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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박정희 재떨이 모시는 200억짜리 ‘자료관’이라니…

by 낮달2018 2021.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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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8억 들여 ‘박정희 도시’ 만들기 나선 구미시…누구를 위한 기억인가

▲ 70년대 다방에서 쓰인 재떨이. 역사자료관에 유물로 재떨이가 하나 기증되었다고.

재떨이가 화제다. 그것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품’이라고 기증된 재떨이다. 뜬금없이 재떨이가 화제가 된 것은 경북 구미시에서 총사업비 200억 원이 소요되는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을 세우려 하면서 거기 보관할 ‘유물’을 기증받는 캠페인을 벌이면서다.

 

애당초 구미시가 세운 유물 확보 사업의 취지는 야심 찼다. ‘(……) 개인이 자료를 관리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도난 멸실 훼손 등으로부터 자료를 보호하고, 건립 예정인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의 전시 교육 연구에 활용’하겠다며 구미시는 ‘유물 기증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재떨이’는 어떤 역사를 환기해 줄까

 

그러나 1차 캠페인(2016.4~7)에 이은 2차 캠페인(2016.12~2017.6)이 마감을 앞두고 있지만 기증된 유물은 불과 40여 점뿐이고 유물 가치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증된 물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 우표 모음 액자, 시계, 제9대 대통령 취임 기념 지하철 승차권(1차)에다 기념우표, 대통령이 사용했다는 재떨이, 기념 사진첩(2차) 등인데 이 유물들이 대통령이 직접 쓴 물건인지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관련 기사 : 박정희 재떨이 ‘유물’로 기증받은 구미시).

 

구미시가 내년에 착공할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은 상모동 박 전 대통령 생가 인근 터 3만5천여㎡에 상설·기획 전시실, 수장고, 세미나실 등을 갖춘 연 면적 4천㎡의 건물이다. 구미시의 구상은 자체 보관·관리 중인 박 전 대통령의 유품 5,670점을 자료관에 체계적으로 보존·전시하고 역대 대통령들의 일부 자료와 연계 전시해 한국 근현대사를 재조명한다는 것이었다.

 

자료관 부근 생가와 새마을운동 테마공원과 연계해 역사관광자원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구미시의 그림이야 크고 화려하다. 그러나 상식적인 시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모두 ‘70년대로의 회귀’를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구미시는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과 테마공원 등 1368억의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박정희 대통령 연구의 중심도시’, ‘새마을 종주(宗主)도시’를 표방하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들의 삶과 무관한 명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무려 18년이나 권좌에 있었으니 남긴 자료가 적지 않긴 하겠다. 그러나 자료라면 이미 상모동 박정희 생가 추모관 앞에는 2013년 1월에 개관한 ‘박정희 대통령 민족중흥관’에도 있다. 58억여 원의 사업비를 들여 건립한 이 건물은 부지 2,328㎡, 연 면적 1,207㎡ 규모(지하 1층, 지상 1층)의 건물로 3개소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는 공간이다.

▲ 박정희 대통령 민족중흥관. 오른쪽 아래는 현판. 박정희의 유품과 업적을 전시하고 있다.
▲ 민족중흥관 유품전시실의 '대통령으로 걸어온 길'. 민족중흥관에는 청와대 집무실도 재현하고 있다.
▲ 전국에서 모인 응모 사진으로 제작된 박정희 대통령 상반신을 이미지화한 포토월 .

전시실은 ‘대통령의 향기실’과 ‘대통령의 발자취실’,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 전시된 자료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의 향기실(유품 전시실)에는 청와대 집무실을 재현하고 대통령 재임 시절 국내외 귀빈들로부터 받은 선물 등 보관 유품과 주요 업적을 기록한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민족중흥관’으로 모자라 ‘역사자료관’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발자취실(디지털 전시실)에는 박정희의 모습과 주요 기록을 디지털 영상물로 재현하고 구미시의 과거와 오늘의 모습을 비교·검색할 수 있는 첨단 디지털 시설을 구비하고 있다. 기획전시실에는 박정희의 휘호와 어록을 그래픽으로 만들고 시민들의 얼굴로 대통령 상반신을 이미지화한 이른바 포토월(photo wall)이 설치되어 있다.

 

민족중흥관에는 아시아 최초 220도 하이퍼 돔으로 설계됐다는 지름 15m, 높이 10m의 돔 스크린을 갖춘 돔 영상관도 있다. 이 영상관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애를 중심으로 오늘의 대한민국 모습을 보여주는 13분 분량의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다.

 

그런데 구미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민족중흥’의 영도자로 기려 1천억이 넘는 예산을 투입한 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은 것일까. 박정희 자료를 전시하고 그의 생애를 보여주는 민족중흥관을 세워 놓고도 다시 수백억을 들여 역사자료관을 건립하려고 하는 것이다.

시민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 같은 시의 ‘박정희 사업’에 지역 시민단체가 사업의 취소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미참여연대(참여연대)가 박정희 역사자료관의 건립 취소를 요구하자 구미시는 선산 출장소에 보관 중인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자료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구미참여연대, 역사자료관 건립 취소 요구

 

그러나 구미시가 보관 중인 박 전 대통령 유물 5,670점에 대한 소유권은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에 있고 구미시는 이를 위탁받은 것일 뿐이다. 시 소유도 아니고 위탁 보관 중인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200억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지출하여 역사자료관을 짓겠다고 강변하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전시할 자료조차 빈약하여 유물 기증 캠페인까지 벌였으나 정작 기증된 자료란 게 고작 시민이 소유하고 있는 기념 우표나 사용자가 확인되지 않은 재떨이 같은 것에 그친다. 유물을 구할 게 아니라 역사자료관 건립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는 참여연대의 요구가 설득력을 얻는 대목이다.

 

정말 궁금한 것은 구미시에서 박정희 역사자료관에 전시하려는 ‘유물’이란 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걸 통해서 박정희 치세의 발전과 가난에서 나라를 구한 그의 영웅적 업적을 반추하는 것 말고 무엇을 찾으려 하는 것인가. 불과 4, 50년 전 독재 시대의 유물을 통해서 재현하려는 것은 ‘박정희 시대와 그 영광’ 말고 무엇인가.

▲ 간디가 남긴 낡은 유품이 기려지는 것은 거기 간디의 위대한 사상과 사랑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유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가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1869~1948)다. 그는 샌들과 찻잔, 회중시계와 안경 같은 일상 용품 몇 개로 상징되는 무욕과 청빈의 삶을 산 이다. 볼품없고 값을 매길 수조차 없는 낡은 물건이지만 그것이 기려지는 것은 거기 담긴 간디의 위대한 사상과 사랑 때문이다.

 

역사자료관의 ‘유물’은 박정희의 무엇을 증언할까

 

그런데 박정희 역사자료관에 전시하려 구하고 있는 유물은 박정희의 ‘무엇’을 담은 것일까. 그가 주창한 새마을운동인가, ‘하면 된다’라는 불패의 신념인가, 그리하여 극복해 낸 절대 빈곤과 ‘조국 근대화’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담아낼 유물은 어떤 것일까.

 

인간의 사상을, 그를 상징하는 사물을 통해 재현하려는 인간의 관습, 그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불상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과 같은 종교적 상징처럼 실물을 모사한 상을 세우는 것은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다투어 더 크게 더 높게 동상을 세우는 관행이 있다.

 

당연히 박정희도 상모동 생가와 민족중흥관, 건설 중인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사이에 5m 높이의 청동상으로 서 있다. 새마을운동과 새마을 노래 악보, 박정희 연보, 부부 사진, 자작시를 새긴 빗돌을 등지고 선 ‘젊은 박정희’는 왼발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딛고 있다.

▲ 5m 높이의 박정희의 청동상. 이 공간에서 그는 자신의 영욕의 삶 가운데서 영광으로만 소환된다.

거의 성역이 되다시피 한 생가 주변으로 하나둘 들어선 건물들, 조형물, 동상과 새마을운동 테마공원만으로도 박정희는 이미 넘칠 만큼 재현되고 있다. 생가를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는 허리 굽은 고령의 숭배자들에게는 그의 18년 치세는 태평성대였고, 그들은 충용한 신민이었으리라.

 

그런데도 구미시는, 경상북도는 이걸로는 부족하다고 부르댄다. 구미시는 내용을 알 수 없는 유물 5,670점을 전시하여 박정희 시대를 구미 상모동에 완벽히 재현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그 영광의 시대를 구가하며 그 시절의 영예를 다시 소환하고 싶어 한다.

 

‘과거의 영광 분식’보다 ‘현재의 고통’을 ‘줄이라’

 

그러나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을 부르짖는 난만한 21세기다. 수십 년 전의 독재자를 소환하여 그 시대의 영광을 반추하기보다는 지금 당면한 시대적 과제를 살펴보는 게 더 긴요하다는 얘기다. 필요한 것은 과거의 영광과 번영을 추억으로 소비하는 일이 아니라 이전 시대를 성찰하고 새날을 가늠해 보는 일이다.

 

소환한다고 해서 과거가 현신하거나 재현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밟고 다시 나아갈 때 미래는 새롭게 다가올 일이다. 2017년, 100년 전에 이 땅에 왔던 풍운의 지도자, 박정희를 이제는 배웅할 때가 되었다. 바래어가는 신화를 콘크리트 구조물 따위로 회생시킬 수는 없다. 바래어가는 ‘신화’가 ‘역사’가 되는 시간의 순환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의 일부. 이 도시공원은 10월 말께 완공된다.

어저께 들른 박정희 생가 주변의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은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함께해 온 새마을운동의 가치성을 계승·보전하는 기반 시설’(구미시)이 되리라는 면적 25만949㎡에 이르는 이 도시공원은 10월 말께 완공된다. 그때 ‘박정희 탄생 100돌’ 행사는 더욱 성대하게 거행될 것이다.

 

구미시로선 아직 공사에 들어가지 못한 역사자료관을 아쉽게 여길 테지만 구미참여연대는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거액의 예산을 들여 새마을운동과 박정희를 기억하는 일에 매달리기보다 시민들의 민생을 돌아보고 그들의 요구를 시정에 반영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는 기억하되 성찰되어야 한다

 

과거는 기억되어야 하되, 동시에 성찰되어야 한다. 성찰도 없이 과거를 소환하고 기념하는 것은 죽은 과거의 화석을 어루만지는 일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산은 모름지기 과거의 영광을 분식하는 일보다 현재의 고통을 줄이는 일에 쓰여야 한다.

 

지난해 구미역 앞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장이 “살아 있는 시민의 문제를 살펴볼 생각은 하지 않고, 죽은 사람한테 돈 쓰는 일만 궁리한다”라고 한 고교생의 지적은 정확하다. 고단한 삶을 힘겹게 살아가는 다수 시민의 침묵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헤아려볼 때인 것이다.

 

 

2017. 6. 21. 낮달

 

 

박정희 재떨이 모시는 200억짜리 자료관이라니...

1368억 들여' 박정희 도시' 만들기 나선 구미시... 누구를 위한 기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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