이 있었다.

 

현 위원장이 출연한 방송은 7월 18일부터 일주일간 방영되었다. 그 앞 주(7.11)에는 ‘장애 없는 사회’라는 제목으로 이성규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편이 방송되었고, 지금(7.25)은 ‘배려와 경청’이라는 제목으로 박환규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편이 방영되고 있다.

 

현 위원장이 출연한 방송의 제목은 ‘인권은 아름다운 약속’이었다. 성균관장의 주제가 ‘효’였고, 산림청장의 그것이 ‘숲이 희망입니다’니 현직의 국가인권위원장인 현병철의 주제로 ‘인권’은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지금도 이들 방송분은 YTN 누리집에서 동영상으로 볼 수 있다.)

 

방송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엠블럼을 배경으로 회색 줄무늬 양복 차림의 현 위원장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현 위원장의 흑백 스틸 사진 몇 장이 교차되다가 ‘인권은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굵은 글꼴의 제목이 뜨고 그의 직위가 소개된다. 그리고 그는 정면을 향해서 나지막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행복한 사회란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요.

 

인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보장할 때 인권은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피부색이든 어떤 인종이든 구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남녀노소 지위가 높고 낮음도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인권은 나와 이웃의 문제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약속입니다.

 

밝고 아름다운 세상, 행복한 사회는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서로가 인권을 존중할 때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의 발언은 자막으로 계속 소개되면서 1분 17초짜리 이 프로그램은 마무리된다. 같이 이 방송을 시청한 아내가 “애걔, 자기는 ‘바담 풍’ 해도 니들은 ‘바람 풍’하라는 얘긴감?” 하고 어이없어했지만, 나는 대꾸하지 않고 채널을 돌려버렸다.

▲국가인권위 직원들의 1인 시위 ⓒ 박병수

 

# 장면 2

안경환 전 위원장 ‘인권위, 부끄러운 전직의 고언’

 

안경환 전 위원장이 쓴 칼럼(☞ 바로 가기)에서 묻어나는 것은 비감이다. 글을 읽는 내내 행간에서 그의 고뇌와 참담한 심사가 읽혔다. 그는 “공직의 떠난 사람이 지켜야 할 수칙”으로 “몸담고 있던 기관에 누가 되는 이야기는 자제”해야 함을 들면서도 전직 위원장으로서 ‘부끄러움’을 고백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그 부끄러움은 자신의 책임에 대한 통감이 포함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전 국가인권위원장의 <한겨레> 칼럼(2011. 7. 29) ⓒ<한겨레>

그는 인권을 ‘진보’와 ‘보수’ 모두를 “아우르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규정하면서 “인권위는 타 국가기관에 대해 건설적인 ‘쓴소리’를 하는 기관”이며 “대통령의 인권 참모도, 종복도 아니”라면서 “독립기관의 존립 근거는 구성원의 자부심과 사명감”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 내에서 독립의 대가는 고립”이고 “그 외로운 길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것이 인권위의 생명수”라고 규정한다.

 

그는 인권위의 징계에 관해 말하면서 직원들의 1인 시위가 “그들의 행위가 바람직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모두가 헌법이 보장하는 행위”이며, “인권위가 다른 기관에 대고 권고하던 바로 그 내용들”이라고 정리한다. 그리고 묻는다. “단 반걸음이라도 앞서 세상을 이끌어야 할 인권위가 스스로 뒷걸음을 치겠다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까. 도대체 왜 인권위가 필요한가 라고 묻지나 않을까?”

 

그는 더 중요한 문제로 “이 사건으로 인해 직원들 사이의 불신과 반목의 골이 깊어질 위험”을 들며 저어한다. 그는 “이른바 정무직은 잠시 관리하다 떠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남은 직원들은 평생의 동료다. 이들 중 전력을 기준으로 일부를 탄압해서는 기관의 장래가 밝을 수 없다. 거느린 부하 직원들을 패를 갈라 서로 미워하도록 부추기”는 것은 ‘안타깝고 걱정스럽고 실망스러우며 통탄, 분노할 일’이라고 썼다. 자제에도 불구하고 드러나는 분노의 크기를 짐작할 만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인권위가 자행한 부당징계에 대해서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거기서 전직 기관의 장으로서 그 기관의 행정 처분에 대해 ‘비열’을, ‘사법부의 판단’을, ‘수치’를 그리고 ‘후세의 준엄한 심판’을 말해야 하는 사람의 분노와 슬픔이 고스란히 읽힌다.

 

징계란 잘못을 바로잡는 행위다. 다른 의견을 참지 못해 내리는 징계는 상급자가 하급자를 다스리는 가장 비열한 짓이다. 그게 어디 ‘민주국가’의 ‘인권위’가 할 짓인가? 이번 징계처분은 응당 사법부의 판단을 받을 것이다. 상식적인 예측은 인권위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다. 그보다도 후세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인권은 ‘스마트 코리아’의 ‘장식’이 아니다

 

여기 두 개의 인권이 있다. 하나는 현직의 국가인권위원장이, 다른 하나는 전직 위원장이 말하는 인권이다. 똑같이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말하면서 정작 현직 위원장은 그것을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징계처분의 당사자가 되었고 전직의 위원장은 그 ‘징계의 부당성’과 부끄러움을 지적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약속’이라고 말하면서 현직의 인권위원장은 조직의 구성원들의 ‘다른 의견을 참지 못하고’ 징계를 내리는 ‘비열’을 저질렀다. 그리고 전직의 인권위원장은 공직을 떠난 자의 수칙을 어기면서까지 그 비열을 준엄하게 꾸짖어야 한다. 그것이 2011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가 연출한 비극이고 부끄러운 인권의 초상이다.

 

전직 위원장의 우울해 뵈는 얼굴 위로 현직 위원장의 무심한 얼굴이 겹친다. 이 사태가 국가인권위의 문제가 아니라 이 정부가 말끝마다 뇌는 ‘국격’의 문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인권위원장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임명권자의 문제이며, 집권당의 인권 의식의 수준이라는 점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요즘 두루 사랑받는 낱말 ‘스마트(smart)’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에 관하여 말할 때 정보 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다. “특히 지금까지는 기대할 수 없었던 정도의 정보 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고 “지능화된 또는 지능형(intelligent)이라는 용어와 같”은 뜻의 낱말이다. [네이버 지식 사전]

 

스마트 폰이 있고, 스마트 TV가 새로이 뜨고 있는데 뉴스 전문 케이블 방송 YTN은 ‘2011년의 어젠다’로 ‘행복한 사회 스마트 코리아’를 정했다. 그리고 거기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수장을 출연시켜 ‘스마트 한국’을 말하고 있다.

 

인권과 관련하여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인권위원장을 출연시킨 방송사의 무신경도 놀랍지만, 그 논란의 당사자로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심하게 ‘인권’을 그 보편적 가치를 뇌고 있는 인권위원장도 경이롭기는 마찬가지다. 이 한편의 소극이 우스꽝스럽게 보여주는 진실은 단 하나다. ‘인권’은 장식이 아니라 현재형의 이 나라 민주주의, 그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라는 것 말이다.

 

 

2011. 7. 31. 낮달

 

*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방통위원장과 권익위원장의 사임을 압박하고 있어 논란이다. 한편에서 지난 정부가 임기직 정부 기관장에게 사임을 압박한 부분을 수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행위를 벌이고 있는 상황 앞에서 국민은 어리둥절해한다.

 

설마, 현병철 인권위원장 때처럼, 허수아비를 세워 인권 시계를 멈추게 하려는 속셈은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 정치사에서 항상 엉뚱한 예감은 현실이 되곤 했으니, 이럴 경우, 어디에다 눈길을 돌려야 할지 모르겠다.(202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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