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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미디어 리포트

<프레시안>, ‘한글 문패’도 달았다

by 낮달2018 2020.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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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제호 로고 한글로 바꾸었다

▲ 오늘 확인한 <프레시안>의 한글 제호. 제호를 누르면 한글과 영자가 번갈아 뜬다.

어제도 들어갔고 그제도 들어갔으니, 오늘이 분명하다. 온라인 신문 <프레시안> 이야기다. 창간 이래 지금까지 영자로 된 제호 <Pressian>을 고수하던 이 신문이 오늘 처음으로 ‘한글 문패’를 달고 있는 걸 확인했다. 한글 제호를 쓰겠다는 공지도 따로 보이지 않는데도.

 

초기화면 맨 위 한복판에 떠 있는 한글 제호는 신선하다 못해 신기하다. 진한 감색의 고딕-이탤릭체 글꼴이다. 낯설다는 느낌보다는 아주 산뜻한 느낌이 우선이다. 아, 진작 한글 제호를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애당초 이 나라에서 신문 제호는 죄다 한자였다. 그것도 세로쓰기 시절의 관행대로 1면 맨 오른쪽 위에 세로로 썼다. 모르긴 해도 한글 제호를 썼던 신문은 한자로 표기할 수 없는 <서울신문>과 <한국일보>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다.

▲ 세로쓰기에다 한자, 먹컷 등으로 도배된 옛날 신문. ⓒ <경향신문>

제호뿐 아니라 기사의 제목과 본문에도 한자를 꽤 썼다. 정식 한문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내가 한자 읽는데 큰 지장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 일간지를 읽으면서 한자를 깨쳤을 정도니 말이다. 자료로 확인하는 옛날 신문의 모습은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세로쓰기, 국한문 혼용, 시커먼 먹컷으로 도배된 옛날식 신문에 변화의 단초를 마련한 게 1988년 <한겨레신문>의 창간이었다. ‘진보언론’을 표방하며 창간된 <한겨레>는 가로쓰기, 한글 전용 신문으로 고리타분한 신문 제작 관행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 왔다.

 

한글, 가로쓰기…, 신문의 ‘진화’

 

<한겨레>가 시작한 가로쓰기는 여타 신문들도 시나브로 따르기 시작했다. <한겨레>가 시작해서가 아니라 그것은 우리 사회의 중심축이 한글세대로 바뀌고 있다는 현실의 추인이었다. 체육면부터 가로쓰기로 바꾸기 시작한 여타 신문들도 몇 해 지나지 않아서 전 지면을 가로쓰기 체제로 바꾸어갔다.

 

보수지 조중동 가운데서는 <중앙일보>가 비교적 변화를 과감하게 받아들였고 <조선>과 <동아>는 마지못해 변화의 끝자리에 이름을 걸쳤던 것 같다.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제호도 한글로 바뀌기 시작했다. 역시 <중앙>이 좀 빨랐다. 그리고 2013년 현재, 아직도 옛 ‘한자 제호’를 고수하고 있는 신문은 <조선>, <동아>가 유이(!)하다.

 

옛날처럼 세로쓰기를 하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상하다고 해야 할는지. 게다가 두 신문의 인터넷판은 모두 ‘영자’를 쓰고 있다. 형식도 비슷하다. 과거의 묵수(墨守)가 자신들의 전통이라고 믿는지 이 두 신문의 인터넷판은 각각, <chosun.com>, <dongA.com> 이다.

 

<조선>과 <동아>와는 달리 진보 쪽의 인터넷 언론 다수도 영자 제호를 쓰고 있다. 그 중심에 <오마이뉴스>가 있다. 독특한 영자 로고는 이미 이 신문의 상징이 되었다. <프레시안>과 <레디앙>, 그리고 <뷰스앤뉴스>도 한글 제호 없이 영자 제호를 계속 쓰고 있다.

 

종이신문은 ‘한자’, 인터넷엔 ‘영자’-<조선>과 <동아>의 제호

 

대한민국 국회의 로고에는 한자 ‘나라 국(國)’자가 들어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과학적, 실용적 문자인 한글을 번연히 놔두고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의 로고에 한자를 쓴 비주체성을 나무라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정작 무궁화 꽃잎 안에 든 이 글자가 마치 ‘혹 혹(或)’자로 보이는 까닭도 있다.

 

이런저런 논의가 무성하긴 하지만 답은 모두가 안다. 나라글자를 가진 주권국가로서 그 주권의 산실인 국회를 상징하는 로고에 한글이 아닌 한자가 들어갈 이유가 어디 있는가.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 언론들이 한글로 제호를 쓰는 것 역시 재론의 여지가 없다.

 

세계화 아니라 세계화 할아비라도, 영어가 외국어가 아니라 국제어, 세계 공용어라고 아무리 강변한들 영어로 기사를 내는 외국인 전용 신문이 아닌 이상, 우리 신문의 제호가 영자여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거꾸로 간다고 되받아도, 국수적 관점이라고 항변해도 답은 마찬가지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각 언론사가 선택할 문제다. 그들 역시 자신들이 영자로 제호를 써야 하는 이유를 얼마든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글로 기사를 쓰고 우리 국민을 독자로 상정하고 그들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지면의 존재 이유를 찾는, 언론 본령의 변화가 없는 이상, ‘영자 제호’는 변명에 그칠 거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 ‘국자’는 한글, 제호는 ‘선택’이다

▲ 영자 제호로 돌아간 화면. 제호를 누르면 한글로 바뀌는 변화가 일어난다.

밤 8시 37분, 다시 <프레시안>에 접속하는데 어럽쇼, 예의 ‘한글 제호’는 사라지고 예전의 영자 제호, 그것도 훨씬 커진 듯한 제호가 다시 떠 있다. 잠깐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영자 제호를 키워서 새로 앉히는 과정이었던가. 그것도 모르고 공연히 주접을 떤 셈인가.

 

입맛을 다시다가 다시 한번 제호를 눌렀더니 이번에는 원래의 한글 제호로 돌아간다. 다시 제호를 클릭했더니 영자 제호로 바뀐다. 규칙적이라고 하기엔 무리지만 한글과 영자 제호가 번갈아 가며 뜨도록 설계된 것 같다. 머리를 갸웃하면서도 나는 이 작은 변화에도 일단은 점수를 주기로 한다.

 

 

2013. 4. 23. 낮달

 


2020년 현재, <프레시안>은 제호는 다음과 같다.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위 글을 쓰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나머지 매체는 아직도 아무 변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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