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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그들에게 ‘유배’는 ‘자유’와 같은 말이다

by 낮달2018 2021.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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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주빈의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겉그림

‘구럼비’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천동 앞 바닷가에 펼쳐져 있는 너럭바위의 이름이다. 이 바위는 용암이 흘러내려 굳은 것이지만, 화산섬 제주도의 여느 바위들과는 달리 평평한 몸을 무려 1.2km에 걸쳐 누이고 있는데 그 너비도 무려 150m에 이른다.

나이로 치면 5만 살에서 18만 살에 이르는 이 바위는 화산섬 제주도 역사의 일부이면서 그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지역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구럼비는 거기 고단한 몸을 부리려는 사람들의 휴식처였고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는 ‘열린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구럼비 주변에 해군과 시행업체인 삼성이 높이 3m의 철제 펜스를 친 것은 지난 9월 3일이다. 바위 위에다 시멘트를 부어 ‘민·군 복합관광미항’을 짓기 위해서다. ‘복합관광’ ‘아름다운 항구[미항(美港)]’라는 이름 앞에 생뚱맞게 ‘민·군’이라는 관형어가 붙은 것은 이 공사가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께서 이미 눈치챈 대로다. 여기가 바로 제주 ‘강정마을’이다. 이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마을과 바다를 지키기 위한, ‘나라’를 상대로 한 ‘백성’들의 질긴 싸움이 시작된 것은 4년 전이다. 2007년 4월, 당시 마을회장이 주민 87명의 동의를 얻어 해군기지 유치를 결의했다.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그해 8월, 해군기지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전체 주민 1970명 중 725명이 참여해 그중 94%가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나라’는 ‘국익’과 ‘안보’를 내세우며 이 마을의 평화와 사람들의 소망을 짓밟았다. 4·3항쟁 이래 처음으로 ‘육지 경찰’이 제주에 투입되었고, 38명이 연행되어 7명이 구속되었다. 시행업체인 대우건설 등은 주민 14명을 상대로 2억8900만 원이라는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고, 해군은 주민 77명을 대상으로 공사방해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9명이 재판을 받고 있고 14명에게는 경찰이 출두를 요구하고 있다.

이주빈 기자의 ‘그 여름 석 달의 기억’

▲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 노순택

이 책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오마이북)는 <오마이뉴스> 이주빈 기자가 사진가 노순택과 함께 기록한, 2011년 7월부터 9월까지의 ‘그 여름 석 달의 기억’이다. 그것은 “아픈 여름, 슬픈 여름, 그러나 결코 좌절하지 않았던 희망의 여름”(머리말)에 대한 기자의 증언이기도 하다. 그 석 달 동안, 기자는 사건과 사태의 기록자였지만 사람들 한가운데 있었다.

이주빈 기자는 강정마을을 지키는 제주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싸움을 함께하고 있는 바깥사람과 교유했다. 그리고 그들을 “제주 강정마을 지키는 ‘평화 유배자’”라고 불렀다. 또 그는 그들이 추구하는 삶과 평화, 사랑과 희망을 ‘구럼비의 노래’로 새겨들었다.

알다시피 제주는 ‘유배’의 땅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2백여 명의 인사들이 권력의 내침을 받고 왕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 절해의 섬 제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고단한 저항의 길을 선택한 이들은 ‘평화의 유배자’들이다.

평화를 위해서 자신을 유배한 사람들, 제주 사람이든 제주로 들어온 사람이든 이들에게 ‘유배’는 제주 군사기지 저지 범도민 대책위원회 고유기 집행위원장의 말대로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유배가 ‘역행과 추방’을 지칭하는데 ‘역행’은 ‘정의’, ‘추방’은 ‘새로운 가능성의 행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는 ‘들어간 사람’인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 이야기로 시작하여 ‘토박이’인 범도민대책위 고유기 집행위원장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칠순을 넘긴 노신부는 ‘평화’를 말하고 제주 사람 고유기는 ‘유배’를 말한다. 아마 이것이 이들을 ‘평화 유배자’로 부르는 근거가 된 것일까.

▲ 길 위의 신부, 문정현이 스쿠터를 타고 제주도 강정마을 중덕 해안에 나타났다. 그는 강정마을 주민이 되었다.

문정현 신부는 ‘강정마을은 대추리와 다르지 않’다며 ‘아픈 곳이니까 온 거’라고 말한다. 노 신부의 진술대로 어느덧 강정마을은 ‘매향리’와 ‘대추리’에 이어 반전과 평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 문 신부가 말하는 강정의 평화는 소박하다. 그것은 강정 사람들이 ‘살던 대로 사는 것’이고 ‘날마다 보던 범섬 그대로 보고 매일같이 놀던 구럼비에서 그대로 노’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5월, 비닐하우스 철골에 걸린 쇠사슬을 목에 걸고 중장비를 앞세운 건설업체들의 철거에 맞선 한 사내가 있었다. 여차하면 탁자에서 뛰어내리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온몸으로 뿜어냈던 그는 10년 넘게 국제분쟁지역에서 평화 봉사활동을 하다가 강정마을에 상주하게 된 국제 평화운동 단체 ‘개척자들’의 송강호 박사. 그는 “정의를 불의가 짓밟고, 평화가 산산이 깨어지는 현실, 그런 현실을 사는 이들 곁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신의 ‘영혼이 강정에 있다’고 믿은 육지 사람 김민수는 스스로 ‘강정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혈통을 바꾸는 단절을 통해서 그는 기꺼이 강정 사람이 되었다. 만화작가인 그는 해군기지 싸움이 끝나면 강정 이야기를 담은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만들 계획이다. 언제쯤 우리는 그가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강정의 싸움을 회상할 수 있을는지.

올해 강정마을에 합류한 서른한 살의 프랑스 사람, ‘마음 치료사’ 뱅자맹 모네는 ‘인간은 너무 자주 우리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다고 말한다. 또 대만에서 온 평화운동가 왕 에밀리는 ‘제주 해군기지 문제는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모두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들의 발언은 ‘반전’과 ‘평화’가 나라를 뛰어넘는 인류 공통의 과제라는 사실을 새삼 환기해 준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강정과 함께하는 사람들

▲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 노순택

단식과 영성 치유를 함께 하는 순례자, 스스로 ‘나이 칠순이 넘은 노 전사’로 소개하는 생명 평화 결사 100일 순례단장 권술룡. 그는 해군에게 수용당한 농로 주변 밭에 고구마를 심고 해바라기 씨를 뿌렸다. 또 외지에서 찾아오는 이를 위해 세운 중덕 해안의 비닐하우스를 가리켜 “강정의 비닐하우스가 세상에서 가장 장엄한 집인 까닭은 바로 이곳이 세계평화의 순례지로 거듭 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규정한다.

‘들어온 이’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강정과 호흡을 같이하니 토박이 제주 사람들이야 더 이를 게 없다. 민주노동당 전 의원 현애자의 쇠사슬 투쟁은 ‘아무리 생각해도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는 진보 정치인의 비장한 의지의 결과다.

현애자의 싸움이 비장미로 점철되어 있다면 트위터를 통해 강정마을 소식을 전하고 친구들의 제안을 받아 온라인 정당 ‘강정당’을 만든 춤꾼 김세리의 그것은 훨씬 흥겨운 것이다. 강정당의 첫 사업은 제주도지사에게 공사를 직권으로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자필 서명운동이었다.

‘한 5천 명만 모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 만에 무려 2만6313명이 자필서명 용지를 우편으로 보내왔으니 요샛말로 ‘대박’을 쳤다. “상식이 짓밟히면 누구나 분노하죠. 저 역시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일 뿐”이라는 그는 자신을 확신범으로 만든 주범이 ‘군사주의와 부당한 공권력’이었다는 걸 놓치지 않았다.

“사람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가치 하나는 지키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 강정마을 회장 강정균. 그가 생각하는 평화는 단순 명쾌하다. “친구 만나면 술 한 잔 나누고 힘들 때 옆에서 도와주고…… 이웃끼리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평화라고 생각해요.”

기름통에 그린 군사용 경고가 아이의 눈을 통해 ‘평화를 위한 경고’로 극적 반전을 이루고 있는 그라피티(graffiti, 낙서화)를 그린 작가 고길천은 ‘시내(제주) 사람’이다. 자신의 ‘DNA 자체가 제주도고, 제주도로부터 모든 것을 수유 받는다’는 그는 촘스키 교수와 미국 학계 인사 40인의 지지를 이끌어낸 주인공이었다.

군사기지 문제는 평화롭게 하나가 되어 살아온 마을 사람들 사이에 굵직한 경계를 만들어 놓았다. ‘평화 백합꽃’ 키우는 ‘액비맨’ 강희웅. 형과 200m 간격으로 살지만 형제는 말 한마디 섞지 않고 살고 있다고 했다. 해군기지 문제가 피붙이조차 갈라놓은 것이다.

4·3 때에도 드문 경우라며 마을주민들은 안타까워하지만, 그는 언젠가는 형제가 만날 수 있으리라 믿고 있다. ‘궨당’이라고 불리는 제주의 독특한 정서에도 굳이 기지 반대운동에 나선 것은 아이들 때문이다. “내 아이들이 고통받게 생겼는데 세상 어느 부모가 그걸 모른 척합니까.”

물질한 지 28년 된 이웃 법환마을 해녀회장 강애심도 형님 아우로 정을 나누던 강정마을 해녀회와 남남이 되었다. 강정의 해녀회가 보상금을 받고 기지 건설에 찬성하자, 그이는 143명 법환마을 해녀들을 모아 강정마을 해녀 몫까지 싸웠다.

“바다를 판 해녀는 해녀 자격이 없어요. 아무리 돈이 귀중하다 해도 영원히 바다를 버린다는 것은 용서가 안 됩니다.” 그이에게 바다는 ‘어려울 때 사람을 살려주는 곳’이다. 그런 바다에 물고기들은 강정과 법환 바다를 넘나들지만, 사람들은 담을 치게 된 것이다.

‘시간’과의 싸움, ‘복잡한 것은 단순함으로 푼다’

▲ 강정마을 지키는 사람들과 경찰들 ⓒ 노순택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 고권일은 “평화를 위해 싸우는 영혼은 ‘무죄’”라고 믿는 사람이다.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고향 강정으로 돌아온 그는 “이 싸움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평화가 무엇인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만화작가인 그는 마을 의례회관 담벼락이며 창고 건물에 벽화를 그리는 것으로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7월 구속되었다 보석으로 석방된 그에게 평화란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강정마을 사람들은 고립되어 있지 않다. 비싼 비행기 삯을 마다하지 않고 영도로 가는 대표단을 꾸렸던 강정마을 사람들은 “우리 강정에도 평화 비행기랑 평화 배를 타고 사람들이 찾아주면 참 좋겠다”고 했다.

뭍과 멀리 떨어진 섬이지만 강정마을 사람들을 응원하는 ‘연대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강정마을로 신혼여행을 온 박중구·이선미 부부나 ‘강정마을에 대한 미안함’을 버리지 못하는 한진중공업 해고자 ‘한진 스머프’ 신성훈도 그런 이들이다.

종이로 만든 탈에 인간의 형상, 바위의 형상을 그려 넣은 <구럼비의 신>을 만든 전진경 등 여섯 명의 작가들, 강정에서 ‘트위터 단편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실험하고 있는 영화감독 여균동도 마찬가지다. “환호작약하는 자발적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와 행복”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여균동. 그는 주민들의 모습을 ‘싸움’이 아니라 ‘질긴 견딤’으로 표현했다.

여균동은 강정마을 사태를 ‘로드무비’로 비유하면서 해군은 악당으로 출연한 별 볼 일 없는 조연일 뿐, 진정한 주인공은 마을주민들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영화감독답게 그의 주장은 명료하다. “그들의 드라마를 주목하라, 그들이 길이다!”

▲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 노순택

10년째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해 오고 있는 운동가, 군사기지 저지 범도민대책위 집행위원장 고유기는 “강정 사람들 면면을 떠올리며 울컥하게 다가오는 어떤 연민, 아픔, 이것들을 떠받치는 분노 같은 것이 나의 동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강정마을을 살리겠다고 왔지만 정작 자신을 살리는 게 강정마을이라고 고백한다.

“가장 두렵고 힘든 것은 해군이나 국가가 아니라 바로 ‘시간’이더라”는 고유기의 진술은 이 싸움이 얼마나 더 고단하게 펼쳐질 것인가에 대한 우려다. 그러나 ‘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으로 푸는 것’이라는 그의 낙관이 이 싸움을 너끈히 감당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 글을 쓰고 있던 지난 29일에는 ‘제주 해군기지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전국 시민행동’이 제주시청 일대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강정마을회, 제주 군사기지 저지 범도민 대책위원회, 제주 군사기지 저지 전국 대책회의, 야5당 등이 주최했는데 강정마을 주민, 평화활동가, 천주교 신부, 야5당 관계자 등 총 800여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이 가운데 200여 명은 지난번에 이어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평화 비행기’와 ‘평화유람선’을 타고 왔다. 만만찮은 비행기나 뱃삯에도 제주행을 선택한 이들이나 영도의 한진중공업을 향한 희망 버스를 탔던 이들은 다르지만 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낮은 사람들의 연대가 ‘인간의 존엄’과 ‘사람다움’의 힘이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고유기의 말이 아니더라도 무서운 것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싸움은 ‘목숨이 끊어질 정도까지 참았다가 내뱉는 숨소리’, ‘숨비소리’로 고단한 삶을 이어온 해녀들의 호흡을 닮은 강정 사람들의 것이다. 그래서다. ‘치매로 입원 중인 어머니 손을 잡고 구럼비 바위며 바다에 나가 보말, 미역, 소라를 따고 싶다’는 고권일의 소박한 소망이 이루어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넉넉히 믿어두는 것은….


덧붙이는 글 | 글 이주빈·사진 노순택, 오마이북, 1만4000원
책 말미에 부록으로 ‘제주 해군기지, 무엇이 쟁점인가’와 ‘강정마을 4년의 기록’이 붙어 있다. 이 책의 저자 인세와 판매 수익금은 강정마을의 평화를 지키는 데 쓰인다.

 

 

2011. 11. 1. 낮달

 

 

 

그들에게 '유배'는 '자유'와 같은 말이다

[서평] 이주빈의 <구럼비의 노래를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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