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나들이 - 동네 한 바퀴와 산행
이제 곧 봄이 오는가 싶으면 어느덧 봄은 우리 밭 밑에 와 있다. 날마다 새로워지는 대기로, 맨살에 휘감기는 햇볕으로도 오지만, 역시 봄의 기척은 꽃눈과 꽃망울, 그리고 마침내 피어난 꽃으로 완성된다. 겨우내 추위를 이기고 속으로만 자라난 꽃눈은 봄바람과 만나면서 비로소 그 존재를 시나브로 드러내는 것이다.
올봄은 지난해보단 더디 온 듯하다. 아파트 화단에 해마다 2월이면 꽃을 피우던 산수유가 삼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꽃눈을 틔웠다. 산밑 동네에 오는 봄이 더디다는 걸 인정해도 그렇다. 온 세상에 다 봄이 와도 창밖과 울타리 너머에 그 기척이 없으면 ‘나의 봄’은 이르지 않은 것이 아니던가.
지난 금요일에 겨우내 발을 끊었던 산자락에 다시 올랐고 오늘 한 차례 더 다녀왔다. 산어귀까지 이르는 동안 동네 여기저기서 봄꽃을 만났다. 맨 먼저 만난 꽃은 명자꽃이다. ‘산당화(山棠花)’라고도 하는 이 빨간 꽃을 나는 한 시골 중학교에 근무하던 시인 안도현이 교장 선생에게 불려갔다 나와 담배를 피우던 숙직실 처마 밑에 핀 꽃으로 기억한다.
“교장 선생님한테 불려가 혼나고, 너도 / 숙직실 처마 밑에 나와 섰구나 / 할 일이 많아서 / 그리 많은 꽃송이를 달고 / 몸살 난 듯 꽃잎들이 / 뜨겁도록 붉구나” -안도현, ‘산당화’ 중에서
날이 갈수록 가지에 총총 피어나는 꽃송이가 탐스럽고 나날이 짙어지는 붉은빛 꽃잎과 노란 꽃술이 곱디고운 이 꽃은 그 자색이 남달라 관상용으로 길러왔다고 한다. 꽃은 분홍색, 붉은색·담백색 등으로 다양하게 피는데, 우리 동네 명자꽃은 모두 붉은색이다.
명자(榠樝)나무는 동네에 두 그루가 있고, 산행의 끝자락에는 자생 군락이 있다. 첫날에 연한 붉은 꽃이 핀 나무는 엉성해 뵈는 두 번째 나무였다. 그저께는 피지 않았던 첫 번째 명자는 이제 만개하고 있었고, 군락에는 아직도 두어 송이가 간신히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조그만 교회당 앞에 선 살구나무는 손이 닿지 않는 위쪽 가지에만 꽃이 피었다. 지난겨울이 너무 혹독했던가, 아래쪽 가지에는 꽃눈조차 보이지 않았다. 집 근처 양지쪽 산어귀 살구나무는 진작에 꽃을 피웠었다. 같은 살구나무인데, 한쪽은 이제 겨우 꽃눈을 틔웠는데, 다른 쪽은 슬슬 꽃이 지고 있다. 사람에게 개인차가 있듯, 나무에는 ‘개체차’가 있는 탓이다.
매화도 이미 철이 지난 듯한데, 산행길 길목의 어린나무와 동네 음식점 앞마당의 나무에는 뒤늦게 단정하고 정갈한 매화가 피었다. 같은 가지에 달린 꽃도 한눈에 잘난 놈과 못난 놈이 확연하다. 꽃잎이 가지런하고 온전한 놈이 있는가 하면 잎이 균형이 맞지 않아 뒤틀린 놈, 꽃술이 지나치게 자라 흉해 보이는 것 등 가지각색이다. 저마다 이목구비를 갖추고 있지만,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의 구분이 그 균형과 정제(整齊)에 있음은 인간과 나무가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아, 지천이어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우리 어릴 적의 ‘참꽃’ 진달래도 피어 있었다. 이제 꽃망울 정도는 맺지 않았겠냐고 생각했는데, 산등성이는 아직 ‘불붙은’ 정도까진 아니어도 곱게 피어난 진달래가 꽃수를 놓고 있었다.
나는 진달래를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배운 동요 ‘지게꾼과 나비’와 함께 기억하곤 한다. 나뭇짐을 가득 얹은 지게를 진 노인의 뒷모습과 나뭇단에 비스듬히 꽂힌 진달래 송이와 주변을 날아오르는 몇 마리 나비 떼가 그려진 삽화도 빼놓을 수 없다.
할아버지 지고 가는 나뭇지게에 / 활짝 핀 진달래가 꽂혔습니다.//
어디서 나왔는지 노랑나비가 / 지게를 따라서 날아갑니다.//
뽀얀 먼지 속으로 노랑나비가 / 너울너울 춤을 추며 따라갑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주문에 따라 모두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억양으로 그 노래를 읽었다. 이 노래가 7·5조 3음보 율격의 민요 가락이라는 걸 알게 된 것은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민요조 율격을 가르치면서다. 어릴 적 음악책에서 배운 노래들, ‘반달’과 ‘학교 종’, ‘꽃밭에서’, ‘섬집 아기’, ‘태극기’ 등이 모두 같은 7·5조라는 걸 얘기해 주면 아이들은 탄성을 지르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것은 마치 돌이킬 수 없는 추억의 장면처럼 내 뇌리에 각인되어 있지만, 그것은 이미 지난 세기의 풍경이다. 이제 나무꾼도 없고, 지게에 꽂힌 진달래를 따라가는 노랑나비도 보기 어렵다. 21세기의 아이들은 더는 그런 풍경을 상상하지 못한다.
늘 다니는 길이어서 나는 동네의 어느 골목에 무슨 꽃이 피었는가를 훤하게 안다. 언젠가 우리 동네 꽃 지도를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할 정도다. 산길도 마찬가지여서, 나는 눈을 감고도 어느 길섶에 무슨 꽃이 피는가를 꿰고 있다.
산행을 나서면서 나는 진달래는 그만두고 지난해 만났던 할미꽃을 기대했다. 산어귀에 있는 어떤 무덤가에 무리 지어 핀 할미꽃은 그러나 무슨 병충해가 꾀었는지 꽃대에 진딧물이 가득 붙어 있었었다. 올해는 어떨까 하고 그 무덤가를 둘러보았는데 예전의 그 꽃 말고 주변에 몇 포기가 듬성듬성 피어 있었다.
정작 새로운 할미꽃 더미를 찾은 데는 전혀 생각지 않은 장소였다. 산행의 끝인 아랫동네의 저수지가 보이는 무덤가에서다. 잠깐 쉬고 되짚어 돌아오는 곳인데 어쩌다 패랭이꽃이 한두 번 눈에 띄는 곳이었다. 무덤 왼쪽에 소복하게 핀 꽃을 보고 나는 반색을 했다.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 전역 산지에 분포한다는 여러해살이풀 할미꽃 잎은 전체에 흰 털이 빽빽하게 나서 흰빛이 돌지만, 실제 표면은 짙은 녹색이다. 줄기 끝에서 밑을 향하여 달리는 적자색 꽃이 핀다. 흰털로 덮인 열매의 덩어리가 하얀 머리카락 같아서 할미꽃이라고 하며 설총(薛聰)의 설화 ‘화왕계(花王戒)’에선 ‘백두옹(白頭翁)’으로 불린다.
할미꽃이 언제부터 귀한 꽃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릴 적에 할미꽃은 진달래처럼 지천이었다. 양지바른 무덤들 주위에 다소곳이 피어나던 그 꽃! 중학교 졸업반 때 돌아가신 할머니께선 내가 꺾어온 할미꽃으로 늘 ‘족두리’를 만들어 주시곤 했다.
그때, 할머니에게서 족두리 만드는 법을 배워둘걸, 하고 뉘우치게 된 건 성년이 되어서다. 할미꽃의 꽃자루를 떼어 버리고 노란 꽃술을 위로 하고 자줏빛 꽃잎을 밑으로 말아 돌려서 조그마한 가시 같은 것으로 고정하면 화려하고 예쁜 족두리가 된다는데….
뒷동산의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 늙어서도 할미꽃 젊어서도 할미꽃
싹 날 때에 늙었나 호호백발 할미꽃 / 천만 가지 꽃 중에 무슨 꽃이 못 되어
가시 돋고 등 굽은 할미꽃이 되었나 / 아하하하 우습다 꼬부라진 할미꽃
심훈이 1935년 <중앙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직녀성>에 나오는 동요다. 할미꽃을 꺾으며 놀던 아이들이 불렀다는 노래지만 내겐 낯설다. 우리보다 이전 세대의 노래였거나 우리 지역엔 구전되지 않았던 노래였을까.
할미꽃은 차마 꺾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게 흔한 꽃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걸 곁에서 바라보는 게 꺾어서 쥐는 것보다 낫다는 걸 저절로 깨달은 덕분이다. 아, 동네 꽃 지도도 쓸데없다. 그걸 완성할 때쯤, 이미 꽃들은 지기 시작할 터이니 말이다. 나는 빈손이지만, 훨씬 넉넉해져서 천천히 산에서 내려왔다.
2021. 3. 23.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새순과 꽃 (0) | 2021.03.28 |
---|---|
숨어 있는 봄 (0) | 2021.03.28 |
어떤 봄날에는… (0) | 2021.03.16 |
‘봄 기척’ 산수유와 매화 (0) | 2021.03.07 |
이중섭 ‘은박지 그림’, 여기서 나왔습니다 (0) | 2020.11.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