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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정말! <아깝다, 학원비!>

by 낮달2018 2021.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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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지음 <아깝다, 학원비!>

▲ 〈아깝다 학원비!〉는 교육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내놓은 사교육 해법이다. 사진은 누리집(2021) 화면

교직에 오래 있으면 ‘입시전문가’인 줄 아는 사람이 꽤 많은 듯하다. 그러나 미리 말해두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입시’는 별개다. 고등학교에 근무한 지 꽤 되지만 3학년 배정을 피해 와 사실 ‘입시’에 대해서는 나는 별로 아는 게 없다. 정 궁금해하는 사람에게는 3학년 담당 교사에게 물어보라고 미뤄 버린다.

 

사교육, 불안을 먹고 자란다?

 

▲ 비아북, 2010

굳이 입시 관련한 정보를 알려고도 하지 않다 보니 몸만 고등학교에 있지, 중학교 교사와 그리 다르지 않다. 교과 등급이나 입학사정관제, 대입 전형에 관련된 사항은 비슷하게 윤곽만 그릴 뿐 그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거의 백지나 다름없다.

 

그러나 어쨌든 3학년은 아니었지만 지난 4년 동안 담임으로 아이들을 돌봐 왔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나라의 불꽃 튀는 입시경쟁 교육의 ‘당사자’ 가운데 하나로 살아온 것이다. 학부모와 아이들이 어떻게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지, 그들이 거기에 들이는 경비가 어느 정도인지 알 만큼은 안다는 말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학력은 지역에선 상위권이다. 선발집단이긴 하지만 개인적 학력 차는 어쩔 수 없다. 입학한 후부터 아이들의 학력의 차이도 극과 극으로 갈린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너나없이 상당한 수준의 비용을 들여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시킨다. 무리해서라도 명문대에만 진학시키면 아이들의 삶이 바뀔 것이라는 이들의 믿음은 마치 거룩한 신앙 같아 보이기도 한다.

 

때로 이들의 ‘다 걸기’는 무모해 보일 정도다. 객관적으로 사교육으로 회복하거나 향상하기 어려운 성적의 아이들도 너나없이 사교육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비 보조를 받는 아이들도,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도 수십만 원의 과외에 용감하게 뛰어든다. 아이들은 그런 사실을 밝히면서도 당당하기 짝이 없다. 학급별로 편차가 있긴 하겠지만, 거의 90% 이상의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고 있어서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반별로 서너 명에 그친다.

 

사교육은 그 실질적 효율성보다는 학부모나 학생들의 불안감을 위무하는 역할을 아주 기능적으로 수행하고 있지 않나 싶다. 학부모는 무리해서라도 사교육을 시키는 거로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과 함께 불안을 벗어나려 한다. 또 아이는 아이대로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과외를 한다는 사실로 입시경쟁 대열 속에 있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하는 것이다.

 

상담하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사교육 상황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나 물어보면 아이들도 자신 없기는 매일반이다. 잘 모르겠어요……. 그럴 때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잘 판단해 보고 끊을 건 끊고. 부모님의 부담도 적지 않은 거 알지? 그 정도다.

 

공교육을 맡은 처지라 이놈의 ‘사교육’은 늘 골치가 아프다. 아예 무시할 수도, 또 떠받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결국 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말하자면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우리는 좀 어정쩡하게 사교육 문제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 사교육 시장은 학부모의 불안감으로 자란다. 책 속 통계자료.

교육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내놓은 책 <아깝다 학원비!>(비아북, 2010)는 이 어정쩡한 우리들의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해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은 2008년에 출범한 이 ‘국민운동단체’가 1년 3개월 동안 30차례의 토론회와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파헤친 ‘사교육 진실’ 10가지와 그 ‘해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루 알다시피 이 나라는 ‘교육 전문가 아닌 사람이 없지만, 정작 교육에 대해서는 아무도 쉽사리 말하기 어려운 곳’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우리 교육 현실을 아주 명쾌하게 진단하고 그 해법을 제시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드러낸 것만으로도 이 책의 미덕은 차고 넘친다.

 

전문가가 내린 사교육에 관한 진실과 해법

 

‘사교육에 관한 진실’을 말하는 이가 혹시 ‘공교육’ 담당자가 아닌가 하는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 박재원(비상공부연구소 소장), 이범(교육평론가, 서울시 교육감 정책보좌관), 이병민(서울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이남수(솔빛이네 엄마표 영어 대표 강사), 조남호(스터디코드 대표) 등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사교육 전문가 22인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지혜가 맵짜다.

 

이 책은 적지 않은 부담에도 불구하고 아이 교육비 앞에서는 속수무책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는 학부모들에게 ‘투자 대비 효과’를 따지며 ‘옆집 엄마에 휘둘려서, 학원가가 조장한 과대광고에 혹해서’ 아이를 학원에 맡기는 학부모들에게 ‘사교육에 관한 불편한 진실’ 10가지를 제시한다.

 

1. 학원에 보냈더니 성적이 오르던데요?

2. 아이가 원해서 학원에 가는 것도 문제가 되나요?

3. 학교 수업만 어떻게 믿어요? 학원은 개별 지도를 하잖아요

4. 맞벌이 가정은 학윈 외에 대책이 없어요

5. 학원에서 선행학습하면, 학교 진도 나갈 때 효과 있지 않나요?

6.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라 선행학습이 필요하겠죠?

7. 영어교육은 빠를수록 좋은 것 아닌가요?

8. 요즘 초등학생들의 단기 조기유학이 필수라던데요

9. 외국어고에 가려면 학원의 로드맵을 무시할 수 없잖아요?

10. 성적을 올려놓으면 진로 선택에 유리하지 않을까요?

 

이 열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불편한 진실’의 정체다. 학부모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이 질문은 바로 이 땅의 21조 6천억 원 사교육 시장을 창출하는 원천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학부모들의 조바심과 불안이 똬리를 틀고 있다. 어쩌면 이 나라 사교육 시장은 학부모와 아이들의 불안과 두려움에 기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이 파헤치는 진실로 뜻밖에 간단하고 명쾌하다. ‘학원의 신뢰’는 엄청난 양의 문제 풀이로 이루어진 단기간의 성적향상이 초래한 ‘착시효과’다. 성적은 일부 오르지만, 문제는 그것이 ‘개념의 이해’와 무관하게 이루어진 기능적 해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학교와 달리 학원은 ‘개별 지도’를 한다는 학부모의 믿음도 사실은 허구에 기초해 있다. 그럴듯해 보일 뿐, ‘최소 비용으로 최대 매출’을 지향하는 학원이 비즈니스의 원리를 외면하는 건 있을 수 없다. 학생들의 개별 학력에 맞추어 ‘커리큘럼을 세분화’를 꾀하는 학원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게 책의 결론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마치 학력 향상 ‘신화’의 기초로 일컬어지는 ‘선행학습’을 본질을 발기발기 파헤친다. 선행학습을 두고 이루어지는 이런저런 논의에 대해 사교육의 당사자인 학원 원장들조차 그것이 일종의 ‘폭력’이며 상황에 따라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입을 모은다고 한다.

▲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선행학습'이 아니라 '복습'이다. 책 속 통계자료.

선행학습은 학생들의 인지 발달 수준에 맞지 않는 학습 내용과 과도한 학습량이 특히 문제다. 이는 결국 학습자의 고통과 무관하게 진행되면서 아이들을 수학 같은 교과목에서 멀어지게 하고, 고등학교 때 수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을 양산하는 주범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2, 3년을 앞서가는 비정상적 선행학습은 ‘효과보다 부작용이 훨씬 큰 무모한 선택’일 뿐이다.

 

선행학습이 필요하고 그것을 무리 없이 소화하는 학생도 있긴 있다. 이들은 일반 상위권이 아니라 석차 백분위 5%에 드는 최상위권 아이들이다. 학교의 정상적 교육과정에서 다루는 주요 개념과 원리,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심화 과정에서도 충분한 성취도에 도달한 학생들이다.

 

선행학습이 해로운 이유는 그것이 진도를 앞지르는 데 급급해 공부한 것을 기억 속에 저장하지 못해 학습 효과로 이어지지 못하며 학생의 자기 주도적 학습 습관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배운 것들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한 복습과 심화학습이라는 것이다.

 

‘잘 팔리고 성적향상 책임에서 자유로운’ 최고의 상품, 선행학습

 

아이들은 학원에서 배우는 선행학습으로 자신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은 학교에서 배우는 정상 과정조차 소화하지 못한 채 앞서간 선행학습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그런 착시가 아이들을 사교육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도 수학 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고 학원의 선행학습 숙제에 골몰하고 있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이들에 대한 담당 교사들의 평가는 안타깝지만, 냉정하다.

 

“수업은 안 듣고 학원 숙제하는 아이들 있지요. 얘들의 끝은 뻔해요. 학교 수업도 소화하지 못한 채 앞서 배운 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결국 이 녀석들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 채 날이 갈수록 수학에서 멀어지게 되어 있으니까요…….”

 

많은 학부모가 이 책을 읽고 ‘개안’을 경험한다고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대부분 학부모는 여전히 사교육의 신화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문제는 단순 명쾌한데 현실은 복잡다단해서일까. 이런 진실을 믿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확신 부재’에 있는 듯 보인다. 진실은 뻔한데도 그게 자기 문제가 되면 불안해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 사교육 효과를 다룬 신문 보도 ⓒ 〈한겨레〉 PDF

마침 ‘중고생의 하루 2시간 넘는 사교육에 효과가 없다’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 결과가 보도되었다. 학부모들은 자녀가 학년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사교육을 시키지만, 실제 사교육 효과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진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수능 점수도 사교육보다는 혼자 공부하는 시간에 좌우된다고 했다.

 

여기서 ‘혼자 공부’는 곧 자기 주도적 학습이다. 아이들에게 학원에서 강사에 기대어 하는 공부보다는 스스로 주도하는 공부가 훨씬 효율적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제때 복습하면서 스스로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어 가는 것이 정답이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은 ‘학부모의 믿음과 용기’로

 

선행학습에 대한 학부모의 맹신은 결국 왜곡된 입시 현실의 결과다. 남보다 앞서가려는 학부모들의 욕망은 ‘선행학습’이라는 아주 매력적인 상품을 내놓은 사교육 시장의 이윤 동기와 만난 것이다. ‘선행학습’은 ‘잘 팔리고 비용은 적게 들며 성적향상 책임에서 자유로운’ 최고의 상품이다.

 

아이들에게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을 간략하게 짚어 주었다. 대부분 머리를 끄덕인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래도 불안해서 아이들은 다시 학원으로 과외로 달려가고 아니라고 하면서도 사교육의 늪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전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보충과 심화학습이 필요한 자녀를 학원에 보내 몇몇 아이들의 들러리로 세워 효과도 없는 공부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러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학부모는 불안과 두려움을 사교육 상품과 맞바꾸며 자위할 뿐이다.

 

이 나라의 학부모들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자녀와 자녀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고, 욕망을 다듬고 갈무리할 줄 아는 용기일지도 모르겠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입시 고통 없는 세상’을 만드는 주역은 역시 학부모들의 올바른 선택인 까닭도 거기 있을 터이다.

 

 

2011. 4.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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