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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알라딘의 인터넷 ‘서재’ 이야기

by 낮달2018 2022.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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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내 ‘서재’ 먼지의 방

▲ 알라딘의 내 서재 '먼지의 방' 이름 그대로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곳곳에 먼지다 .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 드나든 지 10년이 넘었다. 맨 처음 거래한 온라인 서점은 ‘북스 포 유’였는데, 얼마 후에 이 가게는 알라딘과 통합되었으니, 따로 다른 가게에는 곁눈을 주지 않은 셈이다. 책을 사러 책방에 들렀다가 원하는 걸 찾지 못하고 돌아서거나 주문하고 한 번 더 들러야 하는 불편을 겪은 사람들에게 온라인 서점은 매우 ‘생광스러운’(부모님 세대들이 즐겨 썼던 말인데, 정작 우리에게는 낯설다. ‘生光’이라는 한자어에 접미사를 붙여서 만든 형용사인데, ‘빛이 남’, ‘자랑스러워 낯이 남’의 뜻이다. 그들 세대의 언어가 가진 풍부한 정서가 고스란히 들어 있는 어휘여서 나는 이 말을 즐겨 쓴다)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책 읽기를 왕성히 하던 때에는 매달, 또는 한 달 걸러 한 번씩은 알라딘에 들러서 책을 고르곤 했는데, 몇 해 전부터는 책 읽기는커녕 책사기조차도 심드렁해져서 방문이 뜸해졌다. 그 알라딘에서 회원들에게 ‘서재’라는 형식의 개인 공간을 주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주로 읽은 책 서평을 중심으로 꾸려가는 곳인데, 정작 제대로 된 리뷰(아마 이게 독후감이나 독서감상문이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세련된 표현인 모양이다.)를 쓴 경험도 없으면서 덜컥 문을 열었는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한답시고, 그 이름을 ‘먼지의 방’이라 했겠다. 아래는 문을 열면서 썼던 폼을 잔뜩 잡은, 서재 소개 글이다.

 

“비좁은 집, 비좁은 서가에는 10대 시절부터 쉰 고개를 바라보는 현재까지 ‘나’를 만들어 낸 묵은 책들과 새 책들이 어지럽게 꽂혀 있다. 그것들이 연출해 내는 우울한 부조화는 단지 세월의 켜가 아니라, 실천으로 담보되지 않는 잡다한 ‘앎’과 ‘삶’의 부조화 탓이다. 따라서 이 방을 가득 채운 것은 먼지.”

 

‘앎’과 ‘삶’의 부조화 탓이 아니라, 제대로 한 번도 쓸고 닦고 거미줄을 걷어낸 적이 없어서 그 서재는 먼지로 뽀얗다. 황석영의 소설을 읽고 올린 서평이 소 뒷걸음질에 쥐 잡는 격으로 ‘이달의 우수작’인가 뭔가에 선정되어 한 번은 5만 원, 또 한 번은 10만 원어치의 마일리지를 얻어 역시 ‘생광스럽게’ 그걸 쓰면서 얼마간 고무되기도 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은 정말 지랄 같다. 아예 출입하지 않게 된 게 몇 해가 족히 흘렀을 성싶다. 먼지의 방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유지된 것은 순전히 ‘삭제하기’ 기능이 따로 ‘없어서’이다. 정말이지 포털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의 ‘관리하기’ 메뉴에 붙어 있는 ‘내 블로그 삭제하기’는 정말 매력적인 메뉴다. 단 한 편의 글이든, 일백 편, 일천 편의 글이든 마우스 클릭 하나로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는 ‘세계의 주재자’가 되는 경험도 ‘생광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 서재를 열고는 한동안은 바지런을 떨면서 이웃 서재를 돌아다녔고 몇몇 블로거를 사귀기도 하긴 했다. 이름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알라딘의 서재를 열고 있는 이들을 매개하는 건 책이다. 물론 그 책은 한갓진 문학류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즐겨 읽는 책이 드러내 주는 취향의 다양성이나 감각의 날카로움과 풍요로움은 그야말로 ‘상상을 절(絶)한다.’

▲ 서재의 보관함 . 구매할 책을 쟁여두는 곳 .

오블이 어느 특정한 영역에 얽매이지 않는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삶’을 ‘곡진하게’ 담고 있다면, 알라딘의 서재는 ‘책을 매개로 세상과 삶’에 대한 좀 더 정교하고 분방한 인식과 발언으로 구성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블이나 알라딘이나 매일반인 것은 스스로 즐겨 이웃이 된 누리꾼들의 다정다감한 교감과 그것을 통해 확산하고 고양되는 한 시대와 사회의 공감대일 터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 부지런한 사람이 못 된다. 얼마간 이웃들을 사귀다가 어느 날부터 까맣게 알라딘을 잊게 지내게 되면서 자연 서재와 멀어졌다. 아마 책 읽기가 고역이 되었던 시간이 얼마간 지속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오블에 ‘이 풍진 세상에’를 열고 글을 쓰면서 알라딘의 서재를 떠올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거기에 오블의 글을 고스란히 옮겨붙이는 식으로 어정쩡하게 방의 먼지와 거미줄을 대충 걷어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두 개 이상의 블로그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블에 올린 글을 몇 차례 서재에다 옮기다가 어느 날부터는 그것에도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하면서 개점휴업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저께의 일이다. 오전에 두어 달 만에 알라딘에 들어가 그간 쟁여둔 책을 장바구니에 넣고 결재를 하려는데 웬걸, 적립금이 5만을 넘은 걸로 떠 있다. 만 원 안팎의 적립금은 책을 살 적마다 곶감 빼먹듯 썼으니 남아 있어 봤자 고작 몇천 단위일 텐데……, 하면서 들여다보았더니 이게 웬 횡잰가.

 

‘4월 3주, 이 주의 마이 리뷰 당첨’으로 적립금 5만 점이 발급되었단다. 대체로 서평이 뽑히면 전자우편으로 통보를 하는데, 내가 빠뜨렸던 걸까. 어떤 리뷰가 당첨되었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기분은 쓸 만하다. 장바구니에 넣은 책은 시집 5권을 포함하니 모두 10권, 값은 6만 원이 넘는데, 나는 그 적립금 덕분에 1만 몇천 원만 썼다. 길 가다 고액권 지폐를 주운 기분이어서 나는 그날 일과를 매우 유쾌하게 보냈다.

 

이럴 때는 다시 이 서재가 마음에 짠하게 다가온다. 이제 알라딘의 서재는 이제 이름만 서재일 뿐, 일반 블로그와 같은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살림’을 차리는 건 역시 내겐 역부족이다. 오블이 불안정할 때 티스토리에다 일종의 보험형식으로 블로그를 열어보았으나 오래 가지 못한 것은 순전히 그런 까닭 때문이다.

▲ 새로 적립금으로 산 책

오블에서 ‘행복한 책 읽기’라는 방을 따로 꾸려가니 여기 올린 글이라도 서재에 옮기면 그나마 서재를 유지할 수는 있을 터이지만 그게 생각만큼 순조로이 되지는 않는다. 읽는 책마다 서평을 쓰는 것도 아닐뿐더러 서평 쓰는 게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서재에서 만나는 서평은 대체로 짧고 부담 없는 ‘인상기(印象記)’ 형식을 띠는 것들이 많다. 글쓰기에 구태여 격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 그런 형식의 글쓰기를 나무랄 일은 없다. 그러나 글을 쓰면서 든 버릇이 느슨한 형식의 글을 쓰는 걸 꺼리다 보니 자연 엄두가 나지 않아 쓰기에 쉽게 덤비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에 쓴 서평이라야 블로그에 올렸던 ‘조선의 뒷골목 풍경’밖에 없다. 다분히 난삽한 그 글이 우수작이 된 것일까. 어쨌든 15일 오후에 주문한 책을 받았다. 시집이 5권이나 되다 보니 책을 담은 종이상자가 날렵하다.

 

구매한 책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배가 부르다. 개중에는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서가에 처박히는 것도 적잖게 있지만, 속표지를 펴고 거기다 날짜와 서명을 할 때의 느낌은 득의 만만이다. 이번에도 강명관 교수의 책을 한 권 더 샀다. 나는 어림으로 17일 날 광주 가면서 읽을 책을 머릿속으로만 골라본다.

 

 

2009. 5. 1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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