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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경술국치4

[오늘] 포의(布衣)의 선비 황현, 망국의 책임을 대신하여 자정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10년 9월 10일, 매천 황현 순국 1910년 오늘,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월곡마을 대월헌(待月軒)에서 매천(梅泉) 황현(黃玹, 1855∼1910)이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것은 열이틀 전(8월 29일)에 한일합병조약이 발효됨으로써 명운을 다한 조선왕조에 대한 한 선비의 마지막 의리였다. 칠언절구의 우국시(憂國詩) 몇 수와 유서로 매천이 스스로 목숨을 마감하기 전에 성찰한 것은 지식인의 삶이었다. 매천, 죽음 앞에서 지식인의 삶을 성찰하다 난리 통에 어느새 머리만 희어졌구나. 몇 번 목숨을 버리려 하였건만 그러질 못하였네. 하지만 오늘만은 진정 어쩔 수가 없으니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만이 아득한 하늘을 비추는구나. 요사한 기운 뒤덮여 천제성(天.. 2023. 9. 10.
[오늘] 경술국치 - 대한제국, 일본에 강제 편입되다 [역사 공부 ‘오늘’] 1910년 8월 29일 한일합병조약 공포 1910년 오늘,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 한일합병조약이 공포되었다. 이 조약은 이미 지난 8월 22일,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제3대 한국 통감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가 형식적인 회의를 거쳐 조인한 것이었다. 이미 조인된 조약이었지만 일본은 이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일주일 만인 이날, 순종황제의 조칙 형태로 발표했다. 이 조약이 공포됨에 따라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에 강제 편입되면서 국가의 지위를 잃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일제는 ‘일한병합(日韓倂合)’이라고 부르고 우리나라에서는 ‘경술년의 국가적 치욕(경술국치)’이라 기록하는 역사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합병 이후, 한반도는 일본제국 영토의 일부가 되어 ‘일본 제국령 조선(Kore.. 2023. 8. 29.
[오늘] 장태수, ‘원수의 돈’ 일제 은사금 거부하고 목숨을 거두다 [역사 공부 ‘오늘’] 1910년 12월 28일, 장태수 24일 단식으로 순국하다 1910년 12월 28일(음력 11월 27일) 수요일, 전북 김제 금구의 남강정사(南崗精舍)에서 일유재(一逌齋) 장태수(張泰秀, 1841∼1910) 선생이 예순아홉 살을 일기로 순국하였다. ‘불충과 불효한 죄를 죽음으로 씻는다’고 하며 단식에 든 지 24일 만이었다. 장태수는 전북 김제 출신으로 내부협판 장한두의 아들이다. 본관은 인동, 자는 성안(聖安), 호는 일유재(一逌齋). 1861년 약관에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출사(出仕)한 이래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등 청요직(淸要職)을 거쳐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에 이르렀다. 일유재, 24일 단식 끝에 순국 1895년 단발령이 내리자 장태수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왔.. 2018. 12. 29.
후작에서 자작까지, 경술국치와 조선귀족들 매국의 상급으로 이른바 ‘은사금’과 귀족 작위를 받은 매국노들 영화 이 천만 대 관객을 모으면서 사람들에게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 시기 역사를 새삼 돌아보게 한 것은 뜻밖의 덤이라고 봐도 좋겠다. 이 잘 만들어진 한 편의 활극은 흥미진진했을 뿐 아니라 역사적 인과로서의 ‘지금, 여기’의 문제를 환기해 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잊힌 이름인 약산 김원봉이나 친일파, 의열단, 반민특위와 같은 현대사의 몇몇 장면들과 함께,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혼곤한 자유의 근원을 잠깐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해방 70년을 맞지만 정말, 우린 온전히 해방되었는가, 여전히 우리는 1945년 8월 15일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아닌가……. 어제, 아베 일본 총리는 ‘종전 70주년 담화’에서 식민지배와 침략 등을 적접 언.. 2018.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