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참여연대 “우표 발행 고집한 남유진 시장 사과해야”… “유물관 건립도 취소해야”
결국 논란이 일었던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 우표’의 발행 계획이 철회되었다.
지난 12일 아침 8시부터 남유진 구미시장이 애초의 결정대로 우표를 발행하라며 벌인 1인시위는 도로에 그쳤다. 이날 서울 중앙우체국에서 열린 우표 발행 심의위원회 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 우표 발행 건에 대해 재심의한 결과, 우표를 발행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관련 기사 : 박정희 우표 찍으라고 ‘1인시위’, “구미시장님, 남사스럽습니다”]
지난해 4월 구미시의 발행 요청에 따라 다음 달에 열린 우표 발행 심의위원회에서 발행을 결정한 지 14개월 만이다. 우표 발행이 결정되면서 시민단체와 노동조합, 학계 등에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전직 대통령의 기념 우표를 발행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이 비판에는 구미지역 시민사회단체(아래 시민단체)들이 주체적으로 나섰다. 9월 중순께 ‘박정희 100년 기념 우표’ 총 60만 장이 발행될 예정이라는 걸 알게 된 구미YMCA, 구미참여연대, 민주노총 구미지부, 어린이도서연구회 구미지회, 전교조 구미지회, 참교육 학부모회 구미지회 등이 연명으로 이 우표의 발행 계획을 중지하라고 요구한 것은 지난 6월 14일이었다(관련 기사 : 기어코 박정희 우표 발행할 모양입니다).
시민단체는 성명에서 박정희 우표의 발행이 구미시민들이 지금까지 끊임없이 중지를 요청해 온 ‘박정희 100년 사업’의 일부로 시민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또 ‘정치적·종교적·학술적 논쟁의 소지가 있는 소재의 경우 기념 우표를 발행할 수 없다’라는 ‘우표류 발행업무 처리 세칙’에도 주목했다.
시민단체의 주장과 논리는 간단명료했다. 박정희는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가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자’라는 평가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이를 무시한 우표 발행 심의위원회의 결정은 무효라고 지적한 것이었다.
구미참여연대, 박정희 사업 백지화 요구
구미시의 ‘박정희 100년 사업’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 온 지역 시민단체 구미참여연대는 한발 더 나아갔다. 시대착오적인 방식으로 이어가고 있는 새마을운동과 박정희 기념사업 등이 단체장의 정치적 목적과 연관된 ‘박정희 마케팅’이라고 평가하고 전직 대통령 기념사업을 모두 백지화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현재 박정희와 새마을운동을 잇는 주무 부서 ‘새마을과’를 폐지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박정희의 고향 구미는 오랜 세월 동안 지역 기반의 보수 정당의 아성으로 인식되어 왔다. 각급 선거에서 예외 없이 여당 후보를 압도적 표 차이로 뽑아온 이력이 그런 평가의 기반이다. 그러나 구미에도 여느 시민들과 다른 정치적 입장을 지닌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의 정치적 선택은 압도적인 상대의 반대 선택에 묻혀버리기 일쑤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무관하게 박정희의 고향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체로 보수 유권자로 치부된다. 더러는 이른바 ‘도매금’으로 ‘박정희 치세를 그리워하는 정치적 복고주의자’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시민들은 선거 말고는 마땅히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낼 기회가 없다. 사람들이 이를 내색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삭이고 마는 이유다. 이는 시민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도 구미에서 1천억 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는 박정희 관련 사업이 이루어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더구나 박근혜가 대통령에 오르며 박정희 기념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죽은 권력이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으로 돌아온 ‘박정희의 딸’ 덕분에 박정희의 자취가 비슷하게라도 남아 있는 곳이면 공공연하게 온갖 터무니 없는 사업이 이루어졌다.
경북 문경시의 박정희가 하숙하던 집에 17억, 강원도 철원의 박정희 전역 장소에 40억, 양구의 사단장 공관에 1억6천만, 울릉도의 1박 기념관에 12억. 구미시에서 시행하는 박정희 기념사업의 예산 1,368억을 두고도 전국 곳곳에서 박정희는 기념되고 추모 되었다.
정작 민생에 필요한 예산은 대규모로 삭감되면서 박정희의 걸음이 멈춘 곳이라는 이유로 예산을 퍼부어 대는 기이한 상황을 바라보면서 혀를 차거나 시민으로서의 모욕감이나 무력감을 느낀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걸 지켜보는 것 외에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마땅히 없었다.
지난해 온 나라를 달군 국정 농단과 탄핵 사태는 무명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을 분출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었다. 비록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지역에서도 촛불이 밝혀지면서 소외되었던 시민들의 정치적 발언이 이어졌다.
구미참여연대가 구미시를 상대로 박정희 관련 사업을 감시하고 그 백지화를 요구하는 일련의 활동을 벌여나가는 것도 이들의 성원과 격려에 힘입은 바 크다. 참여연대 황대철 집행위원장은 “말을 안 할 뿐이지, 시민들의 상식은 고향 도시라는 이유로 박정희를 무조건 미화하고 우상화하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시민의 상식’과 ‘관의 몰상식’과의 싸움
남유진 시장이 100돌 기념 우표 발행을 촉구하며 우정사업본부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자 구미참여연대에서는 자원한 회원을 보내 맞불 시위로 맞섰다. 맞불 시위에 나선 시민이 든 알림판에는 “박정희 우상화 몰두하는 구미시장님, 부끄럽습니다”라고 씌어 있었다.
우표 발행 심의위원회 결과 우표 발행 계획이 철회되자 구미참여연대는 시민의 동의 없이, 국민적 합의 없이 진행된 이번 사업의 취소 결정을 환영한다며 그간 함께 해주신 시민들의 노고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황대철 집행위원장의 말이다.
“박정희 기념사업 전반에 대해 국민은 구미시와 경상북도가 추진하고 있는 ‘박정희 100년 사업’이 시대적 변화와 요구를 거스르는 지난 정권의 적폐임을 확인한 것이라고 봅니다. 더불어 주민의 삶은 돌보지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박정희’를 우상화하는 정치 세력에게 분명한 거부 의사를 표현한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시민들의 동의 없이 ‘박정희 100년 사업’을 추진하고 1인시위까지 나서 ‘박정희 기념 우표’ 발행을 고집한 남유진 시장의 사과를 요구할 작정입니다. 박정희를 ‘반신반인’이라 우상화하고,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하고, 1인시위까지 나선 남유진 시장으로 인해 구미시민들에게 돌아온 조롱과 모욕은 전적으로 그의 책임이니까요. 구미를 ‘수구꼴통의 도시’로 낙인찍히게 한 책임 말입니다.”
구미참여연대는 구미시가 올해 추진하고 있는 ‘박정희 100년 사업’을 취소할 것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구미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앞으로도 ‘박정희 기념사업’의 핵심이 될 ‘박정희 유물 전시관’(200억 예산) 건립 취소를 위해 시민들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했다. ‘죽은 자의 제사상을 차리는 일보다는 산 자들의 삶을 보살피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정대로 박정희 유물 전시관이 건립되면 박정희 생가, 민족중흥관, 새마을 테마공원을 잇는 10만 평에 이르는 ‘박정희 타운’이 완성된다. 건설비만 1,100억, 한 해 운영비만 70여억 원에 이르는 거대한 ‘우상화’의 상징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이는 구미시민들에게는 영예가 아닌 멍에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방 도시 구미가 ‘죽은 자의 이름을 뒤집어쓴 퇴행적인 도시’가 아니라 ‘사람 사는 구미’가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민의 참여가 필요한 이유다. 힘에 부치긴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이 싸움이 ‘시민들의 상식’과 ‘관의 몰상식’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2017. 7.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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