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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 최○○의 ‘외조카’라고?

by 낮달2018 2021. 3. 21.

친척 사이의 관계나 거기 따른 호칭의 체계는 꽤 복잡하다. 이른바 ‘핵가족’ 출신의 젊은 세대들에겐 명절 때 만나게 되는 친척들 사이의 관계와 호칭을 이해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다. 갓 시집온 새색시나 신행 간 새신랑이 새 사람을 보겠다고 모여든 친척들 앞에서 기가 질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항렬’, 관계와 호칭의 출발점

 

친척은 혈연과 혼인으로 이루어진 관계다. 혼인을 통해 새로운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이 친족 관계는 확장되고 복잡해진다.

 

혼인은 다른 가문과 관계를 맺는 일이어서 이 관계망은 한결 더 복잡해지는 것이다. 친족 관계의 호칭은 부계(父系)와 모계(母系)는 물론 남매 사이에서도 갈린다.(더구나 우리말에선 ‘부르는 말’인 호칭과 ‘가리키는 말’인 지칭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혼인으로 가정을 이룬 남녀가 처가와 시가의 질서에 익숙해질 무렵이면 이 관계나 호칭에 대한 문리가 트이기 시작한다. 호칭만으론 종잡을 수 없었던 관계가 자주 만나게 되면서 자연스레 깨달아지기 때문이다. 친족 관계나 호칭에 쓰이는 한자어에 대한 이해도 그런 접촉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대체로 친척 사이의 위계(位階)를 결정짓는 것은 ‘항렬(行列)’이다. 항렬은 “자기와 같은 시조에서 갈라져 나간 다른 계통에 대한 대수 관계를 표시하는 말”로 “형제자매 관계는 같은 항렬로 같은 항렬자를 써서 나타낸다.”(다음한국어사전)

 

제일 높은 항렬인 ‘조항(祖行)’은 ‘ 할아버지뻘이 되는 항렬’이다. 그다음이 아저씨뻘 되는 항렬인 ‘숙항’인데 이 숙항 관계에서의 호칭은 ‘아저씨’, ‘아주머니’다. 경상도에서 미혼의 삼촌을 ‘아재(아저씨)’라고 부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삼촌은 혼인하게 되면 ‘작은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4촌인 5촌은 ‘종숙(從叔)’, 친근하게 일컬어 ‘당숙(堂叔)’이라고도 하는데 호칭은 ‘아저씨’다. ‘당숙모’는 당연히 ‘아주머니’로 부른다. 처가에 가도 상황은 비슷하다. 아내의 항렬을 기준으로 그 혈족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호칭을 쓰면 되는 것이다.

 

윤동주는 송몽규의 ‘이종’이 아니라 ‘외사촌’이다

 

부모의 여자 동기는 각각 고모(姑母), 이모(姨母)다. 이들의 자식들이 각각 고종(姑從)과 이종(姨從)이니 나와는 고종사촌, 이종사촌이 된다. 어머니의 남자 동기는 외삼촌인데 이들의 자식이 외종(外從)이다. 흔히 외사촌이라고 하는 관계다. (여기서 ‘종從’은 ‘사촌’이라는 뜻이다. 재종再從은 6촌, 삼종三從은 8촌이다.)

 

▲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는 친구들에게 윤동주를 ‘이종사촌’이라 소개하고 있지만, 이는 잘못이다.

영화 <동주>(2015)에는 송몽규(박정민 분)가 친구들에게 윤동주를 소개하면서 자신의 ‘이종사촌’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송몽규는 동주의 부친 윤영석의 여동생 윤신영이 송창희에게 출가하여 낳은 아들이다.

 

따라서 동주에겐 송몽규는 고모의 자식이니 고종사촌이고, 송몽규에겐 동주가 외삼촌의 아들이니 외사촌이 된다. 전기 영화인데 이해되지 않는 오류다.

 

종형제가 동항(同行, 같은 항렬)의 형제간을 이른다면 숙질(叔姪), 즉 ‘아재비와 조카’ 사이는 숙항(叔行)에 해당한다. 이들 사이의 촌수는 홀수로 전개된다. 3촌, 5촌, 7촌, 9촌이 그것인데, ‘조카’인 ‘나’를 기준으로 보면 삼촌은 아버지의 형제, 5촌은 아버지 종형제(4촌), 7촌은 아버지의 재종형제(6촌)다. ‘나’에게 이들은 각각 큰(작은)아버지, 당숙(종숙), 재당숙(재종숙), 삼종숙이 된다.

 

‘아저씨’인 나를 기준으로 보면 친형제의 자식이 ‘조카’고, 종형제(4촌)의 자식은 ‘종질’, 재종형제(6촌)의 자식은 ‘재종질’이다. 조카는 나를 ‘큰(작은)아버지’로 부르지만, 종질과 재종질은 ‘아저씨’로 부르게 된다.

 

아버지 여자 동기의 자식은 따로 ‘생질(甥姪)’(남), ‘생질녀’(여)라고 부른다. 생질의 ‘생(甥)’은 자매의 자식을, ‘질’은 형제의 자식을 가리키는 말이니 생질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하는 이(정재도)도 있다.

 

또 여자가 자기 여자 형제의 자식을 이를 때는 ‘이질(姨姪)’이라고 한다. 지난해 최○○의 국정농단 사건에 관련된 보도에서 ‘외조카’란 말이 쓰인 적이 있었다. ‘외조카’는 ‘외종질(外從姪)’의 비표준어로 ‘외종사촌’(외사촌)의 아들을 이르는 말이다.

 

장○○는 최○○의 ‘이질’이다

 

그런데 예의 보도는 최○○과 그의 언니 최순득의 자식인 장 아무개, 장○○의 관계를 일러 외조카라 했으니 이는 명백한 잘못이다. 장○○에게 최○○은 이모고 장○○는 최○○에겐 언니의 자식이니 ‘이질’이라야 맞는 것이다.

 

▲ 최○○에게 장○○ 남매는 자기 여자 형제의 자식이니 ‘외조카’가 아니라 ‘이질’이다.

한 대(代)를 더 내려가 보자. 내 자식의 자식은 손(孫)이고, 내 형제의 손은 ‘종손(從孫)’이다. 종가의 대를 잇는 ‘종손(宗孫)’과는 글자가 다르다. 내 종형제의 손은 ‘재종손(再從孫)’이다.

 

며느리를 이르는 말은 모두 ‘며느리 부(婦)’자를 쓴다. 아들 며느리를 자부(子婦), 손자며느리는 손부(孫婦), 조카며느리는 ‘질부(姪婦)’다. 사위도 마찬가지로 ‘사위 서(壻)’자를 써서 조카사위는 ‘질서(姪壻)’, 손자사위는 ‘손서(孫壻)’로 쓰는 것이다.

 

꽤 복잡해 보이지만 이 관계를 이르는 기본적 개념을 이해하면 이는 그리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 위치를 살펴보면 그것을 관통하고 있는 질서랄까, 원리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

 

 

2017. 3. 2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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