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구미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의 한가위
한가위는 한 해의 수확을 기리고 나누는 전통 명일이다. 이날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덕담으로 기억되는 것은 이 겨레의 명절이 풍요의 제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살이가 팍팍하고 삶이 고단하여도 이 계절에 거두는 풍성한 수확은 가난한 사람에게도 위안이 되는 것이다.
한가위에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하고 있는 천막을 찾는 마음이 언짢아지는 것은 그래서다. 그들은 모두가 공평하게 누려야 할 명절을 빼앗겼고, 우리는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사람들이 명절날의 푸근한 분위기에 젖어 있을 때, 이들은 천막 안에서 자신에게 이르지 못한 풍요를 확인하며 쓸쓸히 하루를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노동부, “아사히글라스는 해고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코리아(아래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의 농성장을 찾으며 그나마 마음이 덜 무거웠던 것은 최근 이들에게 당도한 희소식 덕분이다. 지난 9월 22일, 고용노동부는 파견법을 위반한 아사히글라스에 하청업체 지티에스(GTS) 소속 비정규직 178명을 오는 11월 3일까지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 지시를 내리고, 원청과 하청업체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것이다.
외국인 투자기업 아사히글라스는 구미시 산동면 첨단기업로에 있고, 이 회사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의 농성 천막은 회사 정문 앞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티에프티(TFT)-엘시디(LCD)용 유리(glass) 기판을 제조·판매하는 이 첨단 기업의 노무관리는 그러나 반(反) 첨단이었다.
아사히글라스에 불법 파견되어 일하던 하청업체 지티에스(GTS)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 9년 동안 최저임금과 조그만 잘못에도 붉은 조끼를 입어야 하는 등 인권 침해를 견디며 일했다. 20분 만에 점심 도시락을 먹어야 했던 이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은 2015년 5월 29일이었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는 구미공단에 최초로 설립된 비정규직 노동조합이었다. 그러자 회사는 한 달 만에 170명 노동자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해고를 통보했다. ‘노예’처럼 일하던 공간이 ‘현장’으로 바뀌면서 이들이 느꼈던 해방감은 잠시, 그로부터 해고 노동자들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되었다.
아사히 비정규직지회는 2015년 7월, 고용노동부에 원청과 하청 회사를 부당노동행위와 불법파견으로 고소했다. 노동부는 16일 동안의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5천 쪽짜리 증거자료를 만들었으나 아직 검찰은 이를 기초로 회사를 기소하지 않고 있다.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지회가 지난 8월 29일 대구지방검찰청 앞에 두 번째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한 이유다. 고소 이후 2년이 훌쩍 지나도록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있는 노동부와 검찰에 회사를 기소할 것을 촉구하는 이 농성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아사히글라스 본사와 비정규직지회의 농성 천막이 있는 첨단기업로 부근은 전국의 노동단체, 민주단체들이 보내온 현수막이 이어져 있었다. 천막 왼쪽, 저편의 회사 정문을 등지고 붙은 현수막의 글귀가 흥미로웠다.
“아사히글라스 에라이글러쓰”
한가윗날 천막을 지키고 있는 이는 남기웅 수석 부지회장(34)과 지원 방문한 구미 케이이시(KEC) 노동조합 김성훈 전 지회장이었다. 비정규직지회의 남은 조합원 23명이 두 개의 천막을 지키며 싸워야 하는 형국이 된 것이다.
해고 노동자로 살아온 그들의 798일
지난 7월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다. 한가위를 여느 날처럼 맞으면서 우리 집에선 명절 음식을 따로 마련하지 않아서 대신 두유를 사 들고 갔다. 명절인데도 남 부지회장은 귀향도 하지 못한 채 썰렁한 천막을 지키고 있었다.
위로의 말을 건네자 그는 연대 단체들과 시민들의 지지가 큰 힘이라고 말했다. 긴 연휴 동안 당번을 정해 농성장을 같이 지켜줄 이들이 이어진다고 했다. 어제는 전교조 선생님이 종일 머물다 갔다고 말하는 그는 연대를 실감하고 있는 듯했다.
캔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는 주로 고용노동부의 지시와 이후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동부의 시정 지시 소식을 들은 조합원들의 반응을 물었더니 남 부지회장의 답변은 짤막했다.
“조합원들은 뜻밖에도 아주 담담해합니다.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데 이제 간신히 빛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그동안 우리가 투쟁한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뒷전으로 밀리고 노동부 장관의 발표에만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 다소 불만스럽긴 하지만요.”
남 부지회장과 김성훈 전 지회장은 고용노동부에서 부당노동행위는 무혐의 처리하고 불법파견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로 송치한 것을 성토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원청업체가 도급계약을 해지한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판정했지만, 회사가 낸 행정소송에서 패소했고 이 소송은 현재 2심이 진행되고 있다.
비정규직지회는 고용노동부가 보유한 무려 5천 쪽에 이르는 증거자료를 이 재판에 제출하지 않아서 행정소송에서 진 것으로 보고 있었다. 어쨌든 이 싸움은 박근혜 정부 내내 고용노동청과 검찰이 각각 밀고 당기기로 일관한 탓에 어떤 결론도 맺지 못한 상태에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정치적 이유에서든 무엇이든 명확하게 정리되어야 할 문제가 정부기관 사이에서 길을 잃고 있는 동안 어떤 수입도 없이 고단한 시간을 견뎌내야 했던 것은 해고 노동자들이었다. 자본은 손바닥 뒤집는 일처럼 쉽게 노동자를 해고하지만 부당 해고를 바로잡고 노동자가 복직하는 것은 피를 말리듯 어려운 것이다.
국가기관 고용노동부와 검찰이 공을 주고받는 동안 798일을 해고 노동자로 살아야 했던 비정규직지회 노동자 23명은 앞으로 얼마나 더 해고자로 살아야 할지 모른다. 고용노동부가 11월 3일을 시한으로 제시했지만,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리라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해고자는 기혼과 미혼이 반반쯤이라고 했다. 그나마 미혼 조합원들은 상대적으로 몸이 가벼우니 견디기가 수월했을 것이다. 예상대로 남 부지회장도 총각이다. 경남 진주 출신의 이 청년은 비정규직으로 창원공단을 거쳐 구미까지 와 해고되면서 비로소 노동자의 정체성을 깨우쳤다.
조합원들은 생계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하나 마나 한 물음에 그는 ‘어렵다’고 받았다. 부득이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합원 몇 명은 일하고 있으며 ‘알바’로 우유배달을 하는 이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중병을 앓고 있는 부친의 병시중을 도맡은 이가 있는가 하면 요양원에 입원 중인 모친을 돌봐야 하는 이도 있다고 했다.
그나마 지역의 노동조합, 시민단체 등에서 시엠에스(CMS)로 보내주는 후원금, 가끔 지회가 벌이는 재정사업 등으로 도움을 받고 있지만, 그 병아리 눈물 같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무어겠는가. 전교조 해직 시절의 최저 생계비를 떠올리면서 나는 잠시 말을 멈추어야 했다.
처자 있는 기혼자의 경우는 또 다르다. 세상에 생활비조차 가져다주지 않는 지아비를 곱게 봐줄 지어미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더러는 대출에 기대고 대리운전 등으로 몸을 나누어 쓰는 지아비를 바라보는 해고자 아내들의 품은 넉넉하다. 그것은 조합원들이 써낸 글모음 <들꽃-공단에 피다>(한티재, 2017)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련 기사 : 아빠 용돈을 걱정하는 13살 딸, 눈물겹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투쟁, 삶의 실현 과정
그러나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해고자들이 남몰래 감당해야 하는 가족 간 불화는 어쩔 것인가. 남 부지회장은 그런 선배 조합원들이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더 열심히 싸우고 있다고 전한다.
“형님들은 비정규직의 고통을 너무 잘 알고 있거든요. 자녀들도 어쨌든 노동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비록 힘들긴 하지만 자식들에게까지 비정규직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래서 형님들은 더 열심히 싸우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 그의 분석은 해고의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일반의 시선과 반문을 통하여 터득한 지혜다. “왜 이렇게 되지도 않을 일에 매달려 살고 있나. 차라리 새로 다른 일을 찾는 게 옳지 않느냐”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그가 느끼는 벽은 높고도 단단하다.
“저는 그간의 경험을 통해 어딜 가도 비정규직의 삶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차라리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게 훨씬 뜻깊은 일이 아닐까요.”
그뿐 아니라 이 땅의 천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바라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그 실현 가능성을 묻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실현 가능성 이전에 기계가 아닌 인간이 스스로 노동의 존엄을 확인하고 그것을 삶을 통해 실현해 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국외자들에게는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안타까울지 모르지만, 당사자에게는 그건 자신의 신념과 선택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인간의 행위는 손익 계산으로만 재단되는 것은 아니다. 해고자들은 무엇보다 실존적 선택을 자신에게 이해시켜야 하고 주변의 친지와 지인에게도 그 정당성을 추인받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해고 노동자로 살면서 느끼는 아쉬움이 있다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역시 ‘돈’이라고 말했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싶고, 옷도 사 입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회 이름이 박힌 홑겹의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서른넷이라지만 동안을 벗지 못하는 이 청년의 소망은 단순했다. 목수로 일하는 부친은 적지 않은 수입이 있긴 하지만 자신이 번 돈으로 부모님의 용돈을 드리고 싶고 남들처럼 옷을 입고 모양도 내고 싶은 것이다.
이제 자본과 권력이 답할 차례다
이제 40만 제곱미터(11만 9천여 평)에 이르는 토지 50년간 무상임대, 법인세 등 국세 5년간 전액 감면, 지방세 15년간 감면 등의 파격적인 특혜를 누리는 외국인 투자기업 아사히글라스가 답할 차례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특혜를 받은 이 기업이 최저임금에 인권 침해를 일삼으며 노동자들에게 한 게 고작 해고와 부당노동행위밖에 없다면 말이다.
돌아와서 대구 농성장의 차헌호 지회장과 통화했다. 그는 이후 전망을 묻자, 회사가 고용노동부의 지시를 쉽게 이행하지 않고 과태료를 물면서 시간을 끌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주에는 그는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노동부에서 넘겨받은 5천 쪽 자료를 행정소송 2심에 제출해 부당노동행위 부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가 정부의 지시를 이행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이는 만큼 검찰의 기소가 시급하고 재판을 통해 회사의 유죄를 증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었다.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바로 농성장으로 합류했다는 그에게 나는 무어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 800여 일 동안 쉬지 않고 싸웠다. 그들에게 더 이상의 투쟁을 요구할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권력과 자본의 응답이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이 존중되는 사회’를 위해 검찰과 사법부에 주어진 몫이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세금으로 갖가지 특혜를 누리고 있는 기업,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코리아가 고용노동부의 직접 고용 지시를 이행함으로써 2년 동안의 적폐를 해소하여야 한다. 그들이 내쫓은 노동자들은 천막 농성장이 아닌 가정에서 한가위를 쇠고, 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가 일해야 마땅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7. 10. 5.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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