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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를 “한글과 한자로 표현되는 한국어”로 바꾸자고?

by 낮달2018 2021.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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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전용시대의 넋나간 선량들

▲ 국어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의 철회를 요구하는 한글 관련 단체들의 <한겨레>10면 광고 (2011. 7. 19.)
▲  국회에 제출된  ‘ 국어기본법 일부 개정법률안 ’ 의 주요내용  ⓒ  국회 누리집

오늘자 <한겨레> 10면에 ‘이 시대, 이런 국회의원들이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가 실렸다. 한글학회, 한글문화원,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한글문화연대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한글 관련 단체가 모여서 낸 광고다.

 

광고는 지난 6월 20일 이강래 의원 등 국회의원 22명이 발의한 ‘국어기본법’ 개정안을 규탄하면서 이의 조속한 철회를 호소하는 내용이다. 광고에도 나와 있듯 이 개정안의 골자는 ‘멀쩡한 국어기본법’을 손보는 내용이다. 국회 누리집의 ‘최근 접수 법률안’에 올라 있는 ‘의안 원문’을 받아 보면 기가 막힌다.

 

‘한자 교육 기본법’을 위한 ‘국어기본법’ 개정

 

이 개정안이 발의 배경은 지난 6월 7일 김세연(한나라당), 김성곤(민주당), 조순형(자유선진당) 의원들이 이른바 ‘한자 교육 기본법안’을 발의하기 위해 국회에서 연 공청회에서 비롯한다. 이들은 ‘광복 이후 지금 세대들은 한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우리말을 바르게 읽고 쓸 능력이 부족함을 크게 개탄’한다.

 

그래서 ‘초·중등학교에서 한자 교육을 필수과목으로 하고 그것을 뒷받침할 ’한자교육개발원‘을 설립하여 한자 및 한자어 개발 단체와 한자 및 한자어 관련 행사의 개최를 지원하고 한자와 한자어 교육에 소요되는 경비를 지원하는 것을 내세운 법안이 ‘한자 교육 기본법안’이다.

 

그런데 이 법안의 내용이 국어기본법에 어긋나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국회의원 22명이 공동으로 ‘국어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접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의안에 제시된 이 법률 개정안의 제안이유와 주요 내용이 ‘어이없다’.

 

글쎄, 법률제정이 이 잘난 선량들의 고유권한이고 주요 업무라는 걸 부정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자신이 늘 강조하는 것처럼 헌법기관으로서 전체 국민의 이해를 염두에 두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이처럼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자는’ 것이어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법률 개정안은 ‘제안이유’에서 “우리말 어휘의 70% 이상이 한자어로 되어 있고, 이 한자 어휘의 90% 이상이 동음이의어로 되어 있어 한자로 쓰지 않으면 도저히 의미를 구별할 수 없”다 주장한다. 그러나 한자어의 비중이 70%라는 건 그리 믿을 만한 통계는 아니다.

 

‘한자로 쓰지 않으면 도저히 의미를 구별할 수 없다’고?

 

국어사전을 이용해 본 사람은 안다. 거기 오른 낱말 가운데 정작 우리 언어생활과는 무관한 낱말들, 특히 한자어가 얼마나 ‘대책 없이’ 실려 있는지를 말이다. ‘아버지’를 뜻하는 한자어는 ‘부친·부주·부군·아부·엄친·엄군·가부·가엄·가친·엄친·가군·가대인·가존·가부장·춘부장·춘부대인·춘장·존공·존대인·존부’등 무려 60여 가지에 이른다.

 

<한컴사전>에서 ‘편지’의 유의어를 찾으면 한자어만 모두 63개가 뜬다. 그 가운데 실제 우리 일상생활에서 통용되는 낱말은 몇 개 되지 않는다. ‘설마’ 싶어서 찾아보니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이들 낱말이 대부분 표제어로 올라 있으니 70%의 내용은 미루어 짐작할 만한 것이다.

▲ ‘편지’의 유의어들. 사전엔, 쓰이지 않는 죽은 한자어투성이다.

그러나 설사 우리말 어휘의 70%가 한자어라고 해도 그것의 90%가 동음이의어라고 해도 그게 ‘한자로 쓰지 않으면 도저히 의미를 구별할 수 없’는 이유가 되는 건 아니다. 그것은 해방 이후 줄곧 한글 전용 정책을 펴 온 북한이나 1988년 <한겨레>의 창간 이래 한글만 써 온 신문들의 존재와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자는 우리나라 현실 문자 생활에 있어서 엄연히 한글과 더불어 병용되고 있는 국자(國字)인데, 의무교육과정에서 한자를 교육하지 않는다는 것은 큰 모순”이라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일찍이 세종 임금은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다르다’고 하면서 백성을 위해 ‘새로 스물여덟 자’의 ‘국자’를 만들었으니 이들이 ‘한자를 국자’라고 하는 것은 사실의 왜곡일 뿐이다.

 

한자가 ‘국자’라고?

 

지금 대부분의 중등학교에서 학생들은 선택 교과로 한문을 배우고 있지만, 이들에게 한자는 영어나 일어와 같은 외국어일 뿐이다. 우리 세대에겐 한자를 아는 게 어휘력에 보탬이 되지만 그걸 외국어로 인식하는 학생들에게 한자는 ‘가외의 학습 부담’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국어기본법(이하 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도 억지투성이다. 법 제3조 제1호(정의) “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로서 한국어를 말한다.”를 개정안에서는 “국어란 대한민국의 공용어로서 한글과 한자로 표기되는 한국어를 말한다.”로 바꾸자고 한다. 국어의 개념을 정의하는데 난데없이 문자를 들먹이는 까닭이야 뻔하다. 그래야 한자를 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 작성 시 한글로 작성하되 한글의 오른쪽 괄호 안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한 한자를 병기하여 작성하도록 한다.”(안 제14조 제1항)는 것도 어이없기는 매일반이다. 억지로 한자를 쓰게 하려고 모든 한자어를 괄호 안에 써넣도록 법률로 정하자는 것이다.

 

“교과용 도서를 편찬하거나 검정 또는 인정하는 경우에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한 교육용 기초한자를 한글의 오른쪽 괄호 안에 병기하도록 한다.”(안 제18조)고 해서 아예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도 한자를 넣어 만들자고 한다. 한자를 쓰게 하기 짜낼 수 있는 지혜는 모두 짜낸 듯하다.

 

한글은 우리 국민을 한자의 속박에서 해방한 위대한 문자다. 문자의 기계화·정보화에 가장 알맞은 이 과학적 문자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원동력이었음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대적 흐름을 거스르며 우리의 문자 생활에 가외의 한자를 덧붙이려는 이 잘난 선량들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한자를 국자로 쓰는 중국에서조차 간체자(간자)를 쓰는 실용의 시대다. 쓰고 읽는데 두 배의 노력이 필요한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이 국민 주권 수임자들의 면면을 다시 들여다본다. 의안의 내용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이름을 올린 실수였을까. 굳이 이들의 이름을 다시 드러내는 것은 광고에서처럼 법안의 철회를 바라면서 동시에 또 한편으로 국민의 문자생 활을 퇴행으로 끌고 갈 위험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확인하자는 뜻이다.

▲ 국어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 이들의 이름을 기억해 두자.

 

2011. 7. 19.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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