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한자보다는 우리말로 편하게

우리말에서 한자어의 비중이 55%~70% 사이로 매우 높은 편이다. 국립국어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어 어휘는 고유어(약 17~30%), 한자어(약 50~60%), 외래어 및 혼종어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문 분야나 학술 용어로 갈수록 한자어의 비중이 70%를 웃돈다.
한자의 비중이 높은 까닭은 역사적 이유와 함께 문명이 발전하면서 한자의 조어력에 기대지 않을 수 없었던 데서 찾을 수 있다. 우선 삼국시대부터 중국의 선진 문물, 제도, 종교(불교, 유교)가 유입되면서 그에 딸린 방대한 한자 어휘가 함께 들어왔다. 또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도 조선시대의 한문학 중심 사회여서 한자는 학문, 법률, 행정 등 사회의 지배적인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또, 한자는 글자마다 뜻이 있어 한자를 조합하여 새로운 추상적 개념, 학술 용어, 과학 기술 용어를 만들기에 매우 유리했다. 즉, 한자는 추상적이고 전문적인 개념의 조어를 만드는 데 매우 생산적인 문자였다. 또 근대화 시기에 근대 문물을 받아들일 때 일본을 거쳐 번역된 서양의 근대 학술 용어가 대부분 한자어로 정착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한자로 된 낱말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한자어에서 변형되어 우리말로 쓰이는 한자어 계 귀화어의 수효도 적잖다. ‘김치, 배추, 가게, 광, 모란, 짐승, 사냥, 썰매’ 등이 그것인데 이는 원래는 한자어였으나 지금은 한자어라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끔 형태가 바뀌었다.
한자어 가운데는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히 쓰면서도 한자어라는 사실조차도 의식하지 못하게 된 낱말도 많다. ‘고유어 같은 한자어’도 적지 않다. 실제 아이들에게 그런 사실을 가르치면 아이들은 적잖게 놀라기도 한다. [관련 글 : ‘눈록빛’을 아십니까, 우리말 같은 한자어들]
한자를 알아야 그 말뜻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것보다야 알면 그 뜻을 더 쉽게 이해할 순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자를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은 그리 온당하지 않다. 한글 전용은 이미 전 사회에 정착된바, 한자는 따로 공부하는 이들에게 맡겨두어도 충분한 것이다.
우리말에는 “둘 이상의 단어가 모여 하나의 단어처럼 쓰이며, 원래의 단어들이 가진 의미가 아니라 새롭고 특별한 의미로 굳어진 표현”인 ‘관용어’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 관용 표현에도 한자어가 섞인 경우가 적지 않다. 대체로 이런 표현은 한자 중심으로 이루어진 문자 생활의 자취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심히 쓰는 관용 표현 중에는 우리말로 바꾸어 써도 충분한 표현이 적지 않다. 이들 관용 표현은 그야말로 ‘관용(慣用:습관적으로 늘 씀)’하다가 굳어진 말이다. 괜히 알지도 못하는 한자어가 섞인 표현 대신에 우리말로 바꾸어 쓰면 뜻도 명확하고 이해하기도 쉽다.
한자어가 섞이거나, 한자어가 주로 쓰인 관용 표현들을 찾아서 이를 우리말로 순화해 보았다. 이런 순화는 한자어의 원뜻을 이용하되, 맥락에 따라서 의미를 더 분명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바꿀 수 있겠다.


“혼신(渾身)의 힘을 다하겠다”라는 표현에서 ‘혼(渾)’은 ‘흐리다’는 뜻으로 쓰이나 ‘온, 모두’라는 뜻도 있어서 ‘온몸’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그래서 맥랄에 따라서 ‘온몸의 힘’, ‘온 정성’, ‘모든 정성’, ‘있는 힘’, ‘다할 수 있는 힘’ 등으로 바꾸는 게 가능하다.
“심혈(心血)을 기울이다”도 ‘심혈’ 대신 ‘마음과 정성’으로 대체하여 쓸 수 있다. ‘심혈’은 ‘마음과 피’를 뜻하니, ‘온갖 정성을 다하다’, ‘마음과 힘을 다하다’, ‘온 힘을 쏟다’, ‘정성을 쏟다’ 등으로 쓸 수 있겠다.
한자어 ‘진력(盡力)하다’는 ‘다할 진’ 자를 썼으니, ‘힘쓰다’, ‘온 힘을 다하다’, ‘정성을 다하다’, ‘노력하다’ 등으로, “전력(全力)을 다하다”는 ‘온 힘을 다하다’, ‘최선을 다하다’, ‘힘을 쏟다’ 등으로 바꾸어 쓸 수 있다. 굳이 한자어가 아니라도 충분히 뜻을 전할 수 있다.

본격적인 한자어 관용 표현 ‘귀추(歸趨)가 주목(注目)된다’는 지금도 간간이 쓰이는 표현이다. ‘귀추’는 ‘돌아올 귀’, ‘달릴 추’ 자로 ‘앞으로의 결과가 기대된다’,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지켜볼 일이다’ 정도로 순화해 쓸 수 있다.
슬슬 쓰임새가 줄고 있는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다’
에서 ‘회자’는 ‘날고기’와 ‘구운 고기’를 가리킨다. ‘사람 입에 널리 오르내리다’, ‘세상에 널리 알려지다’의 뜻으로 쓰인다. 사실상 진부한 표현이어서 자연스럽게 쓰임새가 줄은 듯하다.

‘입추(立錐)의 여지(餘地) 없다’도 사실상 죽은 표현이다. ‘입추’란 ‘송곳을 세우다’라는 뜻이니 ‘발 디딜 틈이 없다’나 ‘빈자리가 없다’로 쓰는 게 훨씬 의미 전달이 쉽다. 송곳을 가리키는 ‘추’는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의 사자성어 ‘낭중지추(囊中之錐)’에서도 쓰인다.

‘자웅(雌雄)을 겨루다’에서 ‘자웅’은 ‘암컷과 수컷’을 가리키니, ‘승패(승부)를 겨루다’, ‘우열을 가리다’는 뜻으로 쓰인다.
‘전철(前轍)을 밟다’에서 ‘전철’은 앞의 바퀴 자국이란 뜻이다. “이전 사람의 방식이나 태도를 그대로 따르다”라는 의미의 ‘답습(踏襲)하다’, 또는 “이전의 실수나 실패를 다시 저지르다”라는 의미로서 ‘되풀이(반복)하다’라는 뜻 등,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인다.

‘타(他)의 추종(追從)을 불허(不許)하다’는 실력이나 수준이 최고임을 강조할 때 가장 널리 쓰이는 표현으로 ‘따를 자가 없다’, ‘비할 데 없다’, ‘견줄 바가 없다’ 등
으로 대체해 써도 무방하다. 사실상 한자어에 한글의 토씨만 붙인 표현인데, 더는 쓸 필요가 없는 표현이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한자어가 섞인 관용 표현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말의 생명은 언중의 선택에 달린 것이므로 이런 표현이 의미 전달에서 특별한 쓸모가 있지 않은 이상, 언중들은 그것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사어로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2026. 6. 24.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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