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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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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피의 화요일’, 학생과 시민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역사 공부 ‘오늘’] 1960년 4월 19일, 4·19혁명의 불길 타오르다 1960년 4월 19일은 화요일이었다. 전날, 평화적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던 고려대학생들이 경찰과 공모한 정치깡패들의 무차별 테러로 다친 뒤라 분위기는 잔뜩 격앙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하나둘 국회의사당에 모인 학생들은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나섰고 이내 경무대 방향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피의 화요일' 사망 186명, 부상 6026명 애당초 ‘부정선거규탄’과 ‘학원의 자유’를 외쳤던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는 경찰의 폭력 진압 앞에서 질적 변화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날의 구호는 ‘3·15부정선거 다시 하라’, ‘1인 독재 물러가라’, ‘이승만은 하야하라’ 등 독재정권 퇴진과 민주주의 수호를 요구하는 혁명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2024. 4. 19.
[4·19혁명 59돌] 미완의 혁명과 ‘노래’들 2019년(4·19혁명 59돌) 혁명의 노래들 4·19 혁명 쉰아홉 돌을 맞는다. 한국전쟁의 상처도 채 아물지 못한 1960년 벽두에 들불처럼 타오른 청년 학생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분노는 독재자 이승만의 노욕을 끌어내리고 새로운 민주 정부를 세워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고 분출하는 시민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욕구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다. 결국, 4월혁명은 5·16 군사쿠데타로 무너지면서 ‘미완의 혁명’이 되었다. 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이 혁명의 성과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다고 해서,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 군사독재가 절대빈곤을 극복하고 경제발전으로 산업화·근대화를 이끌었다고 해서 사월혁명의 역사적 의의가 퇴색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젊은이.. 2023.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