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를 위한 노래지만, 그 노랫말의 울림이 남다르다

1년 365일 가운데 적지 않은 날이 각종 기념일이지만, ‘3·1절·제헌절·광복절·개천절·한글날’ 등은 여느 날과는 무게가 다른 날이다. 이들 날은 국가의 경사를 기념하기 위해 법률로 지정된 ‘5대 국경일(國慶日)’인 까닭이다. 여느 날과 다르게 ‘-절(節)’ 자가 붙는데, 이는 ‘때, 시기’ 등의 의미로 쓰이는 한자다.
공모로 제정한 5대 국경일 노래와 위당 정인보의 노랫말

유일하게 ‘-절’ 자가 붙지 않은 날은 ‘한글날’이다. 한글은 한자로 쓸 수 없는 고유한 우리말이므로,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처럼 ‘-날’ 자가 붙었다.
국경일은 모두 공휴일이었지만, 제헌절은 2008년 기업 생산성 저하를 우려하여 공휴일에서 제외되면서, 현재 유일하게 쉬지 않는 국경일이 되었다. 한글날은 그보다 더한 부침을 겪었다. 1949년 공휴일로 지정된 이래 한글날은 41년 동안 국경일의 지위를 누려왔지만 1991년에 ‘경제’에 발목이 잡힌다.
행정안전부는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을 11월 8일부로 입법 예고했다. 처음 지정된 1949년 이래 한글날은 41년 동안 공휴일의 지위를 누려왔지만 1991년에 ‘경제’에 발목이 잡힌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쉬는 날이 많아서 노동생산성이 떨어진다’라는 이유로 한글날을 ‘국군의날’과 함께 공휴일에서 제외한 것이다. 이후 한글 관련 단체들의 끊임없는 공휴일 재지정 청원에도 불구하고 한글날은 복원되지 못했다. 2005년에는 한글날이 ‘기념일’에서 ‘국경일’로 격상된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2012년에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의 개정을 추진하여 국회에서 ‘한글날 공휴일 지정 촉구 결의안’이 의결되는 등 한글날 공휴일 지정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가 넓게 형성됨에 따라 이듬해부터 공휴일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명색이 나라글자[국자(國字)]를 기리는 국경일이 무려 22년(1990~2012) 만에야 다시 공휴일로 복원된 것이다. [관련 글 : 한글날, 공휴일로 복원!]
국경일은 광복 후 정부 수립 뒤인 1949년 제정된 ‘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따라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4대 국경일이 제정되었다. 1949년 공개 모집을 거쳐 1950년이 이들 국경일의 노래가 지정되었는데, 노랫말은 모두 위당 정인보(1893∼1950) 선생이 썼다.

위당은 정부 수립 후 1948년 국가 사정(司正)을 맡은 감찰위원장(오늘날의 감사원장)을 지냈으나, 이듬해 초대 상공부 장관인 임영신이 선거 중 저지른 비리를 적발해 파면을 요구하였다가 도리어 경질되었다. 이들 노랫말은 아마 감찰위원장 사임 이후에 쓰지 않았나 싶다.
위당은 한문학·국사학·국문학을 아우르는 국학에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담원시조집> 등을 비롯한 격조 높은 시조를 쓴 시인이기도 하다. 그가 한말의 대학자 이건방(李建芳)의 제자로 10대 시절부터 문명을 날렸던 한학자였다는 사실은 그가 쓴 아름답고 전아한 의고체(擬古體)의 한글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한 듯하다. 그가 쓴 노랫말에는 우리 고유어의 단정한 아름다움이 넘친다.
나는 40여 년 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그가 쓴 이충무공 비문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치면서, 위당이 다듬은 아름다운 우리 말글의 맵시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그는 한학자였지만, 한자어보다 맵시 있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썼다.
비문에 쓰인 글귀, ‘바다를 버리면 적은 바로 한강에 닿을 것이니, 어찌하리까.’ ‘일곱 해 만에 뭍과 바다가 처음으로 맑았다.’, ‘뒷사람들이여, 부끄럽다.’ 등의 글귀가 주는 울림은 남다르다. 특히 ‘그 밤에 달이 밝았다.’라는 구절은 지금도 내게는 특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모든 수식을 벗은 건조한 문장이건만 그 문장이 가진 함의는 녹록하지 않다. 그 짧은 문장은 한 인간의 죽음이 연출하는 풍경 속에 처연한 비장미를 은은히 되비추고 있지 않은가. [관련 글 : ‘아름다운 우리 말글 맵시’, 위당 정인보를 생각한다]
개천절 노래


어제는 국군의 날, 아침 운동을 다녀와 베란다에 국기를 달았다. 십 년 넘게 써 온 국기를 이번에 갈았는데, 바람이 불어도 국기가 말리지 않고 잘 견뎌주었다. 걸면서 한 번, 나들이하면서 잠깐 일별해 보니 우리 동에 우리 집 말고 국기를 건 집은 따로 보이지 않았다.
내일은 개천절, 문득 생각나서 그 노랫말을 거듭 살펴보았다. 개천절 노래는 본래 대종교에서 부르던 노래였으나 개천절을 국경일로 지정하면서 지금과 같이 바뀌었다. 정인보가 노랫말을 쓰고, ‘즐거운 우리 집’, ‘동심초’, ‘못 잊어’ 등의 가곡과 동요 ‘잘 자라 우리 아가’의 작곡가 김성태(1900~1986)가 작곡한 노래는 나라의 뿌리가 단군임을 분명히 한다.
1절은 ‘물이라면 새암(샘)’, ‘나무라면 뿌리’를 말하며 ‘이 나라 한아버님(할아버님)’은 단군임을 밝힌다. 2절에서는 시월 상달 초사흘에 백두산에서 환인-환웅 부자와 환웅-웅녀 부부가 하늘을 열었다[개천(開天)]고 노래한다. 3절에서는 오랜 역사라고 해도 ‘줄기는 하나’, 신단수(神壇樹)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무리를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왔던 곳의 신성한 신목(神木)인 박달나무(신화에서는 신단수가 특정한 나무로 규정되지 않는다.) 잎에 삼천리(우리나라)가 아름답다고 기리면서 끝맺는다.
삼일절 노래


개천절 노래 외의 나머지 국경일 노래의 노랫말을 살펴본다. 1950년 삼일절 노래가 제정되기 이전에는 찬송가 선율에 노랫말을 붙여 부르던 ‘삼일절가’가 있었고, 광복 이후 박종화(1901~1981)가 작사하고 김순애(1920~2007)가 여성 3부 합창곡으로 작곡하여 1946년 3월 1일에 500여 명의 여학생 합창단에 의해 불린 ‘삼일운동의 노래’가 있다. 또한 안서 김억(1895~미상)이 작사하고 이흥렬(1909~1980)이 작곡한 ‘삼일절가’가 있으며, 그 외에도 여러 개의 삼일절 기념 노래가 존재한다.
그러나 정부 수립 선포까지 좌우 두 진영과 언론사 등에서 독립적으로 실시하던 다양한 기념식을, 정부 주도의 단일화된 기념 의례로 시행하면서 공식 기념 노래인 ‘삼일절 노래’만이 불리고 있다.
노래는 기미년 만세운동을 묘사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의(義)요, 생명이요, 교훈’이라고 강조한다. 일제의 압제에 얼어붙은 ‘한강 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에는 위당 특유의 정서가 비장하게 드러난다. 마지막에 ‘선열하’라고 하여 백제 가요 ‘정읍사’에 나오는 ‘달하’의 ‘높임 호격조사’ ‘-하’를 쓴 것도 금상첨화다.
작곡가 박태현(1907~1993)은 평안남도 평양 출생으로 첼로 연주가이며 동요와 가곡을 작곡한 작곡가이다. 특히 창작 동요 작곡에 힘써 동요집 <산바람 강바람>, <누가 누가 잠자나> 등을 출간하였다.
제헌절 노래


‘오빠 생각’, ‘집 생각’, ‘사우(思友, 동무 생각)’ 등의 가곡과 동요곡집 〈중 중 때때중〉의 작곡가 박태준(1900~1986)이 작곡한 제헌절 노래는 4대 국경일 노래 중 가장 귀에 선 노래인 듯하다. 공휴일에서 제외된 것처럼 그날의 위상이 다른 날에 비기기 어려웠던 탓이다. 제헌절 노래에도 단군신화가 등장한다. 1절에 나오는 ‘비구름 바람 거느’린 이는 물론 천제 환인(桓因)이 인간 세상에 내려보낸 아들 환웅(桓雄)이다. 환웅은 천부인(天符印) 3개를 지니고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정상으로 내려와 바람과 비, 구름의 신을 데리고 곡물과 생명과 질병과 형별과 선악 같은 인간 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다스렸다.
‘인간을 도우셨다’라는 것은 곧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다’의 뜻이 분명하고, 360여 가지 일은 대한민국의 조직과 운영,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 및 의무를 담은 가장 기본적인 법인 헌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하늘 뜻 그대로’인 그 언약을 지켜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 ‘옛길’와 ‘새 걸음’의 대조와 대구도 경건하다.
2절에 나오는 ‘대계(大界)’는 ‘세상’, ‘우주’, ‘세계’의 뜻으로 이른 말로, 우리 민족의 앞날이 순항하리라는 것을 궤도를 도는 별들로 비유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므로 앞날에 복뿐이라고 축복한다. 대한민국을 ‘억만년의 터’로 후렴처럼 붙인 것은 대한민국의 영속에 대한 소망과 예견이다.
광복절 노래


광복절 노래도 공모로 가사가 선정된 뒤 ‘보리밭’, ‘도라지꽃’ 등의 가곡과 동요 ‘나뭇잎 배’를 지은 작곡가 윤용하가 만들어 1950년 4월에 확정되었다. 해방 5년 뒤에 완성되었지만, 이 노랫말에는 위당이 느낀 광복의 기쁨과 감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흙’을 다시 만져 보고, ‘바닷물’도 춤을 추게 하는 것이 바로 광복의 환희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은 해방의 날을 고대한 겨레요, 해방을 위해 투쟁해 온 독립운동가들이 아니던가. 그래서 그것은 ‘사십 년 뜨거운 피’가 ‘엉긴 자취’인 것이다.
2절에서는 지난 일을 잊지 않고, 다 같이 복을 심어 가꾸자는 의지를 드러내고, 세계의 보람이 여기서 날 것이라는 확신을 보여준다. 그리고 후렴으로 각 절의 끝에는 ‘길이 길이 지키세’와 ‘힘써 힘써 나가세’를 반복하면서 간절한 소망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글날 노래


한글날 노래는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1894~1970)의 노랫말을 삼일절 노래를 만든 박태현 작곡으로 만들어졌다. 엔간한 한자어는 한글로 바꾸어 쓰자고 주장하는 등 한글 전용의 기틀을 마련한 외솔의 작품이라, 고유어가 제대로 쓰였다.
1절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기리며 ‘새 세상 밝혀주는 해’라고 기리면서 한글은 ‘우리 자랑 문화의 터전’이라고 노래한다. 2절에는 훈민정음이 24자지만 그 속에 모든 이치를 갖추었고,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 세계 글자의 으뜸이라고 기린다. 그리고 그것은 ‘민주의 근본’이라고 노래한다.
마지막 3절은 세종 임금이 창제한 세계 최고의 문자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 겨레를 노래한다. 한글을 ‘생활의 무기’라 기리면서 ‘한데 뭉쳐’ ‘건설의 일꾼’이 되어 ‘바른길 환한 길로 달려 나가자’고 권하면서 후렴인 ‘이 글로 이 나라의 힘을 기르자’라면서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한때는 의례가 본질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던 때도 있었지만, 세상은 많이 변했다. 의례는 각급 학교에서도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서 이 노래를 아는 이들도 많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5대 국경일의 의례를 위해 만들어진 이들 공식 노래의 의미는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노래에 담긴 건 그 국경일을 바라보는 겨레의 자부심과 긍지, 자랑인 까닭이다.
2025. 10. 2.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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