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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수요시위2

[역사 공부 ‘오늘’] 24년 전 오늘, 첫 ‘수요시위’ 열리다 1992년 1월 8일, 첫 ‘수요시위’ 열리다 새삼스럽다는 느낌이 없잖아 있다. 지금껏 무심히 잊고만 있다가 어이쿠, 이게 그럴 일이 아니로군, 그래서는 안 되지, 하고 안타까움과 노여움으로 우리가 저간의 사정을 살펴보게 된 것은. 물론 그걸 아무도 나무랄 수 없다. 저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모두가 ‘헬조선’을 사느라고 힘겨웠으니 왜 지금껏 무심했냐고 타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1992년 1월 8일 첫 시위에서 2016년 1212차 시위까지 지난 12월 28일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의 “일본군 ‘위안부’합의 이후 전개되어 온 국민적 분노와 규탄 분위기 얘기다. 그러나 이번 정부간 합의를 계기로 사람들은 이 해묵은 전쟁범죄에 대한 사과와 배상 요구가 정당한 요구인 만큼 그것을 짓밟은 이 합의의 부당성을.. 2024. 1. 8.
[근조] 일본군 ‘위안부’ 용기와 희망으로 지켜온 스무 해 고 김복동((金福童,1926~2019) 만 열네 살에 전쟁터로 끌려갔다가 22살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67세 때인 1992년 3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알리고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9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했으며, 2000년에는 일본군 성 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 원고로 출석해 실상을 문서로 증언했다. 2012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전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나비기금을 만들었다. 2017년에는 여성인권상으로 받은 5천만 원을 무력분쟁 지역의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데 써달라며 정의기억재단에 기부해 ‘김복동 평화상’이 제정됐다. 국경없는기자회와 프랑스 AFP .. 2019.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