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기념사업’ 뒷설거지는 민선 7기 시장·도지사의 몫
남북정상회담에 이어지는 북미회담이 모든 정치적 의제를 집어삼켰다곤 하지만, 일주일도 남지 않은 지방선거는 시나브로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예상을 뒤집는 대구 경북에서의 정당별 지지도 추이에 유권자들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실감한다.
그러나 6월 13일 투표는 예정대로 시행될 것이고 다음날이 밝기 전에 당락도 판가름 날 것이다. 어느 당의 누가 당선하든 7월 1일부터 이들의 임기가 시작되면서 지방자치의 상당 부분은 이들의 손에서 결정되고 집행될 것이다.
파행의 박정희 기념사업, 뒷 설거지는 신임 단체장의 몫
새삼스레 지방선거 이후를 원론적으로 짚어보는 것은 새로 지방행정을 맡게 되는 이들에 의해서 전임자들이 남긴 사업이 어떻게든 마무리되고 정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전임자가 남긴 알토란 같은 결과를 누리고 또 어떤 이는 전임자가 남긴 골칫덩어리 유산을 꼼짝없이 상속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오후 늦게 구미참여연대 황대철 집행위원장과 함께 구미시 상모동의 이른바 ‘박정희 타운’을 찾은 것은 선거 이후 이 골칫덩어리 사업이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서였다. 지난 2년여 동안 구미참여연대(아래 참여연대)는 구미시에서 벌이는 ‘박정희 사업’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였다.
박정희 탄생 100주년을 전후하여 경상북도와 구미시에서 벌인 ‘박정희 기념사업’은 예산만도 1천억 원이 넘는 대형 사업이었다. 참여연대는 국비와 도비의 지원을 받긴 했지만, 구미시에서도 엄청난 예산을 들인 이 사업을 구미시장의 정치적 이해를 위한 이른바 ‘박정희 마케팅’으로 규정한 바 있었다.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에 이어 전직 대통령의 유품을 전시할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을 건립하겠다는 구미시의 계획은 이 박정희 마케팅의 절정이었다. 구미시는 시민들의 행복과 민생을 위한 투자를 외면한 채 ‘죽은 자를 제사 지내기 위해’ 1천억 이상의 세금을 쏟아부음으로써 ‘박정희 대통령 연구의 중심도시’, ‘새마을 종주(宗主) 도시’를 표방하려 한 것이었다.
참여연대는 구미의 다른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이 사업의 백지화를 요구하는 시위와 서명운동 등을 펼쳐 왔다. 그것은 이 사업이 시민들의 삶과 무관한 시장 개인의 정치적 이해를 도모한 사업일 뿐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관련 기사 : 박정희 재떨이 모시는 200억짜리 자료관이라니… )
박정희 기념사업을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키워온 책임의 한복판에 남유진 시장이 있다. 지방선거 4회(2006)부터 6회(2014)까지 구미시장을 3회 연임한 남 시장은 올 1월 25일, 7회 지방선거에 도지사로 출마하고자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남 시장의 박정희 기념사업에 힘을 보탠 이로는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있다. 1회(1995), 2회(1998), 3회(2002) 지방선거를 통해 구미시장을 3회 연임한 김 시장은 이후 4~6회 지방선거로 경북도지사로 뽑혀 3선을 채우고 올 6월 30일 퇴임한다.
이명박(2008~2012)·박근혜 전 대통령(2013~2017) 재임 시기에 각각 구미시장과 경북도지사로 재직한 이들은 박정희 기념사업의 주요한 결정 당사자였다. 그리고 이 기념사업에 대한 적지 않은 국비 지원이 가능했던 것은 이명박·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불행하게도 두 전임 대통령은 지금 감옥에 있다. 선거 뒤 6월 30일부로 김관용 지사가 퇴임하면 이 사업의 주요 당사자들은 모두 전임자로 실질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여 새로 구미시장이나 경북도지사가 되는 이가 이들 사업을 떠맡아 마무리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거액의 예산을 투입하여 벌여 온 박정희 기념사업이 말썽이 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사업이 지역사회의 박정희에 대한 막연한 추모와 회고 정서에 기댄 정치적 목적 아래 시행되었기 때문이었다. ‘새마을 종주 도시’니, ‘박정희 연구’니 하는 명분이 사업의 정당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었다.
기념사업의 파행,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은 문도 못 열었다
새마을운동 테마공원(아래 테마공원) 공사가 완료된 것은 지난해 말이지만 반년이 지나도록 공원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25만여㎡의 터에 지상 3층·지하 1층으로 전시관, 전시관 부속동, 글로벌관, 연수관 등 건물 네 동과 야외 새마을 테마촌을 지었으나 그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것이었다.
테마공원에 애초 책정된 예산은 882억이었으나 결산 결과 25억을 초과한 907억이 들었다. 그런데 건물과 시설만 덩그러니 세워 놓았을 뿐 그걸 채워낼 내용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었다. 교육과 체험과 전시 프로그램은 물론 전시할 내용도 마련하지 못한 데다가 운영 경비도 확보하지 못했다.
겉으로야 준비 부족을 들지만, 속내는 수익성이 없어서라는 게 중론이다. ‘새마을운동을 계승 발전하기 위한 교육·전시’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1970년대에 전개된 관제의 ‘농촌 중심 잘살기 운동’이 21세기에 어떤 방식으로 계승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고작해야 이 시설은 새마을지도자 교육 공간으로 이용되는 데 그칠 공산이 크다.
테마공원의 문을 여는 데는 연간 60억 원에 이르는 운영비를 부담할 주체가 문제였다. 경상북도는 구미시에, 구미시는 경상북도에 운영을 미루다가 결국 각각 5억 원씩 10억 원을 편성해 건물과 조경 관리, 경비용역을 해 나가는 걸로 간신히 문제를 봉합했다.
그러나 앞으로 갈 길은 더 멀다. 경북도와 구미시는 고육지책으로 도시공원인 새마을 테마공원을 문화시설로 바꾸어 운영비를 절반씩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도시공원의 운영 주체는 기초자치단체여서 도에서 공동운영비를 부담하기 위해서는 문화시설로 변경해야 했기 때문이다.
도와 시는 새마을세계화재단과 새마을운동중앙회에 운영권을 넘기는 방안을 찾고 있지만,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 결국 7월 1일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시장과 도지사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형편에 이른 것이다.
공휴일이지만 새마을 테마공원으로 드는 출입구는 붉은색과 흰색의 대형 플라스틱 차폐물로 막혀 있었다. 진출입 차량 관리소도 텅 비었고 새마을 광장 앞에는 전시관이 위압적으로 서 있었다. 찾는 이 없는 공원에는 산책 온 인근 지역 주민들이 가끔 눈에 띌 뿐이었다.
전시관 부속동을 지나 완만한 길을 따라 산으로 오르면 새마을운동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야외 새마을운동 테마촌이다. 아래쪽엔 초가집, 위쪽으로 오르면 슬레이트로 지붕을 바꾼 집들과 마을회관 등 슬래브 건물이 이어지는데, 그게 말하자면 ‘새마을운동 변천사’인 셈이었다.
1천억 건물 비워놓고 또 건물 짓는다?
반대편 계곡을 따라 내리막길로 하산하면 생가 왼쪽으로 역사자료관 공사 현장이다. 남유진 시장은 지난해 11월 14일, 박 전 대통령 출생 100돌을 맞는 날 역사자료관 기공식을 열었다. 그러나 그는 애쓴 보람도 없이 이듬해 사임하고 뛰어든 자유한국당 경북도지사 경선에서 탈락했다.
철 구조물로 삥 둘러싼 현장은 기초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공사장 입구에 세운 커다란 입간판에 쓰인 공사개요에 따르면 역사자료관은 공원화 사업부지 7만 7021㎡ 안에 총면적 4359㎡,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들어서게 된다.
내년 5월께 완공되는 이 유물전시관(참여연대는 역사자료관 대신 ‘유물전시관’으로 쓴다)에는 구미시 선산출장소 3층에 보관해 온 박정희 관련 유물 5670점과 취임 기념 지하철 승차권, 기념 책자, 우표 등 기증받은 물품 41점이 전시될 것이다. (관련 기사 : 14년 만에 공개된 박정희 유품 맥 빠지네)
그러나 200억짜리 전시관에 진열한 유품들이 개발 시대 지도자의 역사자료로서 어떤 가치가 있을까. 이미 ‘박정희 타운’에는 그를 기리고 기억하는 시설로 차고 넘친다. 그런데 한 개인의 일상생활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려운 그의 유품을 진열할 공간으로 200억을 쓰려고 하는 것이다.
그를 구국의 지도자로 숭앙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시대에 저임금·저곡가로 희생당하면서도 근대화를 수행했던 노동자나 농민 대중에 대한, 혹은 그들이 힘들여 열어온 역사에 대한 능멸이다. 박정희 유물관을 60, 70년대 청와대로 상징되는 권좌의 일상을 재현하는 ‘시간여행’의 정거장으로 쓸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선거운동이 이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참여연대는 시청 앞에서 유물관 공사 중지를 요구하는 일인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시위자의 펼침막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1000억 건물 비워놓고 또 박정희 기념물 짓는다? 200억 박정희 유물관 공사 중지하라!”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문제는 당장 구미시장 선거에 나선 후보자들에게도 예사롭지 않은 화두다.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후보는 테마공원을 경북독립운동기념관(안동)의 제2관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고 바른미래당의 유능종 후보는 ‘사이언스 파크’로 변경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후보들은 공사에 들어간 역사자료관에 관해서는 따로 복안을 밝히지 않고 있다. 시민사회의 백지화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연말, 서둘러 공사를 시작한 것은 남유진 시장이 도지사 출마를 앞두고 내린 일종의 정치적 결정이었다.
이미 적지 않은 사회적 논란이 이어져 왔고 사업을 결정할 때와는 정치적 환경도 급변한 이 사업에 대한 합리적인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황대철 집행위원장은 우선 공사부터 중지해 놓고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하면 새 시장은 일단 공사를 중지하고 도지사, 정부와 협의하여 사업을 백지화하는 게 옳습니다. 시민들의 민생이나 복지와 무관한, 정치인들의 정치적 이해에서 비롯된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낭비할 일은 없으니까요.
애초의 목적 수행이 어려운 거라면 새마을운동 테마공원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시민사회와 함께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논의를 열어 놓으면 합리적 해결책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구미, ‘인간 박정희’를 맞이해야 할 때
테마공원을 한 바퀴 돌아 박정희 동상 앞에서 우리는 잠깐 머물렀다. 5미터짜리 거대한 동상으로 선 지난 세기의 독재자는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고독해 보였다. 살아서 ‘어여삐’ 신민을 굽어보았던 그는 죽어서도 백성들 가까이 내려오지 못했다.
자신을 반신반인으로 추앙하는 신민들의 찬양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는 정작 대중에게서 멀어지는 역설에 갇혀 있다. 시나브로 그를 구국의 지도자로 기리는 대중들의 시대는 스러져가고 있으므로, 이제 그는 한 시대의 영욕을 상징하는 화석 같은 존재로 남을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박정희 신화는 박근혜의 탄핵으로 막을 내렸고, 그를 반신반인으로 신격화함으로써 정치적 이익을 꾀하고자 한 불통의 정치인 덕분에 그는 오히려 인간의 자리로 내려왔다. 그들은 그의 시대를 영광으로만 소환하고 싶었겠지만 정작 소환된 것은 치욕도 함께였기 때문이다.
박정희 100주년, 2017년에서 2018년으로 이행하는, 신격의 지도자를 인간의 자리로 맞이해야 하는 역사의 길목에 구미는 서 있다. 민선 7기, 새로운 시장과 도지사는 ‘죽은 자의 제사상보다 산 자들의 삶을 돌보라’는 현실적 명제에 어떻게 다가가게 될 것인가.
2018. 6. 10.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선산(구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마을 ‘종주도시’ 자처한 구미시의 이상한 행정 (0) | 2021.07.04 |
---|---|
159억짜리 ‘박정희 역사자료관’에 ‘역사’가 빠졌다 (0) | 2021.07.03 |
구미시, ‘새마을과’ 폐지할 때가 되었다 (2) | 2021.06.09 |
다시 ‘북봉산’ (2) | 2021.05.30 |
남유진의 구미-이재명의 성남, 어디에 살겠습니까? (0) | 2021.05.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