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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민영환2

[순국] 충정공 민영환, 동포에게 사죄하고 자결하다 1905년 11월 30일, 시종무관장 민영환 망국의 책임을 사죄하고 자결 1905년 11월 30일 오전 6시께, 시종무관장 민영환(閔泳煥, 1861~1905)은 전동(典洞)에 있는 중추원 의관(醫官) 이완식의 집에서 단도로 자신의 배와 목을 찔러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은 망국에 대해 신료(臣僚)의 책임을 지고 속죄하는 것이었다. 향년 44세.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은 열사흘 전인 11월 17일이었다. 용인에서 이 소식을 들은 민영환은 서울로 돌아와 전 좌의정 조병세(1827~1905,1962 대한민국장) 등과 대궐로 나아가 5적의 처단과 조약의 폐기를 청원하였다. 11월 28일, 칠순 노인 조병세가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자 그는 궁중으로 들어가 소두(疏頭: 상소의 대표)가 되어 연일 상소하며 참정대신(한.. 2023. 11. 30.
[상트페테르부르크]예르미타시, 러시아 제국의 ‘영광’과 혁명의 ‘격랑’ 사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사 기행] ① 예르미타시, ‘피의 일요일’과‘2월·10월 혁명’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지각 여행기를 쓰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복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억도 같이 복기하여야 한다. 2년이 흘렀는데, 사진을 펼치니 그때의 느낌과 인상이 고스란히 복원되는 듯했다. 지워진 기억은 동행한 가족과 함께 되살려냈다. 이 지각 여행기를 에 송고했더니, 가급적 3개월 이내(계절이 바뀌기 전, 겨울에 여름 여행 기사는 채택 하지 않음), 해외는 다녀온 지 1년 이내 정도라야 기사로 채택한다는 규정 상 싣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해 왔다. 백 번 옳은 말이다. 2년이나 게으름을 피운 결과다. 그래서 이 글을 러시아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역사기행.. 2020.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