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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여행, 그 떠남과 이름의 기록

한양도성의 성곽길, ‘루미’와 ‘진우’가 만난 그 길을 걷다

by 낮달2018 2026. 3. 28.

한양도성 순성길 중 ‘낙산 구간’을 찾아서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낙산공원은 한양도성 순성길 중 낙산 구간에 조성된 공원이다. 비교적 높다란 성벽 아래에 '낙산공원' 팻말을 세웠다. ⓒ 위키백과

지난주 월요일에 아내와 함께 서울의 아들애 집에 가서 금요일까지 머물렀다. 다른 볼일이 있어서는 아니고, 아파트에 승강기 교체 공사 때문에 고층을 계단으로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은지라 잠깐이나마 아이한테 가 있으려고 한 것이었다. 원래 계획은 벚꽃이 필 때쯤 가서 종묘를 다시 가보려는 것이었지만, 상황이 그리되어 계획을 좀 당긴 셈이었다.

 

이튿날인 화요일 오후에 낙산공원에 들렀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그 유명한 장면, 루미와 진우의 데이트가 이루어지던 그 성곽길 말이다. 한 해에 고작 두어 번 볼일이 있어야 다녀오는 데가 서울이라, 나는 서울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

▲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에 나오는 그 유명한 장면, 루미와 진우의 데이트가 이루어지던 장면을 보고 나는 낙산을 알게 되었다.
▲ 한양도성 구간. 위에서부터 백악구간, 남산 구간, 인왕 구간. 이 성벽은 모두 18.6km에 이른다. 사진은 서울시 한양도성 누리집.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그 성곽길을 찾다

 

이름난 곳은 수도 없지만, 모두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겨우 경복궁을 비롯한 같은 고궁과 국립극장, 국립미술관 정도만 돌아보았을 뿐이다. 5백 년 조선왕조의 수도로 도성(都城)이 있다는 사실도 익히 알지만, 그 처음과 끝이 어디쯤인지 사실 종잡지도 못 한다.

 

그런데 케데헌에서 확인한 그 성곽길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거길 한번 찾으리라고 해서 길을 나선 것이었다. 낙산(駱山·125m))은 풍수상으로는 북악산, 남산, 인왕산과 함께, 도성으로 이어진 네 개의 산[내사산(內四山)]의 하나다. 지형이 낙타 등처럼 생겨 낙타산이라고도 했으며, 궁중에 우유를 보급하던 왕실 목장이 일대에 있어 타락산(駝酪山)이라고도 불리었다.

▲ 한양도성 순성길의 네 개 구간 가운데 낙산 구간이 가장 어렵지 않게 돌 수 있는 곳이다.

낙산에 이어진 성곽은 곧 한양도성이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그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이다. 태조 5년(1396), 백악(북악산)·낙타(낙산)·목멱(남산)·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쌓은 후 여러 차례 고쳐 쌓았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는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랫동안(1396~1910, 514년) 도성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한다.

▲ 낙산공원 주차장 위에 있는 낙산 전시관. 뒤쪽 산이 낙산이고, 그 위로 성곽길이 이어져 있다.
▲ 서울시의 '한양도성' 누리집의 안내도를 보기 편하게 재구성하였다.

낙산공원에 차를 대고 산의 경사면을 올라 성곽길에 닿았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과 사소문을 두었다. 사대문은 흥인지문·돈의문·숭례문·숙정문이며 사소문은 혜화문·소의문·광희문·창의문이다. 이 가운데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또, 도성 밖으로 물길을 잇기 위해 흥인지문 주변에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을 두었다.

 

전체 순성길 중 ‘낙산 구간’을 잠깐 걷다

 

전체 순성길 가운데, 낙산 구간은 ‘혜화문에서 시작하여 낙산공원, 한양도성박물관, 동대문성곽공원을 지나서 흥인지문까지 이르는 구간’으로 길이는 2.1km, 평이한 구간이라 난도(원문에는 ‘난이도’로 표기되어 있지만, ‘어려움의 강도’를 뜻하므로 ‘난도’로 쓰는 게 맞다)는 낮다.

 

낙산은 서울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산으로 내사산 중 가장 낮다. 당연히 낙산 구간은 경사가 완만하여 산책하듯 걷기에 적당하다지만, 우리가 걸은 성곽길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나오는 부분부터 불과 이삼백 미터에 불과하였으니, 굳이 ‘난도’를 말하기는 어렵다.

▲ 우리가 성곽길 걷기를 시작한 곳. 케데헌의 루미와 진우가 만나던 장소라는 팻말이 왼쪽에 있었다.

한양도성이 처음 완공된 건 약 620년 전, 조선 태조 5년(1396년) 모두 98일 동안 전국 백성 19만 7천 4백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처음 축성할 때 평지는 토성으로, 산지는 석성으로 쌓았으나 이후 세종 때 개축하면서 흙으로 쌓은 구간도 석성으로 바꾸었다.

 

한양도성은 근대화 과정에서 옛 모습을 많이 잃어버렸다. 1899년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전차가 개통되면서 성문이 제 기능을 잃었고, 1907년 일본 왕세자 방문을 앞두고 길을 넓히려고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되었다. 1908년에는 평지의 성벽 대부분이 헐렸다.

 

성문도 마찬가지였다. 소의문은 1914년에 헐렸으며, 돈의문은 1915년에 건축 자재로 팔려나갔다. 광희문의 문루는 1915년에 무너졌고, 혜화문은 1928년 문루가 헐렸으며, 1938년에는 나머지 성문과 성벽 일부도 헐렸다. 일제는 1925년 남산 조선신궁과 흥인지문 옆 경성운동장을 지을 때도 주변 성벽을 헐어버리고 성돌(성벽의 돌)을 석재로 사용했다.

▲성벽 윗부분에 낮게 쌓은 담장(흉벽, Parapet)인 여장(女墻)에 총이나 활을 쏘기 위한 구멍인 총안이 세 개씩 나 있다.
▲ 낙산성곽에 있는 비밀의 문인 암문(暗門). 암문이라기엔 아주 큰 문인데, 이는 성 아래와 연결하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 성안에서 보면 성벽은 낮아보이지만, 성밖에서 보면 적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이의 성벽이 이어진다.

한양도성의 변천엔 서울의 도시 구조 변화가 담겼다

 

한양도성의 중건은 1968년 1·21 사태 직후 숙정문 주변에서 시작되었고 1974년부터 전 구간으로 확장되었다. 서울시는 한양도성의 역사성을 제대로 보존, 문화유산으로 전승하고자 2012년 9월 한양도성도감(현재 문화재관리과)을 신설하고, 2013년 10월 국제기준에 맞는 한양도성 보존·관리·활용 계획을 수립하였다.

 

한양도성은 전체 구간의 약 70%, 13.7km(2023년 기준) 구간이 남아있거나 중건되었다. 숙정문·광희문·혜화문을 중건하였지만, 광희문과 혜화문은 부득이하게 원래 자리가 아닌 데 세워졌다. 그러나 조선왕조의 수도인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도성이 이 정도나마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럽다.

 

한양도성은 정해진 시각에 열리고 닫혔다. 보신각종을 쳐서 성문의 개폐를 알렸는데, 새벽에는 33번, 저녁에는 28번을 쳤다. 저녁에 치는 종을 인경(인정), 새벽에 치는 종을 바라(파루)라 했는데, 민가의 문도 이 종소리에 따라 여닫았으니, 성문의 개폐가 백성의 생활 리듬을 지배한 셈이었다.

 

한양도성은 서울과 지방을 구분하는 경계선인 동시에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이기도 하였다. 왕이든 백성이든 생을 마감하면 반드시 도성 밖에 묻혀야 했기 때문이다.

▲ 내려오는 길, 성벽의 여장 위로 까치 한 마리가 날고 있다.
▲ 서울은 여전히 건설 중이다. 성곽길 아래 건설 현장에 초대형 중량물을 들어 올리는 대규모의 크레인이 여럿 서 있다.
▲ 낙산공원의 까치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까이 가도 천연덕스럽게 사람을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 낙산공원 중앙광장 부근의 울타리에 심어진 영춘화. 봄을 맞이하는 꽃인데, 봄은 이미 깊어가고 있다.

도성뿐 아니라 종묘사직을 수호하기 위해 쌓은 성이었지만, 정작 한양도성은 임진, 병자 양란에도 방어 시설로 제구실하지 못하였다. 왕과 지배층은 도성을 버리기 일쑤였고, 힘없는 백성만 남아 적에게 고초를 겪어야 했다. 영조 27년(1751) 왕은 “도성을 지키는 것은 백성을 위한 일이다. 변란이 일어나면 내가 먼저 성 위에 올라 백성과 함께 싸우겠다.”라는 내용의 수성윤음(守城綸音)을 반포하여 도성을 사수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더불어 도성의 백성에게 각각 담당 구역을 정해주고 유사시에는 맡은 구역을 지키게 하였다. 도성의 주민을 주체로 하는 도성 방위체계가 완성된 것이다. 그러나 1세기 반(159년)을 넘기면서 강도 일본에 나라와 주권을 빼앗겼다. 그리고 이제 민주공화국이 된 나라는 그 과거의 유적과 역사를 보존하고, 잃어버린 것을 복원하는 일에 나서고 있다. 그것은 성이 한 나라의 유적에 그치지 않고,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는 역사와 문명의 진전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낙산에 머문 시간은 두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성곽길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먼지가 뿌옇게 끼어 있었고, 날씨는 쌀쌀했다. 어차피 성곽길을 걸으러 온 게 아니라, 공원 나들이를 온 것이니 뒷날 핑계를 대고, 서둘러 하산하였다. 그러나 사진으로 복기하는 낙산 구간으로, 쉽게 볼 수 없는 전근대 국가의 도성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만족하기로 했다.

 

 

2026. 3. 27.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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