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 작가의 북 콘서트와 구미의 복합문화공간 ‘삼일문고’

그 책방과 주인장
한 달 전쯤 구미 시내에 책방이 하나 문을 열었다. 시내 번화가가 아니고 부도심(副都心)의 이면도로다.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지나칠 일이 없는 곳이다. ‘온 가족이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마음의 놀이터 같은 문화공간’을 지향하는 이 서점의 슬로건은 ‘사람과 책을 잇다’다.
시내 원평동 삼일빌딩 1층과 지하 1층에 850㎡ 규모로 문을 연 삼일문고(대표 김기중)는 단순히 책만 파는 데는 아니다. 서점 안 곳곳에 독서와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공연장, 전시장, 카페를 갖추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이기 때문이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책방을 연 김 대표의 의지를 되돌아보게 해 주는 의도된 구조다.



삼일문고는 1년 전부터 책 데이터베이스를 선별해 들인 도서를 고객 중심으로 진열(이게 무슨 뜻인지는 가보면 안다.)한 서점이 물론 중심이다. 이동형 가구를 배치하여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넓게 활용될 수 있도록 꾸민 지하 강연장, 서가와 서가 사이의 독립된 공간도 독서 모임이나 강좌를 위한 소 강연장으로 열려 있다.
한 작가나 인물 또는 출판사를 깊이 있게 조명하는 공간인 소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는가 하면 서점 한쪽 카페에선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유료로 운영되는 만화도서관도 특이하다. 새로 문을 연 책방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바이백(buyback) 서비스를 도입하여 중고도서도 판매한다.
개관(‘오픈’ 말고!) 날 기념행사에 참석해 <허형식 장군>의 작가 박도 선생을 뵙고 이러저러한 얘기를 듣고서 블로그에 이 책방에 관한 기사를 쓰고 한 달이 지났다. 조만간 <허형식 장군>의 북 콘서트를 연다더니 지난 29일로 행사가 잡혔다는 기별을 받았다. [관련 글 : 신영복 서화전과 소설 <허형식>, 구미 책방 이야기]
첫날 들른 뒤에 나는 책방을 다시 찾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당장 필요했던 책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시내 나들이 할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부도심의 이면도로에 있는 이 책방이 입소문이 나서 북적이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숭고한 뜻을 지니고 있어도 장사꾼은 이윤을 내야 한다. 본인은 장사꾼이라 하면 서운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가 무슨 자선사업가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척박한 지역에서 책과 사람을 잇는 일로 지역 문화를 일구겠다는 의도야 장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상도서 흔히 하는 말로 ‘흙 파서 장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가게가 손님으로 넘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의 뜻이 남다른 만큼 그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도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험칙은 비정하다. 결국 우리는 일종의 부채 의식으로 현실과 기대의 간극을 메꾸곤 하는 것이다.
북 콘서트가 열리는 날 한 시간쯤 일찍 현장에 도착해서 내가 가장 먼저 살핀 것은 가게 안에 든 손님의 수효였다. 목요일이었고, 퇴근 시간이 겹치는 어중간한 시간이긴 했지만, 서점 안은 한산했다. 나는 아직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으니까, 천천히 서점 안을 돌아보면서 사진을 찍었다.




북 콘서트
북 콘서트라는 형식의 행사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근년이다. 작가가 독자들과 만나 이런저런 펴낸 책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그것은 책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거나 책을 매개로 작가를 만날 기회를 얻는 것이어서 작가와 독자 양자에게 꽤 값진 시간이 된다. * 북 콘서트라는 용어는 일본식 조어다. 요즘에는 ‘북 토크(book talk)’로 쓰지만, 옛글이라서 따로 고치지 않았다.




지난 5월, 박도 선생이 이 책방의 개점 행사에 참석하고 내처 이 북 콘서트가 이루어지기까지 김 대표는 꽤 발품을 팔았다. 박도 작가가 항일 투사 허형식 장군의 삶을 실록 소설로 복원한 것은 두 사람이 모두 구미 출신이라는 지역 연고 때문이었고 책방을 열 준비를 하고 있던 김 대표가 원주로 박도 선생을 찾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작가는 콘서트 시작 전에 인근 식당에서 옛 동무들을 만나고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던 벗들을 만나면서 그의 50년 만의 귀향은 무르익었다. 해방둥이인 선생과 벗들은 이미 70대 중반, 수십 년 만의 만남은 얼마나 정겨웠을까.
나는 지하의 강연장에서 콘서트 시작과 관객을 기다렸다. 예전 같으면 독자들이 얼마나 올 것인지 조바심을 냈겠지만 나는 무심했다. 까짓것, 어차피 선생이 유명세를 치를 만큼의 지명도 있는 작가가 아닐뿐더러 소설 <허형식>도 구미 사람들의 구미에 그리 맞을 듯하지는 않을 듯했으니 말이다.
예상대로 관객은 쉰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일찌감치 온 작가의 동무들이 예닐곱, 그의 고모를 비롯한 친지들이 대여섯, 나머지가 독자인 셈이었는데, 개중에는 내가 아는 이도 둘이었다. 콘서트는 그만그만하게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작가는 소설을 쓰게 된 동기와 허형식의 삶의 자취를 찾아다녔던 얘기와 함께 고향 구미와 자신의 가족사, 작가의 ‘삶에 대한 생각’ 등을 곁들였다. 분위기는 자연 50년 만에 귀향한 노작가와 그 벗들이 함께 나누는 추억과 회고로 어룽졌다.
자유당 정권 시절, 민주당 공천을 받아 총선거에 출마해 낙선했던 작가의 선친, 후보인 오빠 대신에 유세를 벌였던 작가의 고모(박기옥, 쉼박물관장) 이야기는 다른 관객들에겐 낯선 이야기였을 테지만, 모두 흥미롭게 지역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있었다.
이날, 정작 작가는 평상심을 유지했지만, 울먹인 이가 둘이나 있었다. 먼저, 콘서트를 시작할 때 인사하면서 저간의 경과를 설명하고 앞으로 포부를 밝히던 책방 주인장이 격동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83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았던, 오빠를 대신한 유세로 후보보다 낫다는 평가를 들었다던 작가의 고모다.

5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작가의 콘서트인 만큼 분위기가 다소 물기에 젖었던 게 무어 대수겠는가. 사람들은 모두 미소를 지었고 한 시대를 회고하면서 벅찬 감정을 가누지 못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박수를 보냈다.
콘서트가 끝나고 사람들은 작가가 서명한 책을 한 권씩 사 들고 돌아갔다. 나는 선생이 미국 국립 문서 기록보관청(NARA)에서 스캔해 온 사진으로 꾸민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을 골랐다. 선생의 노력으로 빛을 보게 된 한국전쟁의 기록 사진들이 주는 감명은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평상심을 잃지 않았다고 했지만, 전날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고 선생은 고백했었다. 고향에 돌아와 치른 독자들과의 만남이 선생에겐 특별한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이 없다. 고향에 돌아올 뜻은 없냐는 질문조차 선생에겐 애틋하고 뭉클하게 다가왔을 것이었다. 이 귀향과 만남이 선생의 작업에 적지 않은 힘이 되리라.
삼일문고의 김 대표는 앞으로도 매월 한 번씩, 이 같은 북 콘서트를 열어 작가와 독자를 잇는 일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돈이 되지 않는’ 책방을 열고 거기서 베푸는 각종 행사를 통해서 지역 문화를 돋우겠다는 그의 포부가 지역 독자들과의 행복한 만남을 통해서 꽃피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2017. 7.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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