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를 정리하면서 마침내(!) 책을 좀 ‘버리기’로 했다. 크고 작은 서가 여섯 개가 가득 차게 된 게 꽤 오래전이다. 새로 서가를 들일 공간도 없고 해서 칸과 칸 사이의 여백에다 책을 뉘어서 넣거나, 크기가 작은 책은 두 겹으로 꽂는 등으로 버텨왔다.
삼십 년이 넘게 모아온 책이지만 어차피 장서가(藏書家) 축에 들 만한 규모도 아니고, 그걸 추구한 적도 없다. 그러나 조그만 책꽂이에다 꽂으며 불려온 책이 하나씩 들이는 서가를 채울 만큼 늘어나면서 그걸 바라보는 마음이 넉넉해졌던 것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책 읽기의 강박 30년, 책을 버리다
대학 시절에야 워낙 궁박한 처지여서 책도 마음대로 한 권 못 샀고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곤 했다. 매달 책을 사서 읽게 된 것은 초임 발령을 받아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서부터다. 그때를 아득하게 회고하면서 언젠가 나는 그렇게 썼다.
한 달에 한 번쯤 인근 도시의 큰 서점에서, 많으면 일여덟 권, 적으면 대여섯 권의 책을 고르고, 그것의 합계액과 내 능력을 저울질 해보며 보낸 시간들이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지금도 남아 있다.
- “문학 교사의 책 읽기(1998)” 중에서
의도적 책 읽기가 시작된 게 그 무렵이다. 마구잡이식의 난독(亂讀)이었던 중고등학교 때를 거쳐 대학 시절에야 겨우 독서의 의미나 목적 따위를 인식하게 된 것이었다. 대체로 문학 쪽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던 성장기의 책 읽기를 뛰어넘는 게 필요했다.
그 무렵에는 내 독서가 가진 편협성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와 인문·사회과학 쪽의 책 읽기에 힘썼는데, 그게 내 지성의 균형감각 회복에 얼마만 한 이바지를 했는지는 잘 짚이지 않는다.
다만, 어느 해 겨울 화랑교육원의 무슨 연수에 참여했다가, 강의 듣기를 포기하고, 을유문화사 판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의 가지’(그것도 세로쓰기에다 국한문 혼용의!) 상하권을 이 잡듯이 읽었던 게 그나마 기특한(어느 작가는 어떤 칼럼에서 최근에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완독한 걸 ‘자랑스럽다’고 쓰고 있다. 나는 그의 긍지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이다. 고전의 완독이란 기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작업이기 때문이다.)짓으로 여기고 있을 뿐이다.
- “문학 교사의 책 읽기(1998)” 중에서
돌이켜보면 내게 책 읽기란 일종의 강박이었던 것 같다. 정작 제대로 읽지도 못하면서도 무언가 읽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거나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이 두꺼워지는 걸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 강박의 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알지 못하면서.
나는 일체의 ‘잡기’와는 무관하게 살아왔다. 바둑이나 장기는 물론이고, 당구도 쳐 본 적이 없으며, 그 흔한 고스톱도 길을 잘 몰라 더듬거리는 수준이다. 그것들을 익힐 수 있는 조건이나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정작 체계적인 독서나 그것을 통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지도 못했으면서도 늘 ‘책 읽기’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살아온 덕택이다.
하여, 여전히 나는 도스토옙스키와 토마스 만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문학 교과를 가르치면서도 정작 그 본질과 의미의 언저리만 빙빙 돌며, 천박한 참고서류의 주변 지식만을 주절거리는 수준이다. 정말 제대로 된 책 읽기는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베스트 셀러 주변만 얼쩡거리고, 줄을 쳐 가며 읽으리라고 작정하고 산 여러 권의 책들을 빈약한 서가에 처박아 두고 있으며, 사십 대 중반을 넘으면서 눈은 점점 침침해지고 그저께 읽은 책의 내용이 요령부득이 되고 마는 건망증에 시달리고 있다.
헤밍웨이가 ‘아무리 애를 써 본다 하더라도 우리는 고작 도스토옙스키의 현관에 머물러 있을 뿐’이라고 갈파했던 그 도스토옙스키의 세계에, 현관이 아니라, 그 담 밑에라도 언제쯤 나는 서 있게 될 것인가. 언제쯤 나는 제대로 된 책 읽기와 제대로 된 문학 교사로 서게 될 수 있을까.
- “문학 교사의 책 읽기(1998)” 중에서
진부한 일상이 된 독서
독서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조바심으로 전전긍긍해 온 그 강박이 결국 손안에 움켜쥔 한 움큼의 물처럼 시나브로 스러져 버리는 것이란 걸 스스로 확인한 것이다.
독서에 대한 강박은 좋게 말하면 인식에 대한 지향이지만 달리 보자면 문화 기호적 향락과 소비를 추구하는 일종의 딜레탕티슴(dilettantisme, 호사주의)으로 폄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지향을 책 속의 이론과 질서에서 찾으려는 태도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니 말이다.
어느 날부터 내게 책 읽기는 진부한 일상의 한 갈피가 되었다. 예전처럼 독기를 품고 마치 싸움하듯 몇 날 며칠을 골몰해서 책을 읽어대는 결기를 버린 지 오래되었다는 얘기다. 꼭 읽어야 할 책, 반드시 읽고 싶은 책에 대한 경계도 희미해졌다. 손이 닿으면 읽고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리는 일상의 물결에다 몸을 맡겨 버린 것이다.
- “책 읽기, 그 도로(徒勞)의 여정”(2008/09/15) 중에서
강박에서 놓여나면서 나는 책과 얼마간 멀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매달은 아니지만 두어 달 만에 한 번씩이라도 책을 사는 일을 되풀이했다. 사 놓고 제대로 읽지 못한 책도 늘어났어도 그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지난 2월 말에 퇴직하면서 나는 더는 책을 사지 않으리라고 마음먹었다. 책을 매입하는 비용도 부담스러워지는 게 연금수급자가 아닌가 말이다. 굳이 읽어야 할 책이 있으면 도서관을 찾으면 될 거라고 여겼지만, 그간 두 차례나 책을 샀다. 마치 금단현상처럼 나는 책을 주문하고 시방 그걸 세월아, 하고 읽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에도 한두 차례 책을 버린 적이 있다. 주로 이사를 하면서 짐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허술한 책이라도 그걸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걸 사고 읽을 때의 기억이 아스라하게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나마 쉽게 버릴 수 있는 책은 잡지 따위였다.
내가 처음 버린 책은 꽤 여러 해 동안 정기 구독했던 월간 <우리교육>과 <말>이었다. 전교조가 출범하던 해 창간된 <우리교육>은 한동안 참교육에 대한 열망을 지피고 전파하는데 이바지했던 월간지였다. 4~5년 동안 쟁여온 <우리교육>은 무엇보다 무게가 만만치 않았다.
그걸 버리면서 난 우정 생각했다. 까짓것, 필요하면 도서관을 이용하면 되겠지……. 그러나 정작 그걸 참고할 일이 별로 없었으니 도서관을 이용할 일도 없었다. 세월이 수업 현장에서 열정도 앗아가면서 우리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늘 지기만 했기 때문이다.
내가 버린 책들
학교에서 <말>을 팔던 영업사원에게서 나는 <말>을 정기구독하고 그동안 간행된 책을 묶은 합본호를 받았다. 보도지침 사건(1985)을 폭로한 이 진보언론에 대한 선호가 높았던 시기였다. <말>을 정기 구독한 것은 아마 이삼 년쯤이었으리라. 나는 2000년대에 합본호 한 권만 남기고 이 책들을 모두 버렸다. 그땐 이미 운동이 쇠잔해져 버린 시대였다.
이번에 버린 책도 잡지와 누렇게 바랜 거의 40년 전의 대학 교재들이다. 80년대 복간 이후 한동안 꾸준히 사서 읽었던 <창작과비평>, 초임 시절의 계간 <문예중앙>, 80년대 후반에 창간되었던 <사회와 사상>과 이를 이었던 <사회평론>까지. 정작 계간 문학지보다 이 사회과학 잡지를 버리면서는 나는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아이가 노끈으로 묶어놓은 책 꾸러미를 수레에 실어 나가자 마음이 휑해졌다. 그렇지 않으리라 자신했는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게다. 책을 쓰레기장에 가져갔더니 어떤 남자가 반색을 하며 받아갔다던가. 글쎄, 무어 달라질 게 있는가. 세월이 그렇고 나도 이제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더 오래되었지 않은가. 묵은 책과 함께 미련도 버려야 마땅한 것이다.
2008년에 쓴 “책 읽기, 그 도로(徒勞)의 여정”에는 한영애의 노래 ‘봄날은 간다’를 붙여 놓았다. 아마 그 글을 쓰던 기분이 그 독특한 음색과 창법의 여가수가 부르는 늘어지는 노래와 맞아떨어졌던 모양이다. 8년 전에 들었던 그 노래를 다시 붙여 놓고 잠깐 청승을 떨어볼까 싶다.
2016. 8.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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