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기] 김천 촛불 2095일…시민들, 860번째 촛불을 들다
퇴직 동료들의 단체대화방에 ‘김천 촛불’ 재개를 알리는 포스터가 뜬 것은 5월 첫 주의 토요일이었다. 아, 드디어 김천 촛불이 다시 켜지는구나 싶었지만, 다른 일로 바빠서 나는 그걸 잊어버렸다. 둘째 주 중반에 다시 대화방에 들어간 것은 포스터 아래에 적힌, ‘외로운 길에 응원 부탁합니다’라는 쪽지가 밟혀서였다.
김천 촛불 2095일…860번째 촛불을 켜다
촛불집회를 알린 이는 1992년 경북 북부의 시골 중학교로 같이 복직한 동료 구 선생이었다. 그는 2106년 첫 촛불집회부터 지금까지 시민대책위를 지키고 있는 진국의 활동가다. 그는 지치지 않고 대화방에다 촛불집회를 알리곤 했지만, 반향은 미미했다. 그게 미안해서 나는 서둘러 대화방을 떠나곤 했었다.
그의 초청에 다른 동료들도 마땅한 대꾸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드(THAAD :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기지는 이미 들어서 버렸고, 한때 온 나라를 달구었던 이 의제는 이미 사람들에게서 잊히고 있다. 우리 고장이 아니라도 사드가 들어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손을 잡아 주던 이들과의 연대도 느슨해졌다.
햇수로 6년, 사람들은 사드를 잊었거나 잊고 싶어서 잊은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김천시민들은 촛불집회를 이어 왔다. 매일 열던 집회가 주 2회로 바뀐 것이 유일한 변화였다. 2016년 8월 20일 시작한 촛불집회는 같은 해 11월 29일에 100회를 맞았고, 이듬해인 2017년에는 각각 200(3.8.), 300(6.17.), 400회(9.24.)를 기록했다.
2017년 11월에는 촛불 1년을 넘기면서 지난 365일을 돌아본 기록집 <힘내라 촛불아>를 냈고(관련 기사 : “촛불 내리는 순간 김천은 전쟁 도화선 된다”), 500(1.2.), 600(4.12.), 700(9.9.)회기 치러진 2018년에는 햇수로 두 돌을 맞았다.(관련 기사 : ‘사드 반대’ 다 끝난 거 아니냐고요? 김천은 아직 ‘촛불’입니다)
800회(8.25.)를 치른 2019년에는 ‘사드 철회 기지 공사 중단 제10차 범국민 평화 행동’이 김천에서 치러지기도 했다.(관련 기사 : 특이한 ‘반사드’ 집회…그들이 왜 저러는 걸까) 2020년, 사드 기지에 공사가 진행되어도 촛불집회는 이어졌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이 덮쳤다.
집합이 금지되자 시민대책위에서는 집회를 고민했지만, 만에 하나 잘못되면 돌아올 비난은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결국 김천은 물론, 성주 소성리 수요연대집회와 토요문화제도 중단해야 했다. 2020년 2월 19일, 김천 촛불 849회, 소성리 165회 수요연대집회를 마치고서였다.
사드 체제는 굳어지고…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막힌 촛불
2020년 5월 29일 새벽 5시 30분께 소성리에서는 주민과 연대자들의 밤샘 저항에도 불구하고 전자데이터 장비 수집 기기 EEU(Electronic Equipment Unit)가 반입되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를 ‘장병 숙소 환경개선 작업을 위한 장비와 물자 등을 차량으로 옮기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발표했었다.
6월 22일 새벽에는 경찰들이 기습, 주민들을 집안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막아선 뒤 장비를 내갔다. 5월 29일에 반입한 전자장비, 구형 EEU의 저장정보를 신형 EEU에 옮긴 뒤 해당 장비를 실어 낸 것이었다. 시민들의 ‘사드 철거’ 요구에 응답하기는커녕 사드 체제는 점점 굳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2020년 7월 5일 850회 촛불집회가 다시 열려, 일주일에 한 번씩으로 줄인 집회가 8월 16일 856회까지 이어졌지만, 다시 중단됐다. 11월 1일 김천 촛불 857회가, 11월 11일에는 166회 소성리 수요연대집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 역시, 김천은 11월 15일 859회, 수요연대집회는 18일 167회 집회 이후 다시 중단되었다.
그동안에도 소성리 사드 기지 육로병참선 확보와 사드 정식 배치를 위한 공사는 꾸준히 진행되었고 주민들 저항도 이어졌다. 2021년 5월 14일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들어오던 경찰이 매주 2회 진입하여 공사 차량을 들여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2월 22일부터는 주 3회씩 아침 작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요구대로 소성리 사드 기지는 ‘기지 안정화’ 절차를 꾸준히 이행 중인 것이다.
김천 촛불은 2021년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다. 팬데믹 상황은 사람들의 일상을 깨뜨린 데 그치지 않고, 생존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시간표마저 지워버렸다. 그러나 김천시민들은 2020년 11월 15일 이후, 545일 만에 오늘 860회 촛불을 다시 켜기로 한 것이다.
공동위원장,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야지요, 5년 금방 가요”
나는 구 선생에게 김천시민대책위의 공동위원장 중 한 분에게 내 질문의 답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박태정 공동위원장의 답변을 녹취하여 사투리와 입말 그대로 내게 보내주었다. 이를 뜻을 살려서 정리했다.
- 1년 넘게 쉬다가 새로 촛불집회를 여는 기분이 어떠신지요? 걱정도 되시지요?
“기쁘지요. 코로나 때문에 너무 오래 쉬었네요. 사람들이 얼마나 나올지가 좀 걱정됩니다. 아직 코로나 때문에 거부감이 좀 있으니까요.”
- 1년 사이에 사드 추가 배치를 공약한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는 등 정세가 변했습니다. 사드 추가 배치는 일단 국정 목표에서는 빠졌습니다만.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추가 배치한다길래 믿기지 않았는데요, 빠졌으니까 다행이긴 한데……, 걱정이 되긴 하지만, 어떡하겠어요. (계속 싸워야 하는 거지요)”
-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지금 많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 동력이 떨어져 나간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일단 집회를 계속해봐도 소용이 없고, 바뀌는 게 없으니까요. 집회를 하고 시민들이 나서서 반대하면은 뭔가 이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점점 (사드가) 굳어져 가니까 아무래도 그런 희망이 없다고 할까 그래서 그렇지 싶습니다.”
- 그러면 다시 힘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거기에 대한 다른 계획이 있으신지요?
“복안이야 뭐(있겠습니까). 우리가 이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야지요. 사람이 많고 적은 걸 떠나서 해야 하는 거지. 또 그렇게 하다 보면 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거니까요)…….”
- 혹시 우리 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게 있으시다면은?
“정말로 세계가 자꾸 변하고 있으니 그에 따라서 우리 국민들 마음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봤듯이 오히려 4~50년 전으로 돌아간 게 아닌가 싶고, 국민 개개인이 이기적인 생각이 지나친 게 아닌가 싶고……그게 상당히 걱정이죠.”
- 촛불집회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얻은 게 있다면
“많죠. 세상모르고 있다가 알게 된 게 너무 많았고, 우리가 또 국가 정책이 잘못될 적에는 그냥 뒷짐 지고 하는 대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서 절실히 느꼈지요.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는 마음을 굳게 가지고 있습니다.”
지치지 않는 사람들의 낙관적인 집회
집회가 예전처럼 활기차게 진행되리라는 걸 나는 별로 의심하지는 않았다. 여러 차례 집회에 참석했지만, 김천의 촛불은 여느 대도시의 집회보다 더 충실했다. 참석자가 많지 않아도 대오는 흐트러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낙관적으로 집회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천역 광장은 무대가 새로 만들어지고 뒤쪽에 벤치와 휴식 공간이 몇 군데 들어선 까닭에 공간이 많이 좁아졌다. 참가 인원이 100명이 채 못 되어도 집회는 늘 그렇듯 소담스럽게 진행되었다. 주최 측에서 떡과 소성리에서 가져온 참외를 돌렸다.
집회에 앞서 만난 박태정 위원장(농업·73)은 온화한 인상이었다. 그는 사드 기지와 바투 붙은 김천시 농소면 노곡리에서 과수 농사를 짓는 노곡리 이장이다. 100여 명이 사는 노곡리는 지난 2년 동안 9명이 암에 걸려서 그중 절반이 돌아가시고 나머지 분들은 투병 중인 곳이다.
그는 김천 촛불이 처음 켜질 때부터 집회를 지켜왔고, 부위원장을 거쳐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웃 마을 소성리에 들어선 사드 기지가 평생 흙을 파면서 성실하게 살아온 농민을 투쟁의 현장에 불러낸 것이다. 6년 동안 마땅한 성과도 없이 싸워온 기약 없는 싸움인데도 그를 비롯한 참가자들에겐 초조함이나,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좀 안타까워서 “촛불은 언제까지 켜야 합니까, 새 정부는 또 다른데……,” 하고 물었더니 박 위원장은 싱긋 웃더니 “뭐, 괜찮아요, 계속하면 되지요. 5년 금방 가요. 그 전에 결판이 날 깁니다.”하고 쾌활하게 웃었다. 이제 곧 농번긴데요 했더니 글쎄, 말이오. 큰일 났어요, 하고 그는 다시 웃었다.
아무 소용에 닿지도 않는 사드 기지를 결정하고 이를 성주 땅에 들인 것은 정부다. 그리고 응답 없는 정부에 우리의 삶의 터전에서 사드를 철거하라는 농민들의 함성이 6년째 이어지고 있다. 더는 뉴스 가치도 없는가, 집회장에는 언론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집회는 1시간 넘게 이어져 결의문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결의문에서 시민들은 “사드 배치 이후 청정지역인 노곡리 주민 10%가 암에 걸려 사망에 이르고, 투병 중인 현실”을 들면서 “발병 원인을 밝혀달라는 요구조차 외면하는 정부와 김천시 당국을 강력히 규탄”했다. 모두가 함께 외친 마지막 구호가 오래 귓전에 선명한 여운으로 남았다.
“우리가 옳다! 불법 사드 철거하라!”
“우리가 평화다! 김천의 평화, 한반도 평화 실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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