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대둔사 보물 건칠 아미타불좌상 복장유물 연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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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구미에 대둔사(大芚寺)라는 절집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시민들도 적지 않을 것이고, 거기 한 번도 들른 적이 없는 이도 많을 것이다. 진작에 대둔사 대웅전과 건칠(乾漆) 아미타여래좌상과 삼장보살도(三藏菩薩圖) 등 보물이 세 점이나 있다는 대둔사(大芚寺)가 옥성면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도 한동안 나는 길을 나서지 않았다.
구미에 있다는 그 절집이 해남 두류산 대흥사(大興寺)의 옛 이름과 같다는 게 무슨 짝퉁인 것 같아 어쩐지 미덥지 않아서였다. 5년 전(2020) 8월에 혼자서 복우산(伏牛山) 대둔사를 찾았는데, 그 미덥잖다는 느낌이 순전히 근거 없는 선입견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관련 글 : ‘짝퉁’ 이름의 구미 대둔사, 보물 넉 점을 품고 있다]
대둔사는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지만, 임진왜란(1592~1598) 뒤인 1606년(선조 39)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중건하여 승군을 주둔시킨 절로 유명하다. 지난 9월 대둔사에서 ‘사명대사 갈라쇼’가 베풀어진 까닭이 거기 있다.

구미 시민들에게도 낯설다면 낯선 사찰이지만, 대둔사가 품은 국가유산은 예사롭지 않다. 17세기 말 건축물로, 전북 부안의 능가산 내소사(來蘇寺) 대웅전과 형태가 비슷한 대웅전은 2017년 9월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대웅전 안에 봉안된 아미타여래좌상은 2010년에 보물로 지정된 건칠(乾漆) 아미타여래좌상이다.


세 번째 보물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740년(영조 16)에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제석도(帝釋圖), 현왕도(現王圖), 아미타불도(阿彌陀佛圖)와 함께 조성되어 대둔사에 봉안되었던 작품이다. 이 그림들 가운데 천장보살·지장보살·지지보살 등 세 보살의 회상을 그린 불화 삼장보살도만 유일하게 전해진다.
대둔사를 다녀오고 난 뒤에 지정된 보물이 하나 더 있는데, 이는 2021년 1월에 지정된 ‘구미 대둔사 경장(經欌)’이다. 대둔사 경장은 뒷면에 쓰인 명문을 통해 1630년(인조 8)에 제작한 사실을 알려주는 불교 목공예품으로, ‘불경 보관함’이다.
건칠 아미타여래좌상의 몸체 속에서 730년 전 한지 발원문 나왔다
그런데 최근 보물 건칠 아미타여래좌상의 몸체 속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거기 730년 전(1295) 한지에 쓴 발원문(發願文)이 나왔음이 밝혀졌다. 이 불상은 고려 후기 불상에서 조선 초기 불상으로 이어지는 불교 조각의 전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불상이라고 하는데, 이번 발원문을 통해 제작연대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고려시대 불상 몸속에서 730년 전 한지 발원문 나왔다]
이는 흙으로 불상 모양을 빚은 뒤 위에 여러 겹 천을 바르고 옻칠한 다음 내부 흙을 덜어내는 기법으로 만드는 건칠 아미타여래 좌상의 몸체 속을 3년 전 조사한 결과 나온 것이다. 건칠 발원문에는 1295년(고려 충렬왕 21년) 불상을 조성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이 함께 쓰여 있었는데 이는 불상 내부에 넣은 것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발원문이다.
“아! 하루가 지나가면 목숨 또한 그만큼 줄어 죽음의 문에 더 가까워지니…, 양이 도살장에 들어감에 발걸음 옮길 때마다 죽음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생을 헛되이 보내면 다시 어느 때를 기다리겠습니까…, 덕이 부족한 우리들이 간절한 믿음과 정성을 내어 아미타 불상 1구를 빚어 만들면서 중생들 마음을 모두 거두어 크게 발원했습니다…, 사부대중이 이 큰 발원으로 삶과 죽음의 바다를 벗어날 수단으로 삼기를 바랍니다.”
발원문은 730년 전 고려시대 선인들이 간절한 바람을 적어 내려간 한지 종이쪽 한 장이다. ‘득익사당주미타대성복장발원문(得益社堂主彌陀大聖腹藏發願文)’이란 제목 아래 100행 2,409자의 발원 내용을 쓰고 발원자 100여 명과 동참자 이름을 적었다. ‘원정(元貞) 원년’(1295년)이란 연호 기록이 쓰여 이 불상을 제작한 때가 원나라 성종(재위 1294~1307) 때임을 확인할 수 있다.

대둔사 건칠 아미타불은 조형미가 뛰어난 수작으로 꼽혀왔으나, 양식적 특징으로 보면 고려 말이나 조선 초가 유력하다는 게 그동안 불교 미술사 학계의 통설이었다. 그러나 머리 부분의 계주((髻珠 : 황금빛 반원 또는 원 모양 구슬 장식)가 조선 후기 특징인 반달 모양이어서 조선 후기 제작설 등 혼선이 적지 않았는데, 국내 최고의 발원문이 등장하면서 이런 논란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엑스선 촬영 결과와 함께 나온 1690년 중수문을 비교한 결과도 흥미롭다. 17세기 조각계 거장으로 18세기 초까지 활동하며 예천 용문사 목각탱 등의 명작을 남긴 조각승 단응(端應)이 이 불상 개수에 참여했다. 그가 머리 부분 중간 계주는 물론 손과 좌대 등도 대폭 자신의 작품처럼 손질해 상의 면모를 상당 부분 바꾸어놓은 사실이 드러났다. 이런 경로로 불상이 조선 후기 스타일로 상당 부분 변모하면서 제작 시기 추정의 혼선이 생겼음을 알게 됐다.


불상 머리 안에서 한지에 싸인 금속제 동곳(상투가 풀리지 않도록 꽂는 물건)도 나왔다. 국내 전통 복식의 일부로서 머리꽂이로 흔히 알려진 이 금속 장신구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분묘의 껴묻거리(부장품) 금속 유물로 다수 전하는데, 730년 전 불상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
은 재질에 도금한 동곳은 ‘오씨녀모오지(吳氏女毛吾只)’란 붉은 글씨가 적힌 닥종이에 싸인 모습으로 들어 있었다. 오씨 성에 모오지란 이름을 지닌 당대 유력가 여성이 예물로 넣지 않았을까 하는 정도만 짐작할 뿐 어떤 성격의 유물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복장유물로 함께 나온 ‘보협진언만다라’와 ‘팔엽삼십칠존만다라’라는 일종의 부적 그림도 예사롭지 않다. 복장유물은 불상 내부를 부처의 성스러운 장기로 간주하면서 넣은 발원문과 일종의 부적인 다라니, 만다라 그림, 각종 귀금속 공예품 등의 예물을 말한다.
이 부적 그림은 고대 인도의 글자 범어(梵語)를 바탕으로 쓴 보협인경(불교 경전)의 글귀와 우주 도상을 연꽃 모양으로 펼친 만다라 도(圖)를 결합한 것인데, 그림 귀퉁이에 1292년에 제작했다는 간기(刊記)와 그림 제작에 관여한 이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지난 5년간 관련 연구를 진행한 대둔사와 동국대 문화유산연구소(소장 임영애 문화유산학과 교수)는 27일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대둔사 아미타 불상의 복장유물 연구 결과 보고회’를 통해 이런 성과를 발표한다고 한다.
730년 전 선인들의 간절한 비원이 녹아 있는 발원문
불교 사찰은 단순히 전 시대의 유물이나 유적에 그치지 않고, 당대의 풍속은 물론, 그들이 기원과 세계관의 일부까지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대둔사 건칠 아미타불좌상 복장유물로 나온 발원문은 당대의 독실한 불자들인 발원자들이 생사를 뛰어넘는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고자 했던 간절한 비원이 절절히 녹아 있는 것이다.
대둔사는 국가유산 보물을 네 점이나 품은 만만찮은 절이지만, 신도회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다면서 새로 부임한 주지인 비구니 스님이 지난 초가을에 사명대사 갈라쇼까지 열어 관심과 지지를 호소했다. 단순히 외형의 발전이 아니라, 절집이 소장하고 있는 국가유산을 비롯하여, 유적과 유물을 지역 주민들이 함께 나누고 보전하는 방식으로 대둔사가 시민들의 사랑을 받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2025. 11. 26.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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