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오늘 - 이규선 선생,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다

1941년 9월 15일, 서대문형무소에서 10년째 복역하고 있던 독립운동가 이규선(李奎善, 1885~1941)이 옥중 순국했다. 향년 56세. 그는 일찍이 1919년 3·1운동 때 만세 시위에 참여한 이래, 만주로 망명하여 임정의 밀명으로 군자금을 모금하다 체포되어 12년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었다.
이규선은 경기도 화성 사람이다. 집안의 내력과 성장 과정을 비롯한 정보는 전하지 않는다.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물론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도 공적 사항만이 짧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는 1919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일대에서, 홍면·왕광연·문상익·홍명선·김교창 등이 주동한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는 3월 26일 오후 5시께 송산면사무소에 모인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내걸고 독립 만세를 외쳤다. 28일 오후에는 송산면 뒷산에 모인 1천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대대적인 만세 시위를 벌였다.
3·1운동 때 일본인 순사부장 살해 후 망명 독립운동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野口廣三)가 제지하려 했으나, 시위군중은 더욱 기세를 올리며 홍면 등 수십 명이 면사무소로 달려가, 면장과 면서기에게 독립 만세를 부를 것을 강요하였다. 오후 3시께 뒤따라온 노구치가 홍면 등을 강제로 주재소로 연행하려 하여, 시위군중과 충돌하게 되었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노구치가 권총으로 홍면을 쏘아 쓰러뜨리자 격노한 시위군중은 일시에 일경에게 달려들었다. 노구치는 사태가 불리해지자 자전거를 타고 주재소 방향으로 도주하였다.이때 이규선은 왕광연·홍명선·김교창·문상익·홍남후·김명제·민용운·정군필 등 20여 명과 함께 순사부장을 뒤쫓았다.
이규선은 미처 주재소에 이르지 못한 그를 붙잡아 돌과 곤봉으로 살해하고 일제의 눈을 피하여 만주로 망명하였다.1923년부터 1928년까지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3차에 걸쳐 입국하여 군자금 모금하여 임정에 송금하였다. 1928년 8월 사리원(沙里院)에서 체포되어 10일간 구류처분을 받았다.

1931년 1월 대대적인 군자금 모금 운동을 벌이다 체포되었으며,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8년,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화성시 송산면 중송리에 그의 집터가 남아 독립기념관 국내 독립운동·국가수호 사적지로 소개되고 있을 뿐 그의 흔적은 더는 찾을 수 없다.
2018. 9.14. 낮달
참고
· 독립유공자 공훈록, 국가보훈처
· <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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