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말이산 고분군과 함안박물관을 찾아서(20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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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보리밭 대신 말이산 고분군으로
지난 노동절, 함안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을 찾았다가 청보리는 보지 못하고 작약꽃만 보고 아쉽게 발길을 돌렸었다. 당초에 출발하면서 우리는 청보리와 작약꽃 말고는 다른 목적지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일찌감치 생태공원을 떠나면서 나는 점심을 먹은 뒤, 들를 수 있는 다른 장소를 검색해야 했다.
함안이 말이산 고분군이 있는 아라가야의 옛 유적지라는 걸 확인하고 나는 무릎을 쳤다. 4~6세기 영호남 지역의 가야 소국 지배자들이 묻힌 고분군을 이르는 ‘가야 고분군(Gaya Tumuli)’이 한국의 16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오른 건 2023년 9월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 고분군은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 있는 김해 대성동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 고성 송학동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등 7개 유산으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자세한 내용은 ‘가야 고분군 세계유산관리재단’ 참조]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한 가야 고분군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가 유네스코 공식 누리집을 통해 공개한 평가 근거는 “가야 고분군이 주변국과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독특한 체계를 유지하며 동아시아 고대 문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는 점에서 세계유산 등재의 핵심적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가 인정된다”라는 것이었다.
가야(加耶)는 서기전 1세기부터 서기 562년까지,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일부에서 형성된 작은 나라들의 연합이다.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와 함께 존속하였다. 가야의 기원은 삼한시대 변한 혹은 변진 12국 중 구야국이다. 해로 상의 요충지로서 대방군에서 한반도 남부, 나아가 일본 열도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해상 교통의 요지였다.
2∼3세기에 걸쳐 김해의 가야국을 중심으로 12개 소국이 합친 변한 소국 연맹 즉 전기 가야 연맹을 이루었고, 발전된 철기 생산 능력과 양호한 해운 입지 조건을 바탕으로 주변 지역과 교역하며 발전해 나갔다. 교역을 통해 들어온 외국계 유물은 가야의 국제관계를 반영한다.

가야와 관련된 고분군은 780여 개소에 이르며, 고분군에 축조된 고분은 수십 만기에 달한다. 중앙집권화된 국가 체계를 이루지 않고 공존하였던 가야의 각 정치체는 지역마다 크고 작은 고분군을 조성하였다. 가야 고분군은 사라진 가야 문명을 복원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이다. 가야 고분군은 입지와 경관, 묘제의 변화, 부장 유물을 통해 가야 사회의 내부구조와 변천 과정을 보여준다. [관련 글 : 가야 고분군, 열여섯 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꽤 오랫동안 가야 고분군을 궁금하게 여겨 왔지만, 정작 나는 대구 근교인 고령 지산동고분군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떠날 것 같은데, 그게 뜻밖에 쉽지 않아서다. 나이 탓인지 무슨 일이든 성큼 시작하지 못하게 된 지가 여러 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염두에 두지 않은 발길을 말이산 고분군으로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유명한 맛집이라는 칠원읍의 냉면집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가야읍으로 차를 몰았다. 함안군은 군청 소재지는 함안면이 아니라, 가야읍이었고, 말이산 고분군은 가야읍 도항리 484번지 일원에 산재해 있다. 고분군 아래에 군에서 세운 함안박물관(가야읍 고분길 153-31)이 문을 열고 있다.


함양군청 쪽으로 오른 말이산 고분군
내비게이션을 따르다 보니 우리는 박물관이 아니라, 반대편의 함안군청 쪽에서 말이산에 올랐다. 말이산 고분군은 가야읍 도항리와 말산리에 있는 구릉지의 이름을 따랐는데, 1~6세기 가야 연맹을 구성했던 아라가야의 대표 고분군이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7개의 고분군 중 가장 오랜 기간 조성되었으며, 봉토를 크게 조성하지 않는 목관묘, 목곽묘에서 석곽묘, 석실묘로 변화하면서 거대한 봉토분이 군집하는 기념비적인 경관을 형성하고 있어 ‘가야 고분군’의 가시적인 모습을 잘 보여준다.”(가야고분군 세계유산관리재단, 이하 인용은 같음)
구릉지 능선을 따라 조성된 대형 봉토분으로 인해 함안 말이산 고분군은 이후 시대에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되었으며, 16세기 문헌에는 말이산 고분군을 고대 왕들의 무덤으로 기록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20세기 초까지 구릉지 아래의 봉토분은 잘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비록 경주의 고분에는 비기지 못해도 놀라운 고분군의 풍경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니 정상부 아래에 펼쳐지는 고분군의 풍경은 놀라웠다. 경주에서 흔히 보는 잘 정비된 대형 봉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여기저기 솟은 봉토분은 비교적 잘 가꾸어져 있었고, 저 아래 박물관까지 이르는 탁 트인 풍경이 좋았다. 아이들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뜻밖에 멋진 풍경을 기꺼워했다.
“5~6세기 조성된 봉토분은 구릉지 능선과 사면을 따라 127기가 조성되어 있다.”고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봉분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말이산의 봉토분들은 비록 경주의 고분들처럼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만그만한 높낮이로 1500년 전, 알려지지 않은 왕국의 역사를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고분전시관에는 가야 5세기부터 축조되는 아라가야의 특징적인 석곽묘(石槨墓, 돌덧널무덤) 모형이 전시된다. 가늘고 긴 장병형(직사각형)의 석곽묘에는 중앙부에 피장자의 시신이 안치되고 머리 위쪽에는 다량의 토기가 부장되며, 발 아래쪽에는 순장자가 배치되는 전형적인 공간 분할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라가야의 석곽묘와 불꽃무늬 토기
또 20세기 초부터 이루어진 발굴 조사 결과 토기, 철제 무기, 교역품 등 다량의 부장품도 전시되고 있다. 특히 토기는 고배(高杯:굽 높은 접시 형태의 토기), 기대(器臺:그릇받침. 둥근 바닥의 항아리나 그릇을 안정적으로 받치기 위해 제작된 토기)·장경호(莊頸壺:목이 긴 항아리)와 같은 가야토기의 공통적인 구성이 확인되며, 불꽃모양으로 대표되는 독특한 투창(透窓:굽다리 부분에 창문처럼 뚫은 구멍)이 나타난다.
또한 집 모양, 수레바퀴 모양, 사슴 모양, 배 모양 등 다양한 형상을 본떠 만든 토기도 출토되었다. 아라가야는 물길을 기반으로 가야의 여러 정치세력과 백제, 일본(왜) 등 주변 국가와 교역하면서 낙동강 유역에서 가야 연맹 전 시기 동안 세력을 유지하였다.









규모나 내용 모두 놀라운 군립의 함안박물관
아이들이 차를 우회하여 박물관 앞으로 가져오는 동안 나는 아내와 함께 완만한 경사의 둔덕 사이로 난 길로 함안박물관에 내려갔다. 함안박물관은 “2003년 10월에 개관하여 2005년 6월에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되었으며, 현재 대여유물 200여 점과 기증·기탁 유물 8,200여 점을 전시, 수장하고 있다. 2021년 고분전시관 개관, 2022년 본관 리모델링, 2023년 제2전시관 개관 등 시설 규모가 질적, 양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데, 군립 박물관이라기엔 외형적으로도 규모가 대단해서 놀라웠다.
군 단위 시골 박물관으로서는 전시 내용도 충실해 보였고, 전시 동선이나, 전시 디자인 등도 괜찮았다. 공휴일이어선지는 모르겠는데, 고분군에도 박물관에도 적지 않은 관람객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인구 6만이 채 되지 않는 시골 군청 소재지에서 지켜온 고대의 문화 유적은 뒷사람에게 귀중한 유산이 된 셈이다.
근무 중인 직원들에게 좋은 구경했다는 인사를 하면서, 함안 사람으로서 자랑스럽겠다고 말해 주었더니 조금은 무안해하면서도 환하게 웃었다. 어쨌든 사는 곳의 역사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역사적 유적과 유물은 지역 정체성에 적잖은 무게를 더할 것이었다.
가야의 역사는 기존의 삼국 역사나, 통일신라사 등에 가려서 ‘신비의 왕국’으로 불리며, 아직 밝혀져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그 원인은 역사적 기록의 부족, 중앙집권 국가로의 발전 미흡, 신라 중심의 역사 서술, 그리고 고고학적 연구의 상대적 지연 등 복합적이다. 2023년 가야 고분군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최근 가야사 복원 사업 등으로 그 실체가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청보리밭을 보지 못하고 강나루 생태공원을 떠나온 아쉬움은 말이산 고분군과 함안박물관의 전시를 살펴보며 반분을 풀었다. 돌아가면 가까운 고령 지산동고분군부터 찾아보리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옛 아라가야의 땅, 함안을 떠났다.
2026. 5. 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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