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이 ‘생일선물’이라고?
동료 여교사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중학교 3학년짜리 아들 녀석이 ‘생선’을 사러 나간다고 해서 물었다. ‘웬 생선이냐’고 했더니 아이는 심드렁하게 받더란다. “아니, 친구 ‘생일 선물’ 말이야…….” 그걸 세대차로 돌릴 일이냐고 동료는 투덜댔다.
긴 이름을 줄여서 부르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언어 경제’의 원칙에 부합할뿐더러 사람들 사이에 두루 쓰이는 줄임말을 통해 사회적 동질성을 확인하기도 한다. 애당초 줄여 쓰기는 한자어에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을 ‘한국’이라고 줄여 읽고, ‘한국전력’을 ‘한전’이라고 줄이는 방식 말이다. 이는 대체로 널리 알려진 학교 이름 따위를 가리킬 때 자주 쓰인다. ‘고대, 연대’라고 할 때 이를 이해 못 할 사람은 없을 것이지만 어떤 줄임말은 지역에서만 통용된다. 이를테면 경상북도에서 ‘경대’라면 ‘경북대학교’지만 경남에선 ‘경남대학교’거나 ‘경상대학교’일 수 있는 것이다.
‘무진장’이라면 ‘무주, 진안, 장수’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은 호남 사람이 아니라도 알 수 있다. 세 지역의 이름 첫 자를 붙여서 만든 이름이다. 전교조의 경상북도 지역 조직은 한때 군소 시군 둘을 묶어서 만들었는데 이때 만들어진 지회가 ‘성칠(성주·칠곡), 청영(청송·영양) 지회’ 등이다.
그런데 달성(AB)과 고령(CD)을 묶은 지회 이름은 ‘달령(AD)지회’였다. 첫 자를 붙인 게 아니라 첫 자와 끝 자를 붙인 형식이다. 보통의 방식으로 하면 ‘달고(AC)지회’다 보니 더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조합한 것이다. 일본에서 들어온 ‘택배(宅配)’는 아마 ‘주택 배달’쯤을 줄인 말로 보이는데 이 조합 방식은 ‘BC(택배)’다.
‘난쏘공’ 이래 백화제방
‘광주제일고’는 ‘광주일고’로 줄였는데 이는 ‘제’보다는 ‘1’의 뜻이 더 중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광역시와 도를 이을 때는 ‘시와 도’의 순서로 잇는다. ‘대구·경북’, ‘부산·경남’, ‘광주·전남’, ‘대전·충남’으로 읽고 줄일 때는 ‘대경’, ‘부경’ 등으로 부른다.(‘광주·전남’과 ‘대전·충남’은 어떻게 줄이는지 모르겠다.) 이는 거꾸로 이을 때 ‘경북 대구’처럼 이전의 시가 도 아래에 있는 행정체계를 떠올리게 되니까 피하는 듯하다.
한자어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여겼던 줄여 쓰기가 한글 이름에까지 옮아간 게 언제부턴지는 모르겠다. 조세희 선생의 역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난쏘공’이라 부르기 시작한 때쯤이 아닌가 싶긴 하다. 이는 주로 책 이름에서 주로 쓰였던 것 같다. ‘다현사’(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바보사(바로 보는 우리 역사) 등이 그것이다.
노래패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뒤를 이으면서 바야흐로 줄여 쓰기는 ‘백화제방’ 하지 않았는가 싶다. 기성세대라면 어림도 없었을 일인데 이는 7, 80년대 젊은이들의 ‘자유분방’이 만들어낸 ‘새로운 언어 경제’였다고 할 만하다.
한글 줄여 쓰기로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따위의 우스개는 꽤 오래된 것이다. 요즘 누리꾼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열폭(열등감 폭발)’, ‘까도남(까칠하고 도도한 남자)’, ‘차도녀(차가운 도시의 여자)’, ‘깜놀(깜짝 놀라다)’,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등은 일종의 변말(은어)로 쓰이게 되었다.
이 줄여 쓰기의 확장력은 ‘베이글녀(베이비 페이스+글래머 여자)’, ‘베프(베스트 프렌드)’, ‘마프(마이 프린세스) 등과 같이 영어와 영어·한글의 합성어로까지 발전했다. 하기야 한글에서 가능한 게 영어에서 불가능할 일이란 없는 법이다.
요즘 줄여 쓰기는 상대적으로 길어지고 있는 TV 프로그램 이름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것 같다. 미사(미안하다 사랑한다), 무도(무한도전),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 개취(개인의 취향), 내 여자친구 구미호(내여구), 성스(성균관 스캔들), 욕불(욕망의 불꽃), 남격(남자의 자격), 내마들(내 마음이 들리니), 반빛(반짝반짝 빛나는) 등이 그것이다.
한글로 줄여 쓰기는 임시방편의 성격이 강하다. ‘난쏘공’처럼 수십 년 동안 백만 부가 넘게 팔리는 스테디셀러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반짝하고 끝나는 TV 프로그램 이름이나 일시적 유행어 따위는 생명을 부지하는 것 자체도 힘에 부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속’ 아닌 말의 생명…
선거가 끝난 뒤, 아깝게 낙선한 후보에게 보낸 유권자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같은 경우도 그 생명을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언어는 한 사회의 개인들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사회적 약속’이라는 언어의 일반성을 환기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줄여 쓰기는 학교에서도 왕성하다. 아이들은 ‘야간 자습’이나 ‘오전 자습’ 따위를 각각 ‘야자’, ‘오자’라 줄인다. ‘인터넷 강의’는 ‘인강’이 ‘정보와 컴퓨터’는 ‘정컴’이 된다. 같은 학습 환경 속에 공부하는 아이들이니 이런 말은 생명은 이런 학교 체제가 계속되는 한 이어질 것이다.
중고와 달리 초등학교는 이름을 줄여서 부르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인근 의성군에 가면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의성초등’을 ‘의초’라 줄인다. 아이들도 천연덕스럽게 ‘의초’라는 말을 달고 산다. 처음 들으면 어색하지만 두어 번 듣고 나면 ‘의성초등’이라는 말보다는 훨씬 경제적이고 편한 말이라는 걸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2011. 5. 1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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