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떠나며 ② 후배, 제자들과 함께한 퇴임 모임
후배 교사들이 마련해 준 25일의 퇴임 모임에 나는 10분쯤 지각했다. 모임 장소인 식당 2층에 올라 실내로 들어서는데 방안 가득 미리 와 있던 동료들이 일제히 환영의 인사를 건네 오는 바람에 나는 잠깐 당황했다. 그런 식의 환대에 별로 익숙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걸어온 길, 걸어갈 길…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걸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뚜렷하게 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창가에 작은 펼침막이 붙어 있는 걸 확인한 것은 한참 뒤다. ‘당당히 걸어오신 길, 새롭게 시작하는 길’이라는 문구 아래 내 이름이 씌어 있었다.
잠깐 앉았다가 나는 자리를 돌면서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후배 교사들이 스물 서넛, 인근에 사는 제자들이 여덟 명이 와 주었다. 따로 선배들에게 연락하지 않았는데도 지난해 정년 퇴임한 선배 한 분이 굳이 참석해 주었고 지난 8월에 퇴임한 내 옛 친구도 왔다.
정해진 격식이 있는 건 아니니 모임을 주선한 친구가 편하게 진행을 했다. 내 약력을 소개하면서 교단에서 31년을 이제 마감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축하의 말이 이어졌다. 제자들을 대표하여 대구에서 온 친구가 미리 준비해 온 축사를 읽었다.
열여덟 살에 날 만나서 어느새 저들도 4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섰다며 오래된 일이라 내게서 무얼 배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는 고백했다. 그러면서 내가 실천하는 삶을 통해서 자신들을 가르쳤다고 술회했다.
복직 후 7년쯤 근무했던 예천 지역에서 같이 활동한 후배 교사는 그 지역 교사 활동이 얼마나 역동적이었던가를 추억하면서 거기서 만났던 옛 활동가들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선배 교사가 나와 내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면서 옛이야기를 한 자락 꺼내는 바람에 나는 어렵지 않게 해직 무렵의 세월을 반추할 수 있었다.
이어서 내가 답례의 인사말을 했다. 공적 자리에선 말을 간략히 하는 편인데, 요즘에 어쩐지 이야기가 두서가 잡히지 않는다고 고백하면서도 나는 꽤 중언부언한 것 같다. 멀리서 와 준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면서 그들과는 이 마지막 자리에 불러도 좋을 만한 교분은 쌓았던 것 같다고 했다.
전교조가 아니었다면 아주 세속적이고 향락적 교사로 일생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전교조에서 사람의 길, 교사의 길을 배웠다, 조직이 아니었다면 분단 조국을 고민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누어준 우정,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겠다…….
한 시절 애환을 나눈 동료들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나는 내 목소리에, 내 감정에 결에 촉촉한 물기를 느꼈다. 그러나 나는 우정 담담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자리에 앉았다. 꽃다발과 선물도 한 아름 받았다. 제자들은 내 등산화를 샀고, 동료들은 아내와 내 운동화를 준비해 주었다. 열심히 운동하면서 건강하게 살아가라는 당부일 터였다.
짐작했겠지만, 참석한 교사들은 모두 전교조 활동을 같이했던 동지들이다. 예천 지역에서 지회를 맡아 활동할 때, 초임 발령을 받았던 여교사는 어느덧 불혹을 넘겼고, 몇몇 친구들은 쉰을 훌쩍 넘기고 나서 하나둘 60대로 치닫고 있다.
모두가 활동과 관련한 추억들, 한 시절의 애환을 나누었던 이들이다. 그래서 이 만남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저런 옛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마지막 건배 제의를 하라 해서 나는 방송고 만학도들에게 건넸던 불교의 ‘인연’ 이야기를 했다. 어쨌든 우리가 맺고 가꾸어 온 세월, 그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자고 말하고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자리가 파하고 동료들은 돌아가고 이별이 아쉬운 제자들과 인근 식당으로 옮겨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내와 나는 귀가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제자 하나는 우리 내외더러 가까운 데 여행이라도 다녀오시라며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아, <오마이뉴스> 블로그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온 이웃 친구 초석도 봉투 하나를 건네고 갔다. 오블에서 만나 그간 이어온 우정인데, 눈물겹다. 고맙고, 감사하다.
막이 내리고 불도 꺼졌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주변의 도움과 보살핌으로 지금껏 나는 살아온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도움을 한 번도 제대로 갚지 못했다. 새로 떠나는 길은 그런 시간으로 여며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아침에 나는 제자들과 동료들에게 문자 메시지로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고 보면 쓸쓸한 퇴임의 시간이 외롭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그들 덕분이 아니었던가. 이제 막은 내리고 불은 꺼졌다. 내일 모레면 2월도 끝. 국어교사로서의 시간도 끝나는 것이다. 나는 차분히 자유인으로 맞이할 3월을 기다리기로 한다.
2016. 2.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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