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충북 옥천군 군북면 방아실길 255(대정리 100-10) ‘수생식물학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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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의 대청호 호숫가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지난해 봄이었다. 6월에 문청(文靑) 시절의 후배들과 만나 거기 들르려고 했는데, 일정이 무산되면서 해를 넘겼다. 봄이 다 가기 전에 가봐야 할 텐데, 조바심을 내다가 어제 아내와 함께 길을 떠났다.
벼른 끝에 1년 만에 ‘천상의 정원’을 찾다
줄곧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왔는데도 좋이 1시간 반이 넘게 걸렸다. 옥천읍에 들러 점심을 먹고, 군북면의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려 ‘천상의 정원’으로 불리는 수생식물학습원(이하 학습원)에 닿은 게 12시 반이었다. 학습원은 제한된 인원만 방문할 수 있어서 실시간 예약제로 운영되는데, 예약한 방문자들은 현장 매표소에서 요금을 결제하고 입장할 수 있었다.
학습원은 대전광역시 대덕구·동구, 충청북도 보은군·청주시 사이에 건설된 복합형 댐 대청댐으로 형성된 인공호수인 대청호 호숫가에 자리 잡았다. 대청호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숫가에 다섯 가구의 주민들이 수생식물을 재배하고 번식·보급하는 관경(觀景) 농업을 펼쳐오면서 6만여㎡에 이르는 ‘천상의 정원’이 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학습원은 2009년 6월 충북 교육청에서 지정한 과학 체험학습장인 ‘수생식물학습원’으로 개원한 이래 지금까지 체험학습 등으로 수십만의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즐겨 찾으면서 옥천군의 명소가 되었다. 과학 체험학습장으로 개관한 천상의 정원은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각종 수생식물과 열대지방의 수생식물을 대표하는 파피루스 등이 재배, 전시되고 있다.
변성퇴적암과 대청호 호수에 둘러싸여 지천으로 피어나는 야생화와 수생식물이 어우러지는 천상의 정원은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정원’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충북 민간 정원으로 등록된 천상의 정원은 코로나19 시절인 2022년에 한국관광공사에서 비대면 관광지로 지정하여 전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대청호 호변에 이어지는 천상의 정원 둘레길
천상의 정원 둘레길은 ‘좁은 문’으로 들면서 시작된다. 매표소를 지나 정원에 오르면 나무로 만든 문간이 나타난다. 좁은 문은 그 아래에 달린 쪽문이다. 사람들은 허리를 잔뜩 숙여야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 그것은 이 아름다운 정원을 구성하는 ‘자연 앞에 겸허해지라’라는 주문처럼 읽힌다.
좁은 길을 지나 거대한 변성퇴적암이 이어진 ‘바위정원’을 거쳐 매실과 감나무밭 위의 ‘천상의 바람길’을 지나면 대청호 호안(湖岸)의 절벽을 따라 나무와 철제 계단 등으로 만든 둘레길이 시작되었다. 둘레길을 돌면서 사람들은 눈 아래 펼쳐지는, 국내에서 3번째 규모의 호수인 대청호의 새파란 물빛을 원 없이 바라볼 수 있다.
가파른 나무와 철제 계단을 아슬아슬하게 오르면서 거치는 ‘꽃산아래벼랑’을 거쳐 거대한 바위 위에 자란 수령 120년짜리 암송(巖松)을 지나면, 갖가지 풀꽃이 피어난 꽃밭 가운데, 유럽의 고성을 떠올리게 하는 검은 벽돌의 서양식 건물인 ‘호수 위의 찻집’이 나타난다. 빵과 커피를 사든 사람들은 호수를 내려다보는 정자 ‘망월정’과 데크 발코니에 여기저기 놓은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각종 풍경과 시설물 주변에는 탁자와 그네 형식의 의자, 아름다운 벤치, 그리고 등의자 따위가 넉넉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사람들은 쫓기듯 둘레길을 돌아보는 게 아니라,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단란한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둘레길 곳곳에 세워진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낯설지만, 마음에 감겨오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천상의 정원이 “정서적, 심리적 내적 치유와 회복의 공간”(누리집)이라는 걸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전망대다. ‘달과 별의 집’이라는 이 서양식 주택의 첨탑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고개만 돌리면 대청호의 군청색 물빛이 한눈에 들어왔으므로 우리는 굳이 거기에 오를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유럽의 고성을 연상케 하는 검은 벽돌의 서양식 저택
학습원 안에는 유럽의 고성을 연상시키는 서양식 저택이 모두 다섯 채다. 천상의 정원이 ‘이국적 감성’의 여행지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모두 이 건물들 덕분이다. 학습원에서는 정원이 ‘중세의 수도원’ 같은 장소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 건물이 튀지 않고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우러지도록 ‘검은 벽돌’을 선택했다고 한다. 외벽의 빛깔을 변성퇴적암의 검은 바위와 같은 색으로 맞춘 것은 집에 자연 속에 묻히도록 한 것이라는 얘기다.
달과 별의 집을 지나 바닷가 절벽의 데크 길을 따라가면, ‘가장 작은 교회’에 이른다. 이 교회는 이름대로 크기가 1.5평(4.95㎡)에 불과해 어른 6명 정도가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예배당이다. 의자 2개와 성경이 놓인 강단이 있고 헌금함이 놓여 있는 이 교회는 수생식물학습원 설립자 주석택 원장이 지은 간이 예배당이다.
출입구 위쪽에는 영자로 ‘hiding place(은신처)’라 적힌 금속 명패가 박혀 있었다. 독실한 기독인이라면, 거기서 침잠해 기도를 올릴 수 있겠다 싶었다. 교회 옆 데크 공간에도 의자가 여럿 놓였고, 사람들이 편하게 쉬면서 호수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바로 온실 정원으로 내려가는 대신 위쪽으로 오르는 철제 계단을 올라 ‘호수를 품은 숲속 길’을 선택했다. 신록과 녹음이 짙은 숲길을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안전을 위한 계단, 이정표, 군데군데 심어진 꽃을 빼면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은 참나뭇과 수목이 울창한 숲길이 정말 좋았다.
호수와 숲, 꽃과 나무로 이루어진 ‘천상의 정원’ ,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작약이 흐드러지게 핀 능선의 꽃밭을 지나쳐 멀리 대청호의 푸른 물빛을 바라보면서 산에서 내려왔다. 분재원에는 소나무, 모과나무 등 500여 그루의 분재가 전시돼 있고, 4개의 온실로 이루어진 실내 정원에서는 수련, 연꽃, 부레 옥잠화, 물양귀비, 파피루스 등 다양한 수생식물을 감상할 수 있었다.
호수 위의 집과 아버지의 집을 거쳐 출구로 나오면서 2시간 남짓한 천상의 정원 답사가 마무리됐다. 푸른 하늘과 푸른 물, 푸른 숲이 어우러진 ‘천상의 정원’은 마치 세상과 등진 비경처럼 여겨진다. 차 두 대가 간신히 교행할 수 있는 좁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돌아 천상의 정원을 떠나면서 나는 늦가을 단풍철에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지 어떨지를 가늠해 보고 있었다.
2024. 5.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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