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단풍 본좌’ 내장산, 잎사귀들의 마지막 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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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을 처음 찾은 건 2019년이었다. 아침 6시에 출발하여 10시께에 내장산국립공원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었다. 단풍은 절정에는 조금 못 미치는 상황 같았지만, 내장사까지 이르는 단풍 터널을 오가며 이른바 ‘단풍 본좌’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관련 글 : 늦지 않았다, 때를 지난 단풍조차 아름다우므로]
두 번째 찾은 내장산, 내장산 아기단풍
올해 다시 내장산을 찾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10월 말에 서울에서 며칠 묵으면서 인근 파주의 한 유원지를 찾았다가 단풍 이야기가 나왔고, 내장산 단풍이 11월 초순에 절정일 거라는 얘기를 나누었다. 11월 둘째 주에 서울의 아들애가 혼자서라도 내장산을 찾겠다고 하면서 가족의 내장산행이 급물살을 탔다.
11월 8일, 주말이어서 내장산은 미어터질 터라 우리는 새벽 4시 반에 정읍으로 출발했다. 7시 반에 케이티엑스(KTX)로 정읍역에 닿은 아들과 만나 내장산에 이르니 8시 반쯤이었는데도 이미 주차장은 모두 만차 상태였다. 어쩌나 했는데, 만 원을 내고 맨 위쪽 산비탈에 조성된 사설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었다.
이미 입구에서 내장사까지 가는 순환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고, 걸어서 가는 이들로 길은 미어지고 있었다. 탐방안내소에서 인파 사이를 뚫고 단풍 터널 길을 오르면서야 나는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한 내장산행이 차를 대지 못해 낭패되는 상황은 어쨌든 면한 것이었다.
그럼, ‘단풍’은 어땠나, ‘때’는 맞추었던가. 주차장 쪽에서 탐방안내소로 오르는 길 좌우에 빽빽하게 들어찬 단풍나무는 옷을 반만 갈아입은 듯했다. 흔히 ‘아기단풍’으로 불리는 내장산 고유의 잎사귀가 작은 ‘당단풍(唐丹楓)’의 아름다움은 여전했지만, 아직 초록을 벗지 못한 나무들은 여전히 여름을 나지 못한 채 싱그러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여전히 여름을 나지 못한 초록 잎사귀, 기후 위기의 우울한 징후
화사한 단풍으로 단장해 버린 나무들도 많았지만, 단풍철이 남의 일인 듯 시퍼렇게 남은 나무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11월 초순, 지난해 찾은 대전 장태산 휴양림의 단풍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초록 잎사귀들은 조만간 ‘초록 낙엽’으로 질 터, 그것은 바로 이 기후 위기 시대의 우울한 징후가 아니던가 말이다. [관련 글 : 초록 짙은 11월의 메타세쿼이아 숲, 문제는 ‘단풍’ 아닌 ‘기후’다]
우리는 단풍을 즐기며 사진을 찍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내장사까지 올랐다. 내장사를 한 바퀴 돌아서 부도전 앞 널찍한 단풍나무 숲 그늘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2019년에 왔을 때, 국립공원 내장산의 ‘내 도시락을 부탁해’ 서비스가 있다는 걸 알았다. 올핸 그걸 주문하려고 여러 차례 애를 썼지만, 서비스가 없어진 듯해 포기하고, 정읍역 앞에서 김밥천국에서 사 온 김밥과 미리 준비한 치킨을 곁들여 식사했다.
내려오는 길을 오르는 길과는 다른 풍치를 선사해 주었다. 거의 같은 길인데도, 방향을 바꾸어 바라보는 단풍의 숲, 여전히 초록과 노랑, 주황과 주홍이 뒤섞인 숲은 아름답고 몽환적이었다. 2019년에는 스쳐 지나갔던 우화정(羽化亭) 주변도 아름다웠다. 물과 꽃의 컬래버와 마찬가지로 물과 단풍의 그것도 또 다른 처연한 아름다움을 시전해 주었다.
인파에 밀리듯 내려오는 시간은 어느덧 정오였다. 아이들은 85점을 주었지만, 나는 다소 아쉽기는 해도 95점을 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재어보고 와도 단풍철을 맞추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고, 기후 위기 시대는 완벽한 단풍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난만한 단풍은 그것대로, 아직 초록을 나지 못한 것들은 또 그것대로 이 가을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이었으므로.
사진으로 만나는 잎사귀들의 마지막 향연
700장이 넘는 사진 가운데 스무 장을 골랐다. 물론 자동 톤, 자동 대비, 자동 색상 등 기본적인 보정을 하고, 밝기를 조금 조절했다. 나이 들면서 자꾸 어두운 질감이 싫어서 엔간하면 명도를 조금 높이는 게 일상이 돼서다. 해마다 단풍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하는 건 역시 나이 들면서 고운 걸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까닭이다.
사진 이미지로 만나는 단풍은 직접 만나는 단풍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계절의 순환에 따라 초록을 지나 고운 빛깔로 갈아입는 잎사귀들의 마지막 향연을 바라보면서 이 저무는 해를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2025. 11. 1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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