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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담화’의 주역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 별세

by 낮달2018 2026. 6. 14.

고노 요헤이(河野 洋平) 1937.1.15. ~ 202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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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에서는 고노를 "DJ와 간담상조…주변국 아픔 공감한 '진짜 보수'"라고 평가했다.

지난 8일, 1993년 일제 강점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과 일본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를 발표하여 역사적 진실 규명에 이바지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일본 전 중의원 의장이 세상을 떠났다. 1993년 8월 4일, 당시 일본 자유민주당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내각의 관방장관으로 재직하던 고노는 ‘위안부 관계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담화’(이하 ‘고노 담화’)를 발표했다. [관련 기사 : 고노 요헤이 전 일 중의원 의장 별세고노 담화위안부사죄]

 

고노 담화는 전시 일본군 위안소는 당시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설치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관리 및 위안부 이송에 관해서는 구 일본군이 관여하였다고 발표하면서 일본군 ‘위안부’들에게 사과했다. 이는 그때까지 일본군 ‘위안부’들이 군용 성매매 업소에 종사하도록 강요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던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군의 강제성을 인정한 것이었다. 고노는 일본 제국 육군이 직간접적으로 매춘 업소의 설치에 관여했다고 인정했다. [관련 글 : 1993년 오늘, 고노 담화 - ‘정의의 기억’, 그 행방을 묻는다]

 

고노 요헤이는 1965년 정계에 입문한 이래 14선 중의원을 지낸 원로 정치인이다. 고노 담화를 발표한 이듬해인 1994년 6월 연립 여당이 신생당·공명당·일본신당 등이 사회당과 마찰로 붕괴하자 당시 자민당 총재였던 고노는 사회당 위원장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에게 총리대신 자리를 양보했다. 이로써 자민당·사회당·사키가케 연립 정권 무라야마 도미이치 내각이 출범했다. 고노는 무라야마 내각에서 부총리 겸 외무상으로 입각했다.

 

1995년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패배하자 무라야마는 1당 대표가 총리대신이 되는 게 맞다며 고노에게 총리대신 자리를 양보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자민당의 반대로 실현되지 않아 고노는 자민당 역사상 처음으로 총리대신이 되지 못한 총재로 남게 되었다. 한편, 고노는 2003년 중의원 의장이 되었는데, 이 또한 자민당 총재를 역임한 뒤 의장이 된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 2003년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한 고노 요헤이 전 중의원의장(2003.2.6.) ⓒ 연합뉴스 사진

고노 요헤이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주도한 양심적 정치인으로 한국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자민당 내 대표적인 비둘기파이자 지한파 정치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 등 한국 지도자들과 깊은 신뢰 관계를 구축하며 한일 관계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고노와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일 양국의 과거사 청산과 우호 증진을 위해 깊은 신뢰를 나눈 정치적 동반자였다. 두 사람은 간담상조(肝膽相照 : 마음속을 툭 털어놓고 숨김없이 아주 친하게 사귀는 절친한 사이)하는 사이로 평가받으며,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도출되는 과정과 이후 양국 관계 개선에 크게 이바지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공식 명칭: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도쿄에서 발표한 양국 관계의 기본 지침서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명문화하고, 과거사를 넘어 미래지향적인 우호 협력 관계를 구축하기로 합의한 역사적인 문서로 평가된다.

 

반면 일본 보수 우익 진영에서는 역사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저자세를 취했다는 등 비판적 평가를 받았다. 일본의 우익 및 보수 세력은 그가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입장을 지나치게 대변하고, 일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이른바 ‘자학적 역사 인식’이라고 공격했다. 총리직에 오르지 못한 불운에다 자민당 내 보수화 흐름 속에서 그의 온건한 목소리가 점차 당내 주류에서 밀려나는 한계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과거사 인식이 퇴행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 비추어보면, 그의 ‘고노 담화’는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보여준 가장 전향적이며 진일보한 인식으로 평가된다. 타계 직후 한국 외교부와 정치권은 고인의 역사 직시와 반성, 양국 관계 발전을 향한 용기 있는 업적을 높이 평가하며 애도를 표했다.

▲ 무라야마 담화로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 사죄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

공교롭게도 그의 부음은 지난해 10월 17일 세상을 떠난 무라야마 도미이치(1924~2025) 일본 제81대 내각총리대신을 소환한다. 그는 앞서 서술한 대로 1994년 6월 연립 여당이 신생당·공명당·일본신당 등이 사회당과 마찰로 붕괴하자 당시 자민당 총재였던 고노의 양보로 사회당 위원장으로 총리대신 자리에 올랐다.

 

사회당 위원장 출신 총리대신이 탄생한바, 이는 2010년 6월 간 나오토가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55년 체제가 출범한 이래 자민당 당적을 가진 적이 없던 사람이 총리대신이 된 유일한 사례이기도 했다. 그는 다이쇼(大正 : 1912~1926) 시대에 출생한 마지막 내각총리대신으로, 일본 정치사에서 세대적 단절과 전환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의 임기는 1994년 6월 30일부터 1996년 1월 11일까지였다.

▲ 무라야마 전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 부정한다면 이 세계에서 일본은 살아갈 수 없다"고 했다.

무라야마는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담화’로 불리는 ‘전후 50주년의 종전 기념일을 맞아’를 각의 결정으로 발표했다. 이 담화는 전후 50주년 기념식에서 각의 결정에 근거해 “일본이 태평양 전쟁 이전이나 전쟁 중에 행했다고 생각되는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했다. 이 담화는 이후의 정권에서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역사 견해로 이해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공식 인정하고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내각의 성향에 따라 담화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수정하려는 ‘역사 수정주의’가 혼재된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 우익 성향의 아베 신조(1954~2022)는 아베 담화(2015)를 통해 역사수정주의를 표방했다.

2000년대 이후 우익 성향의 아베 신조(1954~2022) 내각 등이 등장하면서 과거 침략의 강제성과 범죄 사실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 강화되었다. 아베는 2015년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서 “후세대에 사죄의 숙명을 지게 할 수 없다”라는 식의 태도로 역대 내각 입장 전체적 계승하되 ‘더 이상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표방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역사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평가절하했고, 본인의 직접적인 목소리가 아닌 ‘과거형’으로 언급된, 사죄의 ‘간접성’ 비판을 비판하면서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이후 한일 관계의 우여곡절은 우리가 현실로 대면하고 있는 바다. [관련 글 : 아베 신조의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 일본’, 그리고 요시다 쇼인]

 

고노 담화의 주역 고노 요헤이 전 일본 중의원 의장의 영면을 빈다. 지난해 10월 유명을 달리한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부음에도 뒤늦었지만, 정중히 조의를 드린다. 두 사람의 담화가 한일 관계사에서 그나마 가장 진일보한 내용이었다는 사실은 다행스럽지만, 여전히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한일 간 현안을 새삼 환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2026. 6. 1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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