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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와 ‘궁둥이 의자’, 혹은 ‘작업 방석’

by 낮달2018 2019.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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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의 ‘작업 방석’ 이야기

▲ 콩 수확을 하면서 '궁둥이 의자'를 착용하고 있는 가수 이효리. ⓒ 이효리 블로그
▲ 효리의 이웃 '할망'. 양파망으로 만든 낡은 의자는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주말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인터넷에 접속했더니 우연히 이효리 관련 연예 기사가 눈에 띄었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가수 이효리가 자기 블로그에 올린 글에 나온 엉덩이 의자이야기다. 이효리야 따로 궁금할 게 없는데 기사에 나오는 엉덩이 의자가 궁금했다. 웬 엉덩이 의자? 그건 또 뭐지?

 

시골 필수 핫 아이템, 마술 의자, ‘엉덩이 의자

 

기사를 읽기 전에 이효리가 궁둥이에 붙이고 있는 동그란 의자를 보자마자 나는 그게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를 단박에 알아챘다. 기사인즉슨 그랬다. 이효리가 콩 수확하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시골 필수 핫 아이템이라는 저 밴드 사이로 다리를 끼우고 궁둥이에 붙이고 다니며 앉고 싶을 때 언제 어디서나 앉을 수 있는 마술 의자를 소개하고 있다는 게다.

 

나는 수고로움을 무릅쓰고 검색해 이효리 블로그를 찾았다. ‘소길댁’(그가 사는 동네가 소길리란다) 이효리가 올린 글의 제목은 프로와 아마추어’. 예의 엉덩이 의자를 착용하고 밭에 나오자, ‘얼추 시골 아낙 티가 난단 말에 우쭐해진것까지는 좋았단다. 작업을 시작했는데 바로 옆에서 작업에 열중하고 계신 동네 할망일당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일어선 할망의 뒷모습에 하고 말았다고.

 

저것은 양파망으로 당신이 직접 만드셨다는 엉덩이 의자!

아이고얼마나 일을 많이 하셨는지 다 너덜너덜~

갑자기 내 새빨갛고 깨끗한 의자가 부끄러워진 나는 괜히 포즈나 한 번 취하고는 조용히 콩만 베었다.”

 

 이효리를 부끄럽게 만든 할망의 궁둥이 의자는 사진에서 보듯, 양파망 안에다 무언가를 넣은 물건이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장모님께서 하우스 안에 일하면서 쓰시던 노끈으로 동여맨 스티로폼을 떠올렸다. 그것은 할머니의 것과는 달리 몸에 착용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다. 쪼그리거나, 주저앉아서 일하는 것은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가볍고 무른 스티로폼을 비닐봉지 안에 넣거나 노끈으로 동여매서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쓰는 것이었다.

▲ 스티로폼을 노끈으로 묶은 '작업 방석'. 제주도와는 달리 몸에 착용하지는 않는다.
▲ 고구마를 수확할 때 나는 저 빨간 봉지 속에 든 스티로폼의 신세를 톡톡히 졌다.

 얼마 전, 장모님의 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면서 나도 붉은 비닐봉지에 넣은 스티로폼 덕을 톡톡히 보았다. 고구마가 상하지 않도록 밭을 조심스레 호미로 일구면서, 드러난 열매를 거두는 작업을 쪼그려서 하거나 퍼질러 앉아서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시골 노인들의 밭일 방석

 

모르긴 해도 사람들은 저마다 비슷한 물건 하나씩을 만들어 이용하고 있을 것이었다. 내 일을 하면서 괴로운 건 내 몸이고 그걸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으니, 스스로 챙겨야 할 수밖에. 사소한 아이디어라도 내 일을 하는 데 유용하다면 가릴 일이 무어 있겠는가.

 

나는 이효리가 궁둥이에 달고 있는 엉덩이 의자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저걸 오일장에서 사들였다고? 저걸 장에서 판다고? 나는 잠깐 헛갈렸다. 장모님께서 다녀오시는 오일장에도 저걸 팔고 있다고? 그런데 난 왜 그걸 몰랐던가? 어얼리 어댑터는 아니어도 눈 밝은(?) 내가? 나는 머리를 갸웃하다가 우정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고, 수요가 공급을 낳는 법. 농부들의 고단한 노동을 도와주는 물건이 시장에서 팔리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어쩌면 인근 시골장에도 이효리가 산 물건이 팔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시골의 안노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낡은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 가벼운 유모차를 끌면서 거기 기대어 부치는 기운을 깁고 돕는 것이다. 그런 노인들을 볼 때마다 왜 국가가 노인들 보행을 돕는 기구를 개발해 보급하지 않을까 하고 나는 궁금해했었다.

 

올 초에 나는 어느 실버 쇼핑몰에서 우연히 유모차처럼 만든 보행차를 발견하고 그걸 사서 지난 4월에 장모님께 선물해 드렸다. 내가 몰랐을 뿐, 수요가 있었으니 당연히 공급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얼마 전 감 수확에 쓴 감 따는 도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인터넷에서 엉덩이 의자를 검색했다. ‘작업 방석’, ‘밭일 방석’, ‘다용도 방석따위의 이름을 단 농업용 엉덩이 의자가 적잖이 떴다. 안에다 압축 스티로폼을 넣은 이들 방석들은 모두 값이 만 원 안팎이었다. 적어도 그것은 장모님이 임시방편으로 매어 쓰는 놈보단 훨씬 튼튼하고 기능적일 것이었다. 나는 주저 없이 그 가운데 그중 실해 보이는 놈 하나를 주문했다.

 

가능하면 고령의 어버이께서 일하시는 걸 말리고 싶은 게 자식들 마음이다. 그러나 평생 일하며 살아온 노인들은 몸을 잠시라도 놀리지 않으신다. 자식들은 어쨌든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거들어 드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문한 방석이 도착하면 조만간 처가에 다녀와야겠다.

 

 

2014. 10. 25. 낮달


글에서 엉덩이 궁둥이를 섞어 썼는데, 사실 두 낱말은 뜻이 같지 않다. ‘엉덩이 뒤쪽 허리 아래 허벅다리 위 좌우 쪽으로 살이 두두룩한 부분이고 궁둥이 엉덩이의 아랫부분. 앉으면 바닥에 닿고 서 있을 때는 아래를 향하는 부분이다.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엉덩이 의자 궁둥이 의자로 고쳐 쓰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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