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서흥초교 총파업 안내 가정통신문에서 배워야 할 것들
전국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이 예고된 가운데 한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에게 배포한 가정통신문이 화제다. <미디어 오늘>이 전하는 기사의 제목은 "총파업 앞둔 노동자 울린 한 학교 가정통신문"이었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원 여성 노동자 100명이 청와대 사랑채 근처에서 '정규직 대비 80% 임금',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인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요구하는 집단삭발식과 기자회견을 한 것이 지난달 17일이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깎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을 전하는 기사를 읽으면서 삭발까지 할 만큼 절박해졌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들을 잊어버렸다. 한때 나도 그들과 같은 일터에서 일했다. 그들은 급식조리원이거나 교무행정실무사로 일하는 비정규직이었고 나는 정규직 교사였다.
같은 노동자로서 이들과 교류하지는 못했는데 그게 단지 소속 노동조합이 달라서만은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노동 연대'를 입에 올리곤 했지만 머리뿐 아니라 가슴으로 그들을 연대 대상으로 여기는 게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원들은 오는 3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 이를 안내하려 어느 초등학교에서 낸 가정통신문이 '노동자를 울렸다'는 기사 제목만 보고, 나는 그게 이들과 파업을 비난하는 내용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러나 기사는 내 짐작을 간단히 뒤집는 것이었다.
인천 서흥초등학교에서 보낸 가정통신문은 소속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며 학부모들의 배려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학교는 급식조리원이 파업에 들어가므로 대체급식을 할 수밖에 없음을 안내하면서 이들의 파업이 정당하며 지지가 필요함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이 학교는 먼저 '기본생존권 보장을 위한 적정한 임금 지급과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은 정부의 공약사항이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전제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파업 사실을 사무적으로 통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파업이 '법으로 보장된 권리 행사'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기본생존권의 보장을 위한 적정한 임금 지급과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 노동 개혁과 국민주권실현은 정부의 공약사항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비정규직 대우가 차별적이며 노동자로서의 마땅한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합니다.
이에 우리 학교 교육공무직 노동자 가운데 평소 우리 학생들의 성장을 위해 애써주시는 교무행정실무사, 급식실 조리 종사원, 전문상담사, 스포츠강사가 법으로 보장된 자신의 권리 행사를 위해 7월 3일(수)과 4일(목) 이틀간 총파업에 참여합니다.”
가정통신문은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에서 진행하는 총파업에 본교 교육공무직 선생님들이 참여함을 알려 드린다"라고 밝히면서 이들의 파업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것이고 비정규직 차별 없는 세상을 바라는 것이라고 부연하고 있다.
통신문은 "이틀 동안 빵과 음료 등 완제품으로 대체급식을 제공하고자 한다"고 밝힌다. 통신문은 본래의 목적인 대체급식 제공 사실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어지는 안내로 파업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의 편에서 그들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 학생들이 잠시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편'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누군가의 권리를 함께 지켜주는 일이라 여기고 그것이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하는 일임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이 땅에 소외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았으면 합니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하시는 학부모님들의 배려와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모든 노동자가 각자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존중을 받으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비정규직이라고 차별받는 일 없는 세상을 소망합니다.”
학교비정규직노조 관계자가 "가정통신문을 읽고는 눈물이 났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그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누려야 할 권리와 현실을 이해하고, 또 지지하길 권하는 학교 현장은 전국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라고 했단다. '노동자 울린 가정통신문'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붙었다.
노조 관계자의 언급대로 전국에서 이런 형식의 가정통신문을 보낸 학교가 얼마나 더 있을까. 대부분 학교가 사무적인 절차만 건조하게 알리는 형식을 선택할 것이다. 설사 학교장이나 담당자가 이 통신문과 같이 파업을 인식하고 있을지라도 그걸 공식 문서로 학부모에게 보내는 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파업은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행동권으로 합법적 쟁의행위다. 이 쟁의행위는 실제 시민들에게는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데 그 '불편'이 그들의 무기다. 쟁의행위로 빚어지는 불편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는 이 투쟁 과정에서 시민에게 요구되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려는 시민 정신이다.
파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제시한 ‘산 교육’
이 학교의 가정통신문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인 파업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이르러야 할 지점을 명백하게 시사해 준다. 학교가 학부모와 지역사회에 파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또 그로 인한 불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합법 파업으로 빚어지는 시민의 불편을 '인질론'으로 비난하는 것이 일상이 된 사회, 파업이 자본에 미치는 영향을 '국부의 유출'이나 '경제 발전의 걸림돌' 정도로 포장해 파업을 반사회적 범죄처럼 다루어 온 사회가 우리의 자화상이었다.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적잖은 불편이다. 빵과 음료 등의 대체급식이 아이들에게 충분한 끼니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통신문은 그것을 '불편'으로 여기는 대신, '누군가의 권리를 함께 지켜주는 일'로 여기고, "'우리 모두'를 위하는 일임을 생각해 보는 계기"로 삼자고 제의한다.
또 소외된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자며 '열심히 땀 흘려 일하시는' 학부모님들의 배려와 지지를 부탁한다. 가정통신문에서 굳이 '땀 흘려 일하는' 학부모들을 언급한 것은 그들도 같은 노동자임을 넌지시 환기하는 의도가 담겨 있는 듯 보인다.
이 가정통신문이 실제 학부모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알 수 없다. 노조의 파업에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한 것은 정권과 자본이 끊임없이 수행해 온 굴절과 왜곡 선전의 결과다. 오죽하면 노동자마저 파업에 대한 인식이 여느 시민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까. 그러나 저고용 저성장 시기를 겪으며 힘들게 살아오면서 시민들의 생각도 적지 않게 변화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유럽 사회처럼 초등학교 때부터 노동 교육과 정치 교육을 하지는 못한다고 해도 이러한 합법 쟁의행위를 경험하면서 아이들이 노동을,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삼권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타인의 권리를 위해 때로 내 삶이 불편해질 수 있음을 배우는 것만 한 '산 교육'이 또 어디 있을까.
2019. 7. 1.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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