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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고은 시 ‘화살’을 읽으며

by 낮달2018 202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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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의 시 ‘화살’, 혹은 비장한 투쟁의 결의

 

교과서에 실린 고은 시인의 ‘눈길’을 가르치면서 18종의 문학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를 훑는다. ‘머슴 대길이’와 ‘문의 마을에 가서’와 함께 시 ‘화살’도 교과서에 실렸다. 문학 교과서에 ‘타는 목마름으로’와 ‘노동의 새벽’이 실리는 것도 민주주의의 진전일 터이다.

 

건성으로 첫 연을 눈으로 읽다가 그 끝부분에서 뭔가 가시처럼 걸리는 걸 느낀다.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 고은 (1933~     ) ⓒ 고은 누리집

‘캄캄한 대낮’으로 표상되는 폭압의 현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애매한 70년대를 생각한다. 그리고 박정희 유신 독재에 맞서 싸웠던 일군의 시인 작가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자신의 싸움이 자기 이해가 아니라 나라와 겨레의 삶과 정의를 위해서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무한 희생을 노래한 걸까.

 

‘화살’은 물론 민주화 투쟁의 ‘전위(前衛)’다. 시인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자고 말한다. 그리고 과녁을 향해 떠나면 돌아오지 않는 화살처럼 박히고,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고 노래한다.

 

작가의 사회적, 역사적 책무를 깨달은 문인들이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결성한 때가 1974년이다. 마침내 시인 작가들이 반 유신 독재 투쟁에 동참한 것이다. 백낙청, 이문구, 박태순, 염무웅, 이시영, 송기원, 조태일, 황석영, 신경림, 장용학 등이 함께 결성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초대 대표 간사가 고은이었다.

 

이들은 ‘문학인 101인 선언’을 발표하고 시인 김지하를 비롯한 긴급조치로 구속된 지식인·종교인·학생들의 즉각 석방, 언론·출판·집회·신앙·사상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했다. 또 자유 민주주의 정신과 절차에 따른 새로운 헌법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니 이는 유신체제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 삭발로 독재에 항거 (1978) ⓒ 고은 누리집

그리고 34년, 자실은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거듭났고 민족문학작가회의는 2007년, ‘민족문학’을 떼고 한국작가회의가 되었다.

 

유신 독재는 절대권력자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고, 이어진 신군부 독재도 1993년 문민정부의 탄생과 함께 역사 저편으로 사라졌다. 2008년 현재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는 만개 중이다.

 

감옥에 갇힌 민주주의를 목 놓아 노래했던 어두운 시대의 역사를 떠올리며 ‘문학인 101인 선언’을 다시 읽어 본다. 그리고 그때, 40대 장년이었던 시인의 비장한 노랫말을 다시 읽는다. 그리고 성내운 교수가 뜨거운 목소리로 낭송하는 고은의 시 ‘화살’을 다시 듣는다.

 

 

문학인 101인 선언

 

오늘날 우리 현실은 민족사적으로 일대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사회 도처에서 불신과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정직하고 근면한 사람은 살기 어렵고 거짓과 아첨에 능한 사람은 살기 편하게 되어 있으며, 왜곡된 근대화정책의 무리한 강행으로 인하여 권력과 금력에서 소외된 대다수 민중들은 기초적인 생존마저 안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러한 모순과 부조리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몇몇 정치가의 독단적인 결정에 맡겨질 일이 아니라 전 국민적인 지혜와 용기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라 믿고, 이에 우리 뜻있는 문학인 일동은 우리의 순수한 문학적 양심과 떳떳한 인간적 이성에 입각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결의·선언하는 바이며, 이러한 우리의 주장이 실현되는 것만이 국민총화와 민족안보에 이르는 길이라고 선언하는 바이다.

 

결의

 

1. 시인 김지하 씨를 비롯하여 긴급조치로 구속된 지식인·종교인 및 학생들은 즉각 석방되어야 한다.

 

2. 언론·출판·집회·결사 및 신앙·사상의 자유는 여하한 이유로도 제한될 수 없으며, 교수·언론인·종교인·예술가를 비롯한 모든 지식인 이 자유의 수호에 적극 앞장서야 한다.

 

3. 서민 대중의 기본권·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가 있어야 하며 현행 노동 제법은 민주적인 방향에서 개정되어야 한다.

 

4. 이상과 같은 사항들이 원칙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자유 민주주의의 정신과 절차에 따른 새로운 헌법이 마련되어야 한다.

 

5. 이러한 우리의 주장은 어떠한 형태의 당리당략에도 이용되어서는 안 될 문학자적 순수성의 발로이며, 또한 어떠한 탄압 속에서도 계속될 인간 본연의 진실한 외침이다.

 

1974년 11월 18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

 

 

 

2008. 4.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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