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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우리는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

by 낮달2018 2019.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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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황석영 장편 소설 『오래된 정원』

인터넷을 가까이하면서 얻는 소득은 쏠쏠하다. 그중에서 온라인 서점을 발견하고 종종 그 서점을 이용하면서 얻는 성취감은 두 가진데, 하나는 서점에 가지 않고도 아무 때나 신간을 검색해 볼 수 있는 파한(破閑)에 있고, 또 하나는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엄두도 못 낼 가격으로 그걸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황석영의 장편 소설 『오래된 정원』을 다시 읽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일뿐더러 스무 살을 전후해 세상을 읽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따위에서 내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이다.

 

격동의 20세기 마지막 20년의 '문학적 연대기'

 

이 소설은 저 파란과 격동의 20세기의 마지막 20년을 다룬 문학적 연대기다. 작가는 저 80년대의 벽두를 피로 장식한 ‘광주에서의 학살’을 보고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기록자였고, 80년대 후반에 북한을 극적으로 방문했으며, 덕분에 90년대의 초중반을 감옥에서 보낸 이다. 따라서 그는 저 지난 20년에 대해서 충분히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 셈이다.

 

이 소설은 광주의 학살로 문을 연 이래, ‘군사독재 권력과 민족민주 운동과 피어린 대결이 숨 막히게 진행된 80년대와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승리라는 휘황한 조명 앞에 꿈도 열정도 덧없이 사위어 버린 듯한 90년대’(염무웅 서평)를 살아온 한 연인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 죽어갔던 모든 사람의 이야기다.

 

남자는 0.75평의 독방 안에서, 그리고 여자는 그 바깥에서 한세상을 보낸다. 20여 년 만에 출옥한 남자(오현우)는 이미 병사한 그의 연인(한윤희)이 남긴 노트와 스케치북 속에 남긴 80년대의 삶과 투쟁을 회상하고 추적해 간다. 반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사랑의 시간 동안 그들이 낳은, 이제 열여덟 살이 된 은결이라는 딸과 만남을 앞두고 소설은 끝을 맺는다.


오래된 정원,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추구한 세대의 초상

 

후기에서 작가가 밝힌 대로 ‘아직도 희망은 있는 건가’고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작가에게 ‘오래된 정원’은 무릉도원이거나 유토피아이며, 그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추구한 세대의 초상’이다.

 

그것은 남자에게 남긴 노트에서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 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다고 말하며,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냐고,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냐는 여자의 물음과 잇닿아 있는 것이다.

▲ 영화 『오래된 정원』의 포스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동 시인으로 더 유명한 한 운동가가 자신을 스타의 반열에 올리며, ‘돈이 되는 운동’을 주장하는 이념의 왜곡과 혼돈 속에 우리는 서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의 이념이 다만 설익은 관념과 추상적 구호였다 하더라도, 우리는 아무도 저 고통과 절망의 시대에 연출된 모든 사람의 삶과 죽음의 의미들을 결코 가벼이 바라볼 수 없다. 문제는 그들 세대의 ‘무거움’이 아니라, 변화는 있되, 변화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이 날라리 시대의 ‘가벼움’일 터이다.

 

작가가 지키는 '변화에 대한 희망' 

 

두 권의 책으로 다시 만난 ‘정원’, 합법화 또는 민주화의 변화된 공간 앞에서 더러는 주저앉고 더러는 비켜선 우리들의 나태와 타협에 그들의 사랑과 삶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되물어 온다.

 

“당신들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 이제 우리가 대답할 차례다. 우리는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

 

아직도 희망은 있는가. 작가는 대답한다.

 

“질문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다시 출발할 것이다.”

 

 

2007. 2. 9. 낮달

 

덧붙임 :

영화 『오래된 정원』을 오래 기다렸다. 그러나 이 소도시의 영화관에서는 그것을 상영하지 않는다. 아마 별 재미를 볼 수 없는 영화로 판단한 모양이다. 대단한 마니아는 아니어서 이웃에 있는 대도시로 원정 구경을 떠나는 건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두고두고 소설의 장면과 이미지를 제멋대로 조합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영화 『오래된 정원』을 나는 뒷날 비디오로 보았다. 글쎄, 원작을 제대로 살리는 영화는 매우 드물지만, 영화는 비교적 그 시대의 분위기를 살리고 있었던 듯하다. '정원'에 대한 추구와 지향을 적실하게 담아냈다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당시에는 염정아가 여주인공 역을 맡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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