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퉁퉁 불은’은 맞고 ‘달은’은 틀리다
얼마 전 대통령의 발언으로 ‘퉁퉁 불은 국수’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통령이 지난 2월 23일 국회의 ‘부동산 3법 처리 지연’을 두고 ‘퉁퉁 불어터진 국수’라고 비유하면서다. 이를 두고 이런저런 반박도 적지 않았지만, 그 비유의 적절성이 아니라 맞춤법을 한번 따져 보자.
<붇+은→ 불은>은 올바른 표현
어간이 ‘ㄹ’로 끝나는 동사 가운데 ‘물들다’나 ‘울다(발라 놓거나 바느질한 것 따위가 반반하지 못하고 우글쭈글해지다.)’를 ‘물들은’, ‘울은’으로 잘못 쓰는 경우가 많다. 이들 용언은 ‘ㄴ’음 앞에서 ‘ㄹ탈락’이 저절로 일어나는 규칙 동사이므로 ‘물든’, ‘운’으로 쓰는 게 옳다. [<표 ‘ㄹ탈락규칙용언’> 참조]
그러나 ‘불은’의 기본형은 ‘물에 젖어서 부피가 커지다’는 뜻의 동사 ‘붇다’다. ‘걷다[步]’나 ‘묻다[問]’처럼 활용하면 ‘불어, 불으니’로 쓰이는 ‘ㄷ불규칙동사’다. 어간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가 오면 받침 ‘ㄷ’이 ‘ㄹ’로 바뀌는 것이다. 이 동사의 과거 관형사형이 ‘불은’이고, 현재 관형사형은 ‘붇는’이다. 따라서 ‘불은 국수’의 ‘불은’은 과거형으로 제대로 쓰인 것이다.
ㄹ탈락 규칙용언을 마치 불규칙 용언처럼 쓰는 경우가 웹에서는 심심찮게 발견된다. 개인이 연 블로그나 익명의 ‘자유게시판’ 같은 데라면 아주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그게 명색이 ‘언론’을 표방하는 ‘매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론 요즘 인터넷 공간에는 이런저런 이름을 단 언론매체가 적지 않다. 거기서 기사를 쓰는 이들이 모두 맞춤법이나 글쓰기에 통달하기를 바라는 것도 무리긴 하다. 실제로 인터넷 나들이를 하다 보면 입맛을 다시게 하는 맞춤법 오류나 비문 따위를 발견하는 게 어렵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내로라하는 매체에서 이런 맞춤법 오류를 확인할 때면 민망하기도 하고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더구나 그게 있을 수 있는 ‘오타’ 수준이 아니라, 명백히 맞춤법 미숙에 따른 것이라는 심증이 갈 때 입맛이 쓰지 않을 수 없다.
‘달+은 → 단’이 맞다
지난 2월 26일에 한 인터넷 매체에 올라온 기사가 그랬다. ‘수신료 몸달은 KBS’라는 구절을 제목에 노출한 기산데, 여기서 ‘몸달은’은 명백한 잘못이었다. ‘몸’과 ‘달다’를 붙여 쓴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단’으로 써야 할 데에 ‘달은’을 붙였다.
이 ‘달다’는 ‘안타깝거나 조마조마하여 마음이 몹시 조급해지다.’(<표준국어대사전>)는 뜻이다. 역시 ‘ㄴ’으로 시작하는 어미 앞에서는 ‘ㄹ’이 탈락하는 규칙 동사다. 마땅히 속담 ‘단 가마에 눈’처럼 ‘단’으로 써야 한다.
마침 이 기사 밑에는 ‘오류 신고하기’라는 단추가 있었다. 나는 실수였기를 바라면서 이를 신고했다. ‘맞춤법에 어긋난 기사는 공정성도 의심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담아서. 오류신고가 어떤 경로를 거쳐 필자에게 전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기자가 이를 확인하면 당연히 바로잡을 줄 알았다.
지적하면 바로 기사에 반영되고 고맙다는 답신을 보내는 매체도 있기 때문이었다. 신고하고 나서 나는 그걸 잊어버렸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다가 문득 그걸 떠올리고 나는 스마트폰으로 예의 매체에 접속했다. 꽤 시간이 지난 기사여서 검색으로 찾아야 했다.
기사는 처음 올라올 때 그대로였다. 나는 입맛을 다셨다. 이럴 경우, 어떻게 반응하는 게 몸에 이로운지 나는 안다. 예의 매체에서 내 오류신고를 받아보지 못했을 것이라거나 기자가 바빠서 그걸 바로잡지 못한 거라고 여기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은 것이다.
그건 물론 사실 여부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매체나 기자가 내 지적에 감정이 상했을 수도 있고,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남는 문제는 ‘나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정서법에 어긋난 기사를 쓰거나 실은 기자나 매체의 것이라는 얘기다.
2015. 3.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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