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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배우의 수상소감 - ‘성찰과 연대’가 필요한 이유

by 낮달2018 2026. 3. 22.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2013) ‘진 허숄트 박애상’을 받은 앤젤리나 졸리의 수상소감

▲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앤젤리나 졸리는 '진 허숄트 박애상'을 받고 감동적인 수상소감을 남겼다. ⓒ 유튜브 갈무리

며칠 전 한 유튜브 쇼츠(https://www.youtube.com/shorts/yZCa7tfG6Vc)에서 인상 깊은 이야기를 만났다. 유명한 미국의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201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진 허숄트 박애상(Jean Hersholt Humanitarian Award)’을 받고서 한 수상 연설에 관한 쇼츠다.
 
앤젤리나 졸리의 아카데미상 시상식(2013) 수상소감
 
앤젤리나 졸리는 워낙 유명한 배우니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나 나는 그의 영화를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고, 단지 그의 부친인 존 보이트(Jonathan Vincent "Jon" Voight, 1938~ )가 더스틴 호프만과 함께 출연한 영화 <미드나이트 카우보이>(1969)를 매우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그의 모친 마셀린 버트런드(1950~2007)도 배우지만, 잘 알려진 이는 아니다. 마셸린 버트런드는 난소암으로 사망했는데, 졸리는 2013년 양쪽 유방 절제 수술을 받았다. 졸리는 “10여 년 동안 암 투병 끝에 56세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같은 상황을 똑같이 겪고 싶지 않았다”라며 “유방암에 걸릴 위험을 줄이고자” 유방을 절제한 것이다. 졸리는 어머니로부터 유방암 관련 유전자인 ‘BRCA1’을 물려받았는데, 이에 따라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에 달했는데 유방 절제 수술을 받은 지금은 확률이 5%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 졸리가 깊은 영향을 받은 모친 마셀린 버트런드(1950~2007)와 부친 존 보이트. 두 사람은 일찌감치 헤어졌고 졸리는 모친 아래 자랐다.
▲ 존 보이트의 대표작 <미드나이트 카우보이>(1969), 더스틴 호프만과 공연한 이 영화를 나는 1970년대 초반에 보았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앤젤리나 졸리에 대한 설명은 <위키백과>의 ‘졸리’ 항목의 첫 문단으로 대신한다.
 
앤젤리나 졸리(영어: Angelina Jolie, 1975년 6월 4일~)는 미국의 배우이자 영화감독, 자선가이다. 아카데미상 1회, 미국 배우 조합상 2회, 골든 글로브상 3회 등을 수상하였다. 2009년과 2011년, 2013년에는 미국의 경제 잡지《포브스》가 선정한 ‘할리우드에서 가장 출연료가 높은 여자 배우’가 되었다. 또한 졸리는 다양한 인도주의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데, 국제 연합 아동 기금(유니세프)의 친선 대사로 활동했으며 난민 특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졸리는 다양한 언론 매체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주 언급되며,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 <위키백과> 중에서
 
진 허숄트 박애상(Jean Hersholt Humanitarian Award)은 아카데미상 가운데 하나로, 오랜 기간 영화 산업 전체의 발전에 현저한 공적이 있는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보통 아카데미상과는 달리,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MPAS)의 이사들이 후보를 지명하고, 투표하여  선정된다고 한다.
 
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진 허숄트 박애상을 받은 앤젤리나 졸리
 

▲ 진 허숄트 박애상은 덴마크 출신 배우의 이름을 땄다.

상은 덴마크 출신의 배우로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면서 아카데미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할 만큼 자선 활동으로 헌신한 진 허숄트(Jean Hersholt, 1886~1956)의 이름을 땄다. 그는 아카데미 회장과 AMPAS의 회장을 역임했고, 영화 및 텔레비전 기금(Motion Picture Relief Fund)의 회장을 18년간 지냈다.
 
진 허숄트 박애상 수상자는 2026년까지 모두 45명인데, 널리 알려진 할리우드 스타로는 그레고리 펙, 찰턴 헤스턴,폴 뉴먼, 오드리 헵번, 엘리자베스 테일러, 지나 데이비스 등이 있다.
 
2013년 최고의 영화들을 기리는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2014년 3월 2일 할리우드에서 베풀어졌다. 작품상은 브래드 피트가 제작한 <노예 12년>이 받았고, 감독상은 <그래비티>의 알폰소 쿠아론이, 여우주연상은 <블루 재스민>의 케이트 블란쳇, 남우주연상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매튜 매커너히가 받았다.
 
앤젤리나 졸리는 이 시상식에서 진 허숄트 박애상을 받았는데, 앞서 소개했듯 그는 “다양한 인도주의 활동에 참여”하고 “ 국제 연합 아동 기금(유니세프)의 친선 대사로 활동”했으며 “난민 특사”로 활약하는 등의 사회적 공헌을 인정받은 것이다.
 
비교적 짧은 그의 수상소감은 이를 소개하는 영상이나 블로그마다 번역은 조금씩 뉘앙스가 달랐지만, 쇼츠로 제작된 동영상(https://www.youtube.com/shorts/yZCa7tfG6Vc)에서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데, 여기에는 “이것보다 더 강력한 수상소감은 없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 같은 내용이지만, 이 쇼츠의 번역이 함축적이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해를 못 했어요. 왜 제가 이런 삶의 기회를 가지고 태어났는지. 세상 어딘가에는 저와 똑같은 능력과 욕망 같은 성실함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진 여성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저보다 더 좋은 영화를 만들고 더 나은 연설을 할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녀는 난민 캠프에 있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습니다. 그녀가 걱정하는 건 아이들이 오늘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 어떻게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 언젠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입니다.
 
왜 이 삶은 제 것이고 저 삶은 그녀의 것인지 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니가 늘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 삶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 위 쇼츠의 번역
 
핵심 내용을 담은 원문을 구글 번역으로 옮긴 글은 뒤에 따로 싣는다. 분명 다 같은 원문을 번역한 글이지만, 조금씩 뉘앙스가 다른데, 위 쇼츠의 번역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글이어서 맨 먼저 싣는다. 나는 이 글을 읽고 거기 드러난 졸리의 진정성에 크게 감동받았다.
 
공평하지 않은 삶을 지적하고 보내는 성찰의 연대의 메시지

▲ 전 남편 브래드 피트와 공연한 영화 <미스터 미세스 스미스>(2005)

졸리의 수상소감은 저마다의 삶을 좌우하는 ‘기회’에 따라 엇갈리는 우리 삶의 공평하지 않은 장면들을 직격한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 덕분에 자신과 같은 ‘능력과 욕망 같은 성실함,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진 다른 여성의 고통스럽고 아픈 삶을 환기한다.
 
기회에 따라 엇갈리는 공평하지 않은 삶과 세계
 
그는 “이 삶은 제 것이고 저 삶은 그녀의 것”인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어머니의 말씀대로 “이 삶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서 소감을 마무리한다. 번역에 따라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은 “이 삶을 최대한 의미 있게 살아가겠”다로 엇갈리기도 하지만, 그 핵심적 내용은 변하지 않는다.
 
그가 자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세계적 명성을 지닌 배우가 되고, 천문학적인 수입으로 부유한 삶을 살게 된 게 전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이며 행운이지만, 소감으로 밝힌 것은 그러지 못한 삶을 살피고 돌아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삶에 대한 성찰이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연대의 손길을 건네겠다는 다짐이다.
 
텍스트로 읽는 것보다는 쇼츠나 유튜브 동영상의 자막을 읽는 게 훨씬 더 실감 나고 감동적일 수 있겠다. 그것은 우리와는 너무 먼 이국의 영화배우가 던지는 이 몇 마디 말속에 숨은, 삶에 대한 진실한 성찰과 연대의 메시지에 옷깃을 여며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래는 이 동영상의 원문과 구글의 번역이다.
 
“I don’t know why this is my life and that’s hers.” - by Angelina Jolie
“왜 내 삶은 이렇고, 그녀의 삶은 저렇지 않은지 모르겠어.” - 앤젤리나 졸리
 
My mother loved art, she loved film. She supported any crazy thing I did, but whenever it had meaning she made a point of telling me, “That is what film is for.”
어머니는 예술과 영화를 사랑하셨습니다. 제가 하는 어떤 엉뚱한 일이라도 다 응원해 주셨지만, 의미 있는 일이라면 언제나 “영화는 바로 그런 거란다”라고 말씀해 주셨죠.
 
She never had a career as an artist. She never had the opportunity to express herself beyond her theater class. But she wanted, more than for herself, she wanted for [my brother] Jamie and I, to know what it is to have a life as artists.
어머니는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쌓아본 적이 없으셨습니다. 연극 수업 외에는 자신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죠. 하지만 어머니는 자신보다 저와 동생 제이미가 예술가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She gave us that chance. She drove me to every audition and she would wait in the car for hours, always making me feel really good all the times I didn’t get the job. And when I did, we would jump up and down, and scream and yell like little girls.
어머니는 우리에게 그 기회를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오디션을 볼 때마다 차로 데려다주셨고, 몇 시간이고 차 안에서 기다려주셨습니다. 제가 떨어졌을 때도 늘 저를 격려해 주셨죠. 그리고 합격했을 때는 어린아이처럼 펄쩍펄쩍 뛰고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습니다.
 
She wasn’t really the best critic, since she never had anything unkind to say. But she did give me love and confidence. And above all, she was very clear that nothing would mean anything if I didn’t live a life of use to others. I didn’t know what that meant for a long time.
어머니는 최고의 비평가는 아니셨습니다. 저에게 흠잡을 데 없는 말씀을 하셨으니까요. 하지만 어머니는 제게 사랑과 자신감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I came into this business young and worried about my own experiences and my own pain. It was only when I began to travel, and look and live beyond my home that I understood my responsibility to others. When I met survivors of war and famine and rape, I learned what life is like for most people in this world. How fortunate I was to have food to eat, a roof over my head, a safe place to live, and the joy of having my family safe and healthy.
저는 젊은 나이에 이 업계에 발을 들였고, 자신의 경험과 고통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여행을 다니고, 집을 떠나 세상을 보고 살아가면서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쟁과 기근, 성폭력의 생존자들을 만나면서, 저는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이 있고, 머리 위에 지붕이 있고, 안전한 곳에서 살 수 있고, 가족이 건강하고 안전한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깨달았습니다.
 
I realized how sheltered I had been, and I was determined never to be that way again. We are all, everyone in this room, so fortunate. I have never understood why some people are lucky enough to be born with the chance that I had, to have this path in life.
저는 제가 얼마나 보호받으며 살았는지 깨달았고, 다시는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들입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저처럼 이런 삶의 길을 걸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며 태어나는 걸까요?
 
And why across the world there’s a woman just like me, with the same abilities and the same desires, same work ethic and love for her family, who would most likely make better films, and better speeches — only she sits in a refugee camp. She has no voice. She worries about what her children will eat, how to keep them safe, and if they’ll ever be allowed to return home.
그리고 왜 세상 어딘가에는 저와 똑같은 능력과 열정, 직업 윤리와 가족에 대한 사랑을 가진, 저보다 훨씬 더 훌륭한 영화와 연설을 만들 수 있었을 여성이 난민촌에 앉아 있는 걸까요? 그녀는 목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그녀는 아이들이 무엇을 먹을지, 어떻게 안전하게 지낼지,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
 
I don’t know why this is my life and that’s hers. I don’t understand that, but I will do as my mother asked, and I will do the best I can with this life to be of use. To stand here today means that I did as she asked, and if she were alive she’d be very proud, so thank you for that.
왜 내 삶은 이렇고 그녀의 삶은 저렇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지만, 어머니의 부탁대로 이 삶을 최대한 의미 있게 살아가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은 어머니의 부탁을 들어드렸다는 뜻이고, 만약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매우 자랑스러워하셨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원문 출처 : http://bit.ly/416FLG5
 

2026. 3. 2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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