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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

[오늘] 레이철 카슨, 명저 <침묵의 봄> 출간하다

by 낮달2018 2023.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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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 ‘오늘’] 1962년 9월 27일-레이철 카슨, <침묵의 봄> 출간

▲ <침묵의 봄> 출간(1962) 후, 1963년 미 상원 소위원회에서 농약에 대해 증언하고 있는 레이철 카슨.

1962년 9월 27일, 레이철 카슨(Rachel Louise Carson, 1907~1964)은 <뉴요커(New Yorker)>에 연재했던,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파괴되는 야생 생물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글을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란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농약 제조업체와 화학회사 등의 방해가 자심했기 때문에 휴턴미플린 출판사는 보험을 추가로 든 뒤에야 이 책을 펴낼 수 있었다.

책이 나오고 나서도 관련 업계의 폄훼는 계속되었다. 전국 해충 방제협회는 카슨을 조롱하는 노래까지 만들었지만, 이는 오히려 <침묵의 봄>을 홍보하는 셈이 되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카슨은 이 책을 통하여 환경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중적 인식을 끌어내며 정부의 정책 변화와 현대적인 환경운동을 가속했다.

살충제가 불러온 <침묵의 봄>, 60만 부 베스트셀러

케네디 대통령은 1963년 환경 문제를 다룰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였고 미국 의회는 1969년 국가환경정책 법안을 통과시켰다. 암연구소는 디디티(DDT)가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증거를 발표하였고 각주들은 디디티의 사용을 금지하기 시작하였다.

▲ <침묵의 봄> 초판본과 레이철 카슨(1907~1964)

작가가 되고 싶어 했던 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이 디디티 문제에 천착하기 시작한 것은 친구인 조류학자 올가 허킨스(Olga Owens Huckins)가 보낸 한 통의 편지 때문이었다. 허킨스는 1957년 여름 매사추세츠주 정부가 북부 해안 지역에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 살포한 디디티가 바람을 타고 인근 마을로 퍼져나가며 초래한 상황에 주목했다.

살충제로 인하여 모기가 박멸되는 대신 새와 방아깨비, 벌 등과 같은 무해한 동물들이 마구 죽어 나갔다. 허킨스는 이를 항의했지만, 주 정부는 디디티는 인간에게 살포해도 무해할 정도로 아주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주장을 뭉개버렸다.

올가 허킨스의 편지가 <침묵의 봄>으로

▲ 조류학자 올가 허킨스

주 정부의 답변을 믿을 수 없었던 허킨스는 비슷한 사건을 찾아 나선 끝에 뉴욕주에서도 살충제가 살포되어 물고기, 새, 벌 등이 무수히 많이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허킨스는 1958년 1월 보스턴의 <헤럴드(Herald)> 지에 항의의 편지를 기고하면서 이 편지의 사본을 카슨에게 보내 주었다.

카슨은 허킨스의 이야기에 감동과 충격을 받았고 곧 살충제와 같은 화학물질이 어떻게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침묵의 봄>을 펴내어 과학에 기초한 기술이 초래한 환경오염의 두려운 결과를 대중에게 처음으로 강렬히 인식시켰다.

<침묵의 봄>은 백악관이 찬사를 보낸 것과 달리 일부 정부 관리들은 카슨을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는 등 극단적인 반응을 불러왔다. <뉴욕 타임스>가 머리기사로 이제 ‘침묵의 봄은 시끄러운 여름’(Silent spring is now noisy summer)이 되었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해 가을에 <침묵의 봄>은 60만 부가 팔리며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우리가 현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미래에 지구에 닥쳐올지도 모르는 무서운 ‘침묵의 봄’을 경고하고 있다. 책의 제1장 ‘내일을 위한 우화’는 자연의 조화가 절묘한 아름다운 마을이 마치 저주의 마술에 걸린 듯 점차로 생명을 잃어가다가 봄의 소리, 새들의 소리가 사라진 죽음의 공간으로 바뀌는 짤막한 우화다.

“미대륙 한가운데쯤 모든 생물체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마을이 하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병이 이 지역을 뒤덮어버리더니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악한 마술의 주문이 마을을 덮친 듯했다. 닭들이 이상한 질병에 걸렸다. 소 떼와 양 떼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다. 마을 곳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했다.

(……)낯선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 죽은 듯 고요한 봄이 온 것이다. 전에는 아침이면 울새, 검정지빠귀, 산비둘기, 어치, 굴뚝새를 비롯한 여러 가지 새들이 합창이 울려 퍼지곤 했는데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들판과 숲과 습지에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

(……)처마 밑으로 흐르는 도랑과 지붕에 이는 널 사이에는 군데군데 흰색 과립이 남아 있었다. 몇 주 전, 마치 흰 눈처럼 지붕과 잔디밭, 밭과 시냇물에 뿌려진 가루였다.

이렇듯 세상은 비탄에 잠겼다. 그러나 이 땅에 새로운 생명 탄생을 금지한 것은 사악한 마술도 아니고 악독한 적의 공격도 아니었다. 사람들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다.”

    - ‘제1장 내일을 위한 우화’ 중에서

▲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은 세계를 대표하는 100인의 석학들이 선정한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책에서 4위를 차지했다.

카슨은 가상의 마을에 찾아온 정적, 봄의 침묵이 ‘흰색 과립’으로부터 왔고, 그것은 ‘사람들 자신이 저지른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의 수많은 마을에서 활기 넘치는 봄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자 책을 쓴다고 밝히고 있다.

<침묵의 봄>은 제1장에서 제시한 우화에 이어 2장부터 17장까지 디디티(DDT)와 같은 살충제와 농약이 새, 물고기, 야생동물, 인간에게 미치는 파괴적 결과를 4년간 직접조사를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카슨은 ‘유독물질의 연쇄작용을 일으켜 죽음을 물결을 퍼뜨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묻는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꽤 오랫동안 느릅나무에 농약을 뿌렸습니다. 6년 전 우리가 이곳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새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겨울이면 제가 달아놓은 모이통에 홍관조, 치커디, 박새, 동고비들이 날아들었고 여름에는 홍관조와 치커디가 새끼들을 데리고 날아오곤 했습니다.

그러나 DDT를 살포하기 시작한 후 울새와 찌르레기의 모습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치커디는 2년 전부터 모이통을 찾아오지 않았고, 올해에는 홍관조마저 사라졌습니다. 집 근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라고는 한 쌍의 비둘기와 지빠귀 가족이 전부입니다.”

-‘제8장 새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고’의 한 가정주부의 편지 중에서

카슨은 책을 통하여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이 생물, 수질, 토양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다양한 사례를 든다. 그러나 그는 화학방제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그 한계를 지적하고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할 뿐이다.

카슨은 대안으로 수컷의 불임화, 암컷의 소리나 분비물을 이용한 유인제, 초음파, 미생물 살충제, 천적 등 자연 상태에서 착안한 생물학적 방제법을 제시한다. 그의 전제는 ‘인간이 만들었기에 인간이 없앨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 CBS 방송에서 <침묵의 봄> 관련 인터뷰를 하는 레이철 카슨 (1963)

<침묵의 봄>의 마지막 장(17장)은 ‘가지 않은 길’이다. 카슨은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나오는 두 갈래 길을 이야기하며 긴 논의를 마무리한다.

“아직 가지 않은 다른 길은 지구의 보호라는 궁극적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자 유일한 기회라 할 수 있다.”
“새롭고 창의적인 접근법은 이 세상이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생물과 공유하는 것이라는 데에서 출발한다.”

역사의 바꾼 책 <침묵의 봄>

▲ 내 서가의 <침묵의 봄> 2002년 판이다.

<침묵의 봄>은 역사를 바꾼 책 가운데 한 권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해리엇 비쳐 스토우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처럼 <침묵의 봄>은 전 세계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끈 것이다.

미국 생물학연구소가 생물학자 191명을 대상으로 한, 자신의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고전을 꼽으라는 설문조사(1999)에서 <침묵의 봄>은 <종의 기원>이나 <이중나선>(제임스 왓슨)을 제치고 2위를 차지했다.

또 이 책은 미국 랜덤하우스 출판사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논픽션 중 5위에 올랐고 세계를 대표하는 100인의 석학들이 선정한 ‘20세기를 움직인 10권의 책’에서는 4위를 차지했다.

“여성이 학문 분야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과학자로 또 사회적 대변인으로도 존경받지 못하던 당시, 카슨은 공공과학 분야에서 일하는 보기 드문 여성이었다. (<레이철 카슨 평전>의 저자 린다 리어) 그는 사회적 편견과 질시와 싸우면서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고발해 사회제도를 변혁시켰다.

박사 학위도 없고, 어떤 단체나 기관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고 연구 성과를 지지해 줄 동료도 없었지만, 그는 ‘대중을 위해 글을 쓴 과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연의 모든 구성 요소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진실을 전해주었다. (린다 리어)

레이철 카슨은 <침묵의 봄>이 출판된 지 16개월 만에 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57세. 그가 떠난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어도 그가 남긴 문제의식은 여전히 인류의 미래를 내다보는 주요한 가늠자가 되어 남아 있다.

2017. 9. 26. 낮달



*참고
· <위키백과>
· 김학순의 서재
· 임경순,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1962) 출현의 역사적 배경 및 그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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