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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시사 만사

그 장군에게 '경의'를

by 낮달2018 2025. 3. 28.

지휘관의 리더십-명예를 지키기 위한 용기와 성찰

▲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불법계엄에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지만, 그는 최소한 군인으로서의 명예와 용기를 지키고 있다.

12·3내란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수괴 윤석열은 검찰의 석방 조치로 의기양양하게 관저로 돌아갔고, 내란 100일이 지났는데도 헌법재판소는 침묵 속에 선고를 미루고 있다. 친위쿠데타로 장기 집권을 꿈꾼 윤석열이나, 그를 석방한 같은 편 검찰이나, 지금껏 탄핵 선고를 미루어 국민을 고문하고 있는 헌재나 모두 국민을 ‘졸’로 보는 점에서는 피장파장이다.

 

육사 출신의 똥별들, 불범 계엄의 하수인이 되다

 

‘설마, 그럴 리가…’ 하던 국민의 예상을 보기 좋게 깨뜨리면서 45년 만에 윤석열이 재연한 군사 내란은 언제나 ‘상상 이상’이었던 윤석열 정부의 성격을 재확인해 주었었다. 윤석열 내란의 정리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발호하기 시작한 극우의 민낯은 우리 사회가 이른 양극화의 단면을 여지없이 드러내 주기도 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된 군 장성들의 모습도 이른바 ‘자주국방’, ‘호국의 간성’ 따위의 구호와는 무관하게 지리멸렬한 ‘똥별’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았다. 죄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이들 가운데, 아무도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합치면 십수 개에 이르는 장군들은 대부분 자신의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는 변명으로 일관하는데, 그것은 자신이 주도한 내란을 수행한 장군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수괴 윤석열을 닮았다. 명예로운 군인의 용기와 태도를 보여주지 못하는 군 수뇌부를 바라보는 마음도 심란하긴 마찬가지다.

 

시민사회에서 탄원 운동을 펴게 한 전 특전사령관

 

그중 지휘관으로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부하들의 선처를 요구한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태도가 돋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그는 계엄 해제 이후 일관되게 불법 계엄 사태의 진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태도를 눈여겨 본 촛불행동과 시민들은 곽종근 탄원 운동을 벌이기도 했는데, 당시 나도 그 탄원서에 이름을 올렸다.

50여 년 전에 특전사 산하 공수특전여단에서 병역을 치른지라, 나는 그의 처지를 눈여겨보기도 했는데, 나는 그의 모습을 1979년 12·12쿠데타 당시의 특전사령관 정병주 장군을 겹쳐 보고 있었다. 나는 복무 중에 12·12 쿠데타를 겪었고, 이듬해 2월에 9공수특전여단에서 전역하여 그 쿠데타 전후를 기억하고 있다. [관련 글 : 1979년 오늘-중앙정보부장은 절대권력의 심장을 쏘았다]

 

당시에 전역을 앞둔 병사로서 나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능력이 없었지만, 이후 밝혀지기 시작한 쿠데타 전후사를 통하여 그날의 기억을 재구성할 수 있었다. 내가 근무한 9공수의 여단장은 윤흥기 준장으로, 그는 진압군 편에 섰지만, 결과적으로 군 내부의 교전 사태로 이어질까 경계한 합참의 지시로 회군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뒷날 알았다. 그 당시의 두서없는 기억을 <서울의 봄> 제작진에게 증언해 주기도 했었다. [관련 글 : 스포일러와 결말 알면서도 관객들의 분노가 추동하는 영화]

 

1979년의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진압군 편에 서서 군사 반란을 막으려다가 강제 예편당했고, 뒤에 신군부의 회유도 거절한 채 은둔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거기 비기면 곽종근 전 사령관은 실질적으로 내란의 중요 임무에 종사한 이다. 그러나 그는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한 다른 사령관과 달리 자신의 역할을 진술하고 불법 계엄 사태의 진실을 증언해 왔다.

▲ 12.12 군사반란 때 진압군으로 반란군을 막았던 특전사령관과 9공수여단장

회유를 거절한 곽 전 사령관과 그의 부인

 

최근 곽 전 사령관의 육사 동기라고 자신을 소개한 어떤 변호사가 문자와 전화로 그의 부인에게 ‘민주당의 회유에 따랐다고 진술하면 살 수 있다’며 회유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 곽 전 사령관 부인은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고. [관련 기사 : 아내의 단호한 거부에도 다 같이 살길이 있는데]

 

부인은 “계엄군으로 국회에 들어간 것은 잘못됐다.”, “잘못한 것이니 벌은 당연히 받아야 한다.”, “남편의 명령으로 들어간 부하를 위해서라도 다 책임진다고 했다.”라는 게 곽 전 사령관의 생각이고 가족의 입장임을 밝힌 것이다. 부인은 또 남편의 진술에 “민주당의 회유는 없었다.”라고 재확인했고, “남편 스스로의 결심”이고 “남편은 누구한테 회유당하고 그럴 사람도 아니”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 “나중에라도 떳떳하고 싶다.”라며, “죽어서라도 거짓말 안 하고 올바르게 했다는 거 그대로 갈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그는 그 남편의 아내로서 당당한 태도를 보인 것이다.

 

한편, 곽종근 전 사령관은 첫 재판을 앞두고 “모든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 헌정 질서를 문란한 죄를 참회하면서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고 한다.

 

그는 의견서에서 “비상계엄 작전에 참여해 되돌릴 수 없고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게 됐다. 위법 부당한 명령이라면 죽는 한이 있어도 그것을 거부해야 했지만 저는 그러지 못하고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위법 부당한 명령에 따라 부하를 사지로 몰았다”며 “국회의 기능을 저해하고 선거관리위원회, 민주당사, 여론조사꽃 등 6군데에 휘하 병력을 출동시켜서 건물 확보와 경계 임무를 이행하도록 해 국헌 문란의 죄를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부하들의 선처를 바란 지휘관

 

그는 “과오를 부인하지 않겠다. 어떤 법적인 책임도 달게 받겠다”며 “생각하면 부하들이 나라를 살렸다. 그들이 현명했다. 부하들이 소극적이라도 제 명령에 따른 것이 죄가 된다면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했다. 비록 대통령의 위법한 명령을 따라 법정에 서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부하의 선처를 요구하여, 지휘관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한 셈이다. [관련 기사 : 곽종근 대통령께 묻고 싶다, ‘의원 끌어내라지시한 적 없냐]

 

군대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조직의 리더에게는 “공은 부하들에게 책임은 스스로”라는 오래된 리더십의 원칙을 지키는 게 당연하다. 그것을 따르는 리더가 드물다 하더라도, 그걸 따르는 리더만이 아랫사람의 존경과 명예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역사가 입증하는 바다.

 

비록 양심 고백을 하고, 불법 계엄 사태의 진실을 숨김없이 증언했지만, 곽 전 사령관은 자신이 저지른 불법에 걸맞은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가 저지른 무거운 내란 혐의 앞에서 수십 년 동안 헌신해 온 공은 깃털처럼 가볍다. 그것이 헌법에 반한 내란에 종사한 무거운 책임이다. 그럼에도 그가 보여준 참회와 성찰, 그리고 명예를 지키고자 한 용기는 마땅히 존중받게 될 것이다.

 

 

2025. 3. 28.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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