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랭의 <뮤직 박스>(1989)
시절이 하 수상해서일까. 도처에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댄다. 뉴스 속의 아버지는 자상하지만, 무력한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고, 천륜조차 저버리는, 비정한 짐승의 얼굴이기도 하다. 어떤 아버지는 그 자녀들의 ‘스승’이고 또 어떤 아비는 세상의 모든 자식의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청년이 있었다. 이들은 나이가 들면서 파산한 집을 떠나 각자의 길로 나아갔다. 몇 년이 지난 후, 알코올 중독이 한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고 있던 한 심리학자가 그의 연구 조사에서 이 두 청년을 만나 질문하게 되었다.
한 청년은 깨끗하고 빈틈없는 금주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만 다른 한 청년은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희망 없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있었다. 심리학자는 이들에게 왜 그렇게 변하였는지 각각 물었다. 그런데 이 두 청년의 대답은 똑같은 것이었다.
“당신이 내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를 가졌다면 어떻게 되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자상하고 너그러운, 세상의 ‘아버지들’
어릴 적엔 ‘아버지’란 존재는 그 자체로 완벽한 ‘세계’요 ‘우주’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이고, 가장 키가 큰 사람이고, 그에게 할 수 없는 일이란 존재할 수 없는, 가히 ‘무소불위’의 존재다. 그러나 세월은 머물러 있지 않다.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면서 그의 ‘신화’는 하나씩 허물을 벗는다.
어느 날부터 아버지는 더는 거인도, 부자도, 강자도 아니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그는 그저 무력하고 왜소한 한 사람의 중년 남자일 뿐이다. 그의 후줄근한 차림새와 늘어진 어깨 위로 부서지는 햇살이 눈에 아프게 와 박히는 순간, 아들은 더는 그의 품 안의 자식이 아니다. 그것은 한 아들이 아비의 품을 떠나는 첫걸음인 것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흔치 않은 효성스러운 자식들에겐 거슬리겠지만 그건 진실이다. 간혹 부성애 따위와는 무관한 괴물 같은 아비가 없진 않지만, 세상의 모든 아비는 자식들 앞에선 자정(慈情)을 못 이기는 존재다.
그들은 자기 삶의 모습과는 무관하게 자식들에겐 상냥하고 친절하고 자상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살을 베어 팔라고 해도 그들은 기꺼이 그걸 감수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고한 사람을 해치고 고문하면서도 자식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아이들의 문제에 가슴 아파한다.
유독 가부장적 전통이 연면했던 이 나라에서도 자식들을 향한 아비의 ‘희생’은 아버지의 권위와 권력보다 더 애틋하게 회자된다. 어버이의 권위가 클수록 ‘아비의 희생’은 거룩하게 미화된다. 자녀 교육을 위해서 저지른 ‘위장 전입’이 관대하게 용서되는 것도 그 위법행위가 자식 사랑 뒤에 숨기 때문이다.
이 애틋한 자식 사랑을 뒤집으면 자식들의 부모 관이 꼼짝없이 드러난다. 어버이들이 ‘자식 사랑’ 뒤에 숨는 것처럼 자식들은 ‘군사부일체’라는 전통적 윤리 뒤편에 숨는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것’처럼 부모의 과오를 자식은 애써 눈감고, 세상은 그것을 너그럽게 접어준다.
뜬금없이 ‘아버지’ 타령을 하는 까닭은 오늘 아침 읽은 <한겨레> 토요판에 실린 기사, ‘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⑭ 인혁당 사건’ 때문이다. 한홍구는 ‘박근혜 후보께 드리는 공개장’이라는 형식의 이 기사에서 ‘5·16, 유신, 박정희’와 관련된 박 후보의 인식을 문제 삼고 있다.
“1989년 후보님께서 10년 만에 처음 하신 텔레비전 인터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형욱을 청와대 지하실로 잡아 와 선친께서 직접 처형했다는 루머를 부인하면서 후보님은 “아버님은 인명을 중시하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죠. 인혁당 사건에도 적용되는 말일까요?
후보님께서 이렇게 반응하셨다면 그것은 인혁당 피해자들이 확정판결 18시간 만에 사형당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은 25살의 박근혜 양이 “그럴 리 없다. 아버님은 인명을 중시하는 분이다. 잘못된 소식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반응할 때뿐이지, 사건이 조작된 것이라는 재심 판결까지 난 마당에 할 수 있는 얘기는 아닙니다. 후보님이 아는 아버님과 역사적 사실로서의 아버님이 다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적어도 딸인 박근혜에게 아버지 박정희는 ‘자상하고 너그러운 분’이라는 건 진실이리라. 그리고 그이가 기억하는 부친이 ‘인명을 중시하는 분’이라는 것 역시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자연인이자 딸인 박근혜에게는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인자한 아버지가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을 단행하고 무고한 8명의 시민을 형장으로 보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한홍구는 글의 끝부분에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뮤직 박스(Music Box)>(1990)를 이야기한다. 그는 박근혜 후보가 영화의 주인공처럼 아버지를 고발하는 딸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사과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가 원한 것은 다만 그 ‘입을 다물어 달라’는 것이다.
영화 <뮤직 박스>의 ‘딸과 아버지’
20년도 전의 영화를 떠올리는 건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제목을 듣는 순간 단박에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제시카 랭의 곤혹스러운 표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만큼 여느 영화와 달리 <뮤직 박스>는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뮤직 박스>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다. 2차대전 후 공산화된 헝가리를 떠나 미국 시민이 된 아버지 마이크 라즐로(아민 뮬러 스탈 분)와 변호사로 성공한 딸 앤 탤버트(제시카 랭 분)는 서로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는 부녀지간이다.
앤은 아버지가 이민 초기 피난촌 생활을 거쳐 철공소 노동자로 일하며 자신과 남동생을 헌신적으로 키운 아버지는 신뢰한다. 가족 모두에게 부친은 너그럽고 자상한 아버지요 할아버지다. 그래서 부친이 나치 전범으로 몰려서 법정에 서게 되었을 때 앤은 아버지에게 불리한 모든 객관적 증거까지도 불신한다.
부친은 전쟁 기간 나치와 연결된 ‘애로우 크로스’라는 헝가리 특수경찰이었고, 수많은 유대인과 양민을 죽음으로 내몬 ‘전범’이었다. 그는 공산화된 조국을 떠나 미국 사회에 정착하며 자신의 추악한 과거를 묻어버렸다. 아버지를 변호하면서 앤은 이민국이 제시한 모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주장하여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되어 재판을 승리로 이끈다.
그러나 모두가 축제로 들떠 있을 때 앤은 냉정해진다. 그녀가 뮤직 박스 속에서 발견한 사진들……, 유대인의 머리를 향해 권총을 겨누고 있는 사진 속의 경찰은 아버지였다. 그녀는 아버지를 향해 울부짖지만, 아버지는 모든 상황을 부인한다. 결국, 앤은 담당 검사에게 뮤직 박스에서 발견된 사진을 동봉하여 진실을 밝히는 편지를 보낸다…….
뮤직 박스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 속에 드러난 학살의 증거들 앞에 앤의 얼굴은 굳어 있다. 그것은 그녀가 지금껏 믿어온 아버지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증거였다. 아버지의 너그러움과 자상함, 자식들을 위한 헌신 뒤에 가려진 아버지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녀에게 얼마만 한 고통이었을까. 아버지를 고발하기 위한 그녀의 선택과 그 의미를 말하는 것은 사족이다.
<뮤직 박스>에서 다룬 진실은 그러나 현실에선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뮤직 박스>의 내용과 똑같은 삶을 살던 헝가리의 나치 전범 폴가르 라요쉬는 2006년, 호주 멜버른에서 89세로 병사한 것이다. 헝가리의 파시스트 정당 ‘애로우 크로스’의 고위 당직자로 5만에 달하는 유대인 학살과 고문에 가담한 혐의를 받아온 그는 50년이 넘도록 나치 부역 혐의를 숨기고 살았지만 끝내 단죄되지 못한 것이다.
최근 연말 대통령 선거의 유력한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인 박근혜 후보가 과거사와 관련해 논란의 핵심이 된 것도 결국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시대에 대한 이해가 ‘개인사’의 범주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모든 사람에게 아버지는 육친이고 따라서 그에 대한 기억은 개인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법률가 앤 탤버트는 그 부친의 시대와 행적을 개인사의 범주에서 바라보지 않았다. 너그럽고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 뒤에 숨은 역사적 진실을 고통스럽지만, 똑바로 응시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이 나라 현대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대와 그 공과를 바라보는 딸의 자리도 다르지 않은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는 일인 것이다.
2012. 9. 24. 낮달
# 붙임
이 글을 쓴 것은 지난 토요일이었고, 블로그에 올린 건 월요일 아침이었다. 마침맞게 그날 오전에 박근혜 후보는 기자회견을 열어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박정희 시대의 과거사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그의 대국민 사과는 ‘한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제18대 대통령 후보’로임을 밝혔다. 지금껏 ‘아버지의 딸’이라는 개인사를 떨치지 못함이 그이의 문제였다면 이번 기자회견은 그런 우려를 넘어서는 것이긴 하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미심쩍은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 사과가 그의 근본적 역사 인식의 전환을 의미하는 거라고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사과가 국민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이미 드러난 사실들, 즉 고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등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을 위한 재조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는 경실련의 논평이 지적하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인 것이다.
그해 겨울 대선에서 결국 ‘그 아버지의 딸’ 박근혜는 승리하여 아버지를 뒤이어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가족끼리 권력을 승계한 예가 드물지는 않지만, 18년 독재 끝에 심복의 총에 맞아 숨진 부친의 후광에 힘입은 박근혜의 승리는 지지자들을 감동하게 하기에 과부족이 없었다.
그의 권력은 임기 5년은 최소한 보장된 것이었다. 적어도 그가 아버지 시대의 측근에게 국정을 반쯤 내맡기지 않았다면. 임기를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가 박정희 향수를 앓고 있는 지지자들의 사랑과 보살핌 속에 그녀는 편안히 여생을 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의 삶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부친이 측근에게 권력 때문에 비운을 맞은 것처럼 그 역시 측근 때문에 파멸했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을 결정했고, 그는 권좌에서 쫓겨났다. 2017년 3월 31일, 서울구치소에 갇힌 지 어느새 2년이 훌쩍 지났다.
그가 통치한 것은 ‘아버지의 나라’였다고 전한다. 권력도, 국가도, 국민도 그에게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뮤직 박스>의 앤처럼 아버지의 허물을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면, 부친을 반면교사로 여기고, 그를 극복하고자 했다면 그는 더 위대한 권력으로 살아남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지 못한 것은 그의 한계고, 우리 정치와 역사의 한계일지 모른다. 그러나 숨죽이며 살아온 시민들은 광장으로 나아가 촛불을 들었고, 그 혁명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온전히 시민의 힘으로 연 시대이기에, 지금 이 시대의 정치에 지워진 짐은 더 무거울지도 모른다. 자주적 주권자들이 져야 할 몫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2019. 9.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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