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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문학 수업, 김 선생의 ‘교과 나들이’

by 낮달2018 2021.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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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명희 문학기행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

전문가 아닌 여느 사람이 명승이나 유적지를 ‘구경’하러 다니는 일도 ‘답사(踏査)’가 된 것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이후의 일이다. 이 눈 밝은 미술사학자가 온 나라를 더듬으며 조곤조곤 들려준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법’은 이른바 모든 ‘답사’의 ‘전범’이 되었고, 그가 간 길을 따르는 여느 사람의 발길도 덩달아 ‘답사’가 된 것이다.

 

역사 유적과 같은 문화유산은 아니지만, 문학작품을 낳은 땅과 문인을 찾아 떠나는 ‘문학기행’ 역시 1980년대에 시작된 새로운 모습의 ‘답사’ 여행이라 할 만하다. 문학이 세상과 삶을 담는 그릇이라면 그것을 낳은 땅과 고을을 찾아 그 속살을 더듬는 일도 문학작품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길 가운데 하나가 되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1980년대 초중반에 한 신문사에서 각각 펴낸 세계, 국내 문학기행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시골 국어 교사가 있었다. 그이는 문학작품을 낳거나 배경이 되었던 지역을 돌아보며 문학을 더 온전하게 이해하고자 했고, 그렇게 얻은 과실을 아이들과 나누었다. 여느 사람에게는 단순한 ‘문학기행’에 그쳤을 이 답사가 ‘교과 나들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연유다.

 

시골 국어 교사의 ‘교과 나들이’

 

아이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한 열정, “문학을 통하여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끝내는 사람과 삶을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책 ‘들머리’)에서 비롯한 이 ‘교과 나들이’가 372쪽의 두툼한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김명희 문학 기행’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나라말 펴냄)는 결국 한 국어 교사가 30여 년 동안 진행해 온 문학 기행의 기록인 셈이다.

 

책에서 다룬 문인은 권정생에서부터 황순원까지 모두 스물둘이다. 신경림 시인의 <시인을 찾아서>와 달리 이 책은 시인과 소설가를 망라했다. 국어과 수업을 위한 나들이었으니 당연히 교과서에 실린 근대 이후의 작가와 작품, 그리고 작품의 무대나 현장이 남아 있는 작품을 우선적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지은이는 남성 작가들에 치우쳤던 기왕의 문학기행과 달리 의식적으로 여성 작가들 8명을 포함했다. 고정희(‘고통으로 가는 여전사’)를 비롯하여 김중미(‘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지킴이’), 박경리(‘모든 숨 탄 것들을 사랑한 대지의 딸’), 박완서(‘그 시대를 증언하다’), 오정희(‘불온한 젊은 날의 자화상’), 윤정모(‘시대의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 선 르포작가’), 이해인(‘사랑과 위로의 언어’), 최명희(‘살아 있는 모국어의 바다’)가 그들이다.

▲ 최참판댁에서 내다본 평사리 들판(책 96쪽) ⓒ 김명희

꽤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 김중미가 실린 게 뜻밖이듯 늘 그 문학적 성취가 평가절하되고 있는 윤정모도 뜻밖이다. 고정희와 비겨지는 이해인도 뜻밖이라면 뜻밖이다. 남성 작가도 예외는 아니다. 윤동주와 이육사, 심훈이 실려 있으면서 한편으론 김영랑과 유치환, 그리고 이효석도 이 기행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이나 성향에서 여러 가지로 비겨지는 작가들이 같은 지면에 나란히 실려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이 기행의 성격으로 설명될 수 있을 듯하다. 이 기행은 효과적인 문학 수업을 목표로 하고 있었고 지은이는 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인간과 삶, 그리고 문학의 ‘다양성’을 이해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여전사’로 불린 고정희(1948~1991) 시인의 치열한 삶과 시를 응시하고 있는 지은이의 의도는 명확하다. 그는 여성운동가로 실천적 페미니스트로 살다 간 고정희의 삶을 더듬는다. 그리고 시인이 절절하게 노래한 사랑의 대상 ‘너’를 한용운이 노래한 ‘님’과 비기면서 고정희에게는 “민족과 민중, 여성이 곧 ‘님’이요 ‘너’가 아니었겠는가”라고 되묻는 것이다.

 

여성 문인들에게 오래 머문 ‘눈길’

 

고정희에게 머물렀던 지은이의 눈길은 곧 윤정모로 이어진다. 지은이는 윤정모(1946~ )를 ‘불편해서 아름다운 작가’로 부른다. 작가는 불행했던 자신의 개인사를 날것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면서도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안목을 높이 평가한다. 지은이는 작가의 문학을 “어떤 분칠도 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환부를 날카롭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곧 ‘르포문학’”이라고 말한다.

 

윤정모의 작품 가운데 지은이는 ‘일본군 위안부’를 다룬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에 주목한다. 이 기행은 작품의 무대 중 하나이자, 지은이가 사는 ‘안동’의 문학 현장을 거쳐 위안부 할머니들이 사는 경기도 광주의 ‘나눔의 집’으로 이어진다.

 

나눔의 집에 문을 연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꼼꼼하게 답사한 지은이의 시선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파괴된 삶을 고발한다. 그리고 무려 20년 동안 진행되어 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의 현재적 의미를 다시금 확인한다.

 

근대 이후의, 작고한 작가들의 삶과 문학을 찾아가는 걸음이야 여느 방문자와 그리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반세기를 넘으며 이들 문인의 삶과 문학은 어느새 박물화 되고 있다. 그러나 생존 작가나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의 자취를 더듬는 지은이의 발걸음은 예사롭지 않다.

 

박완서(1931~2011) 편인 ‘서대문구 현저동’이 그렇다. <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목> 등 작가의 대표작에 드러난 문학적 배경으로서 현저동을 바라보며 지은이는 그 문학적 의미를 새롭게 새겨주는 것이다. 기호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박완서 문학을 바라보는 지은이의 폭넓은 안목은 문학 교사로서의 자신의 얕은 이해를 부끄럽게 만든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1947~1998) 편인 ‘살아 숨 쉬는 모국어의 바다’는 17년 동안 대하소설 한 편을 위해 바친 소설가의 치열한 작가 정신을 펼쳐 보여준다. ‘마음에 드는 말과 문장을 고르는 데에 들인 작가의 노력은 거의 구도자적인 자세에 가깝다’며 ‘국어사전을 시집처럼 읽었다’는 작가의 참모습을 떠올리는 건 그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어렵지 않을 정도다.

 

<혼불>을 읽은 적이 없는, 알량한 배경지식으로만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처지에서는 지은이의 발길을 무심히 따르는 것도 외람되다고 여길 만하다. 문학적 성취를 떠나서 한 작가가 혼신의 힘으로 구축한 거대하고 정교한 서사의 세계를 ‘곁눈질’로 ‘도둑질’하고 있다는 느낌은 그리 편치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쯤 나는 작정하고 <혼불> 읽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 너븐숭이 마을의 현기영 '순이삼촌 문학비'(책 346쪽) ⓒ 김명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일’이 끝나지 않았듯이 작가 현기영(1941~ )이 증언하는 제주의 4·3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유채꽃 뒤에 숨겨진 제주의 비극’ 4·3을 세상에 처음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순이 삼촌>의 무대인 ‘너븐숭이 마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 기행은 관념으로 인식되는 ‘문학적 소명’이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늠케 해준다.

 

‘북촌리’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사건을 소재로 문학적 고발과 증언을 수행하고 있는 작가에게는 ‘시대의 아픔이 성장의 자양분’이었단다. 유년기에 목격한 참혹한 학살에 대한 기억 때문에 중학생 때 실어증을 앓아야 했던 작가에게 있어서 ‘소설 쓰기’는 한낱 창작에 그치지 않았다.

 

독자가 ‘재구성’할 현대문학사

 

372쪽, 스물두 명의 문인이 교직해 낸 문학작품과 그것을 낳은 땅과 삶을 찾아가는 이 기행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이유다. 문학은 때로 개인의 내밀한 서정의 고백이면서 한편으로 역사와 그 도전에 대한 예술적 응전의 일부이기도 한 것이다.

 

안동 조탑마을에서 제주 너븐숭이 마을까지, 전남 강진 영랑생가에서 북간도 용정마을까지, 해남 송정마을에서 백담사 만해마을에 이르는 이 30여 년의 여정은 한 국어 교사가 서술한 일상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이 땅의 고단하고 때로 구슬픈 근현대사다. 그 발길의 골골샅샅에 밴 갖가지 상념과 느낌을 통해 독자가 새삼 재구성하는 것은 이 나라 현대문학사일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가는 곳곳마다 아이들에게 엽서를 보냈다’고 했다.

 

“이를테면 언젠가 ‘중국의 만리장성을 보고 싶다’고 글을 썼던 아이에게는 만리장성을 담은 그림엽서를 보내 그 꿈을 독려했고, 봉평 이효석의 메밀꽃 앞에서도, 춘천의 김유정역, 해남의 고정희 서재, 원촌의 이육사 시비, 강진의 김영랑 생가에 필 모란꽃, <토지>의 무대 평사리, 유치환의 통영 바다와 영양의 조지훈 시공원 앞에서도 엽서 릴레이는 계속되었다.

 

젊은 시절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까워 떨리는 손길로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숨죽여 읽었던 책, <사이공의 흰옷>에 나오는 남녀 주인공을 베트남 여행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는 역시 그들의 해방 투쟁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던 옛 제자와 감동을 나누고 싶어 저자 서명을 받아 엽서로 보내기도 했다. 문학기행의 과정 자체가 살아 있는 문학 수업이자 소통의 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 책 ‘들머리’ 중에서

 

30여 년 동안 이어졌던 이 예사롭지 않은 발길은 지은이 말대로 ‘존재비’(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드는 모든 지출, 여행을 포함하여 모든 만남에 들어간 비용)의 최댓값이다. 산 사람과의 교유만이 아니라 이미 유명을 달리한 문인과의 그것도 존재비일 터이기 때문이다.

 

국어 교사 김명희의 ‘교과 나들이’는 ‘즐거운 문학 수업’을 위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나들이의 결과는 ‘교사와 학생과 문학작품이 소통하는 수업방식’을 통해 ‘성공적인 수업’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은 이 책이 다른 여느 ‘문학기행’들과 두드러지지는 않되 분명히 갈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책 끝에 부록으로 실린 전국의 문학관과 문학촌, 문학의 집 위치와 주소, 지도는 문학의 현장을 찾아가고 싶은 독자들의 수고를 덜어주는 덤이다. 장마가 잦아지면 어디 가까운 문학관이라도 찾아볼 일이다. 길을 떠나기 전에 미리 ‘사전 공부’를 제대로 하고 가는 건 절대 잊지 마실 것. 혹시 누군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지은이처럼 엽서 한 장이라도 쓸 수 있다면 그 뜻깊은 기행의 ‘화룡점정’이 될 수 있으리라.

 

 

2012. 7. 10. 낮달

 

 

아이들 때문에 30여 년 동안 떠돈 교사

[서평] 김명희 문학기행 <낯선 익숙함을 찾아서>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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