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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선산(구미) 이야기

천생산·천생산성, 혹은 기억의 시차

by 낮달2018 2020.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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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천생산과 천생산성을 오르다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에 있는 천생산은 천생산성을 끼고 있는 해발 407m의 조그만 산이다 .

지난 일요일 방송고 학생들과 함께 천생산(天生山)에 올랐다. 현장 체험학습, 옛날식으로 말하면 가을 소풍이다. 글쎄, 현장 체험학습이라고 하면 더 세련되어 보이고 교육적일지는 모르겠으나 내겐 소풍(逍風)이란 이름이 훨씬 정겹다.

 

방송고 ‘늦깎이’들의 ‘가을 소풍’

 

오전 9시 반께 천생산 중턱에 있는 주차장에 모인 학생들은 조금 들떠 있었다. 스무 살 어름의 젊은이들이든 4, 50대의 시니어들이든 깊어가는 가을에 산을 찾았으니 얼마간 들떠도 괜찮은 일일 것이었다. 간단하게 주의사항을 일러주고 함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에 이르는 시니어 그룹들은 가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어 레저 문화에 비교적 익숙하다. 남자들 못지않은 산행 경력과 체력을 자랑하는 40대 후반에서 산악회 동호인으로 산행을 즐긴다는 50대 중반의 여학생들과 함께 한 시간 남짓 산을 탔다. 젊은이라면 30분이면 오를 높이지만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쉬엄쉬엄 산을 올랐다.

▲ 천생산에서 내려다본 들판.

등산로는 대부분 산등성이를 가로지르는 평탄한 숲길이다. 정상 부근에 이르자, 급경사의 언덕길이 나타났다. ‘깎아질렀다’ 하면 과장이지만 물매가 꽤 가파른 벼랑에는, 그러나 시(市)에서 안전한 철제계단을 설치해 두었다. 이럴 때 사람들은 4년에 한 번씩 치르는 지방선거 투표가 내 삶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지 모른다.

 

10월 중순의 일요일이다. 도시 근교의 산인지라 오르내리는 사람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재킷을 벗어야 할 만큼 날씨는 따뜻하다 못해 무더웠다. 정상에 오르자, 산 아래가 잘 보이지 않는 깊은 산과 달리 전망이 탁 트이면서 주변의 들과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 없이 사람들은 좋은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것은 휴일의 산행을 증명하면서 동시에 추억의 앨범을 장식하는 재료다. 사람들마다 이른바 ‘인증샷’을 찍느라 부산한데 정작 사진기를 든 사람은 어쩌다 있을 뿐 대부분은 스마트폰을 쓰고 있었다. 저마다 피사체를 향해 휴대전화를 들이대는 풍경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풍속도인 셈이다.

▲찾는 사람이 많아서일까 . 산행길에 만난 꽃은 쑥부쟁이뿐이었다 .
▲ 천생산의 서쪽 석벽 끝 벼랑 가운데 불쑥 튀어나온 바위, 미득암(米得巖)에 홍의장군의 사연이 서려 있다 .
▲미득암에선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 그래서 사람들은 천생산을 즐겨 찾는지 모른다 .
▲ 젊은이든 4, 50대 시니어들이든 소풍은 즐거운 것이다. 정상의 천생산성 유래비 앞에서의 단체 사진 촬영. 흐리게 처리했다.

마치 소녀처럼 들떠 있는 여학생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그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었다. 천생산성 유래비가 있는 정상 부근의 풀밭에서 학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학생회에서 한 줄씩 나누어 준 김밥에다, 삶은 돼지고기, 배추쌈, 거기에다 소주까지 곁들인 푸짐한 점심 식탁이 숲속에 차려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기름칠(?)을 해 주는 데는 역시 술을 빼놓을 수 없다. 사제 간이라 하지만 한 달에 고작 이틀 정도만 만나는 게 다인 교사들과 학생들 사이는 피차 감출 것 없는 성인들인지라 자연스럽게 술로 서먹함을 지우곤 하는 것이다.

 

술과 밥, 그리고 왁자한 농담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교사와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생활인, 비슷한 연배의 이웃으로서 서로의 자리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이런 행사를 격의 없이 치르고 나면 학생들과의 사이가 한결 가까워졌다는 걸 실감하곤 한다.

▲  등산로 어귀의 흔들다리에서 학생들이 짓궂게 장난을 치고 있다 .
▲ 경북 지방기념물 12호로 지정된 천생산성은 조선 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숱한 병란을 이겨낸 곳이다. ⓒ 문화재청
▲ 이남박. 경상도에선 '반팅이'로 부르는데 모습은 이것과는 차이가 있다.

구미시 장천면 신장리에 있는 천생산은 해발 407m의 조그만 산이다. 동쪽에서 보면 ‘하늘 천(天) 자’로 보인다고, 또 ‘하늘이 낳은 산’이라고 해서 ‘천생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장천면 일대에서는 부근에 있는 산성을 박혁거세가 처음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 ‘혁거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반팅이산’ 또는 ‘반티이산’이라는 이름이다. 낙동강 쪽에서 산을 바라보면 산 정상이 ‘한 일(一) 자’로 보여 마치 직사각형의 길쭉한 나무 그릇을 닮았다. 이 나무 그릇을 경상도에선 ‘반티이’라고 하는 것이다.

 

홍의장군 곽재우와 미득암

 

천생산에는 경상북도 지방기념물 12호로 지정된 천생산성이 있다. 사면이 석벽으로 되어 있는 이 조선 시대의 산성은 낙동강을 낀 꽤 험준한 산속에 축조되어 병란 때면 인근 주민을 대피시키고 항쟁의 근거가 된 군사요충지였다. 천생산성은 서남쪽 금오산의 금오산성, 동남쪽 가산의 가산산성과 함께 영남 일원의 중요한 산성이었다고 한다.

 

산성은 비슷한 형태인 두 개의 산봉우리를 이용하여 내성과 외성으로 나뉘어 있으며 서쪽은 자연 절벽을 이용했다. 북·동·남쪽으로 정상 주위를 따라 테뫼식으로 쌓았다. 테뫼식(산정식)이란 주로 작은 규모의 산성에 많은,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쌓아 마치 사발을 엎어놓은 듯한 형태의 성이다.

 

▲ 대구 망우당공원에 있는 곽재우 장군 동상

천생산성은 임진왜란 때에 홍의장군 곽재우(1552~1617)가 왜군과 숱한 전투를 치른 곳이다. 망우당(忘憂堂) 곽재우에 관한 이야기는 영남 곳곳에 전설처럼 남아 있는데(어릴 적에 선친한테서 듣곤 했던 ‘곽 망우당’이 홍의장군임을 알게 된 것은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이 산성도 예외는 아니다. 천생산의 서쪽 석벽 끝 벼랑 가운데 불쑥 튀어나온 바위, 미득암(米得巖)에 장군의 사연이 서려 있는 것이다.

 

왜란 때 홍의장군이 이곳 산성에 웅거하자 왜군들이 성안에 물이 귀하다는 것을 알고 물이 없으면 결국 항복하리라 여겨 산성을 포위하고 여러 날을 지내며 항복하기를 기다렸다. 장군은 왜군의 의도를 간파하고 이 바위 위에 말을 세우고 말 등에 흰쌀을 부으며 말 등을 씻는 흉내를 내었다.

 

멀리 산 아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왜군은 산성 안에 말을 씻을 정도로 물이 풍족하다고 생각하고 포위를 풀고 퇴각하였다. 뒷날 사람들은 이 바위를 ‘쌀을 얻은 바위’라 하여 미득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남명 조식의 문인이자 외손녀사위이기도 한 의병장 망우당은 붉은 비단으로 된 갑옷을 입고 활동하여 천강 홍의장군이라 불리었는데 용맹할 뿐 아니라 지략도 갖춘 장수였다.

 

기억의 시차

 

개인적으로 천생산은 9년 만이다. 2004년 10월 초순에 안동 불문(不問)산악회의 벗들과 함께 천생산에 올랐기 때문이다. 불문 카페에 들러 그때 올린 답사기와 시간을 확인하는데 내 아둔한 머리는 그 시차를 잘 새기지 못한다.

 

“천생산이 갖는 매력이라면 개인적으로 크고 거친 돌로 쌓은 성벽과 성문의 질감과 느낌을 들고 싶습니다. 천생산은 제게 완만한 언덕을 올라, 한 굽이를 돌면 처연히 나타나는 성문과 성벽의 침묵으로 늘 떠오릅니다.

 

그러나 어제는 아니었습니다. 기백만 원을 들여 달았을 천박한 붉은 색의 철문과 지붕돌은 나머지 돌들이 침묵으로 전해 온 이 땅의 역사를 민속촌 류의 상업주의로 바꾸어 놓은 듯합니다. 철문을 비껴 찍는다 한들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거기 오른 글로 유추하면 나는 이전에 이미 산성에 올랐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2004년 이전에 천생산에 올랐던 기억은 거짓말처럼 비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내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고작 9년 전의 일이지만 그 사이 쇠퇴해 버린 기억력을 내가 어찌할 것인가 말이다.

 

어지럽힌 자리를 깔끔히 정리하고 우리는 하산길에 올랐다. 예전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나는 다시 찾은 천생산을 우정 그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같이 올랐던 학생들도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쳐 주었다.

 

“천생산, 괜찮은 산이야. 오를 만하네요. 언제 식구들과 함께 한 번 더 와야겠네.”

“그렇지요? 괜찮지요? 거리도 적당하고 숲도 좋고요.”

 

해가 한참이나 남아 있었지만 우리는 제각기 차에 올라 천생산을 떠났다. 산정에도 단풍은 ‘아직’이었다. 다음 달 중순쯤이면 남하하고 있는 단풍의 불길이 천생산 등성이에 번지게 될까. 그때쯤 정말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2013. 10.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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