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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제보자와 ‘조직 배신자’ 사이

by 낮달2018 202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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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익’ 앞에 눈을 감는 우리 사회의 ‘조직인’들 

▲ 공익제보로 상을 받는 이해관 KT 새노조 위원장. ⓒ 참여연대

또 한 명의 노동자가 해고되었다. ‘살인’과 진배없다는 해고 앞에 우리는 무심해져 있다. 비몽사몽간에 눈을 번쩍 떴다가 이내 눈을 감아버린다. 그런데 이 사람은 공익 제보자다. 제주도의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을 위해 케이티(KT)가 국제전화를 가장한 별도의 국내 통신망을 구축했다는 사실을 내부 고발했던 이해관(49) KT 새 노조위원장이 바로 그다. [관련 기사]

 

해고 사유는 간단하다. KT는 “병가 신청이 승인되지 않았는데도 10일 넘게 근무지를 이탈하고, 시상식 참여를 위해서 무단 조퇴했다”라며 이 위원장을 해임 처분했다. 줄이면 ‘무단이탈’과 ‘무단조퇴’를 번갈아 했다는 얘긴데 사실 징계 사유는 ‘무단조퇴’가 먼저였다.

 

공익제보와 ‘해고’ 사이

▲ 우리 사회의 유명 내부고발자들. 왼쪽부터 이문옥 전 감사관, 윤석양 이병, 한준수 군수, 이지문 중위

이 씨는 공익제보의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참여연대의 ‘의인상’, 한국투명성기구의 ‘투명사회상’ 등을 받았다. 해고 사유인 ‘무단조퇴’는 바로 이 시상식에 가려고 낸 조퇴를 KT가 불허함으로써 비롯된 것이다. 1주일 전부터 낸 조퇴 신청을 회사가 끝내 허가하지 않자, 그는 시상식에 가기 위해 이틀간 한 시간씩 앞당겨 퇴근했다.

 

‘무단이탈’은 이 씨가 지난 10월 허리 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하고, 이후에 통원치료를 받으면서 낸 병가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무단결근 처리가 된 것을 이른다. 합법적인 조퇴나 병가 신청이 허가되지 않으면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단조퇴나 무단결근’이 된다는 매우 편리한 형식 논리다.

 

공익제보 이후 바로 회사가 보복 조치로 이 씨를 경기도로 전보 발령했고,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가 ‘불이익 처분’을 취소할 것을 결정했지만 회사는 이에 불응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마침내 KT는 이 씨의 생존권을 빼앗는 해고를 단행한 것이다.

 

이 씨는 공익 제보자, 흔히 말하는 내부고발자다. 내부 고발을 영어로 ‘Whistleblowing’(호루라기 불기)라고 하는데 이는 영국 경찰관이 호루라기를 불어 시민의 위법 행위와 동료의 비리를 경계하던 것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네덜란드에서는 공익 보호의 감시인으로서 ‘bell-ringers’(벨을 울리는 사람)라고 부른다고 한다. 영어로 딥 스로트(Deep Throat)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이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내부고발자의 암호명이었던 데서 유래한다.

 

내부고발자는 ‘조직 내부 혹은 외부의 부정 거래나 불법 행위 등에 대한 정보를 신고하고 공개하는 사람’이다. 내부 공익 신고는 조직안에서 보면 ‘항명, 불복으로 보이는 조직 규범의 일탈 행위’다. 그러나 전체 사회에서는 ‘조직의 부패, 부정 등의 유해한 활동에 항거함으로써 일반 시민의 안위를 도모하는 의로운 행위’로 간주한다.

 

내부 공익 신고는 자신의 조직이 얻게 될 이익보다 공공의 불이익이 더 클 때, 개인의 양심적 판단, 전문 직업적 윤리, 사회 일반에 대한 책임 등에 토대를 둔 윤리적 행위이다. 2011년 3월, 공익신고자 보호법(법률 제10472호)이 제정된 것은 이러한 공익 신고의 공공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부 고발을 영어로 'Whistleblowing'(호루라기 불기)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익 신고의 사례는 적지 않다. 1990년 보안사의 민간인 불법 사찰 기록을 공개했던 윤석양 이병, 감사원과 재벌의 유착 비리를 고발했던 이문옥 감사관, 1992년 군 부재자 투표의 부정을 고발한 이지문 중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단체장을 통해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한준수 연기군수 등이 대표적 공익 제보자다.

 

공익제보, 혹은 내부 고발

 

공익제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반응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은 내부고발자가 ‘공익과 조직의 의무를 위한 희생적인 순교자’라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내부고발자를 개인의 영광과 명예를 추구하는 ‘조직의 배신자’로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당연히 법률은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두고 있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불이익 조치 등의 금지’(제15조) 조항을 두고 있고, ‘불이익 조치’(제2조 6항)를 유형별로 규정하고 있다. KT가 단행한 전보, 해임 등은 바로 법률에서 들고 있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인사 조치’고 ‘신분상의 불이익 조치’다.

 

부패 방지를 위한 국가기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이 씨에게 내린 KT의 전보 조치를 취소하라는 결정을 한 것은 바로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KT는 이 결정에 불응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종내는 이 씨를 해고했다.

 

형식상 민영화된 기업인 KT가 굳이 국가기관인 국민권익위원회의 결정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사기업이긴 하지만 KT는 국민연금공단이 최대 주주로 있는 회사다. 적어도 우리 사회의 공공선에 바탕을 둔 법률과 관행을 따를 이유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문제를 처리해 온 KT의 모습은 일반의 상식을 간단히 뒤집어버린다. 내부 의혹을 폭로한 조직 구성원에 대한 비상식적인 인사나 해고 조치가 보복이라는 건 상식이다. 적어도 이 문제를 바라보는 KT의 인식은 공익 제보자가 아니라 ‘조직의 배신자’에 머물러 있는 건 분명하다.

 

내부의 비리 의혹을 폭로한 이 씨에 대한 회사의 대응이 보호한 것은 정말로 KT의 이익일까.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선정하기 위한 전화투표가 국제전화가 아니라, KT가 전용망을 통해 별도로 구축한 국내전화였다는 폭로로 훼손된 명예가 공익을 위해 진실을 알린 이 씨를 해고함으로써 얻게 될 사회적 지탄, 윤리적 비난보다 더 큰 것일까.

 

이 씨를 해고함으로써 KT는 이후 내부고발자가 더는 생기지 않도록 하는 단속에는 성공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드러난 진실에 대한 보복으로 조직 구성원의 생존권을 빼앗은 졸렬한 대응을 통해 회사의 평판을 잃은 것은 분명하다.

국가기관인 인권위원회나 대법원 등 사법기관의 결정과 판결이 종이호랑이가 된 것은 현 정부에서는 이제 새롭지 않은 일이다. 인권위의 결정에 대해서 경찰 같은 국가 권력기관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대기업이 몇 년째 판결을 이행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의 인권과 생존권이 설 자리는 없을 수밖에 없다.

 

사회적 ‘자정능력’을 잃은 사회

 

학교폭력의 학교생활기록부 기록이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라는 인권위의 권고를 간단히 거부한 교육부와 국민권익위의 결정에 불복해 소송으로 맞선 KT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국민의 인권 보호와 사회의 부정부패 방지를 목적으로 설립한 국가기관의 권고나 결정이 해당 사안마다 무력화되는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사회가 무력하게 추인해 버리는 데 있다. 제도적으로 상식과 정의가 보호되면서도 제도가 확보하지 못하는 문제를 사회적 인식과 관행이 기워주는 것이 바로 한 사회의 건강성의 잣대가 되는 사회적 자정능력이다.

 

공공선이 사적 이익과 이해관계 앞에서 무력해지는 ‘승자독식’의 사회는 위험하다. 그것은 한 사회의 정의가 힘의 향배에 따라 좌우되는 원시적 야만상태와 진배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선이 끝난 뒤, 5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공익 제보자가 조직에서 배척되는 2012년 연말은 어둡고 스산하다.

 

 

2012. 12. 3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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