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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한자병기’ ‘이해력’ 신장? ‘사교육’ 아니고?

by 낮달2018 2021.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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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교과서 한자병기’ 추진 계획에 부쳐

▲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에 대한 시민 인식조사 결과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갈무리

기어코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할 모양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9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를 한글과 병기할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한자병기를 추진하는 이유로 ‘인문학적 소양 함양’을 들기까지 했다.

 

한자병기가 이해력 신장? 학습 부담, 사교육 신장은 아니고?

 

그동안 한자병기가 동음이의어 등의 이해를 높여 우리 말글의 이해력을 신장시킬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 온 한문 학계와 관련 단체들은 교육부의 강력한 원군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이해력 신장보다 먼저 느는 것은 아이들의 학습 부담이고, 사교육이라고 보는 게 옳다.

 

이미 냄새를 맡은 사교육 업체들도 바빠졌다. 거기에다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운동 단체들의 최대 연대조직인 어문정책정상화추진회(아래 추진회)가 통신판매업을 겸하는 단체와 손잡고 사이버 한자 사교육 사업을 벌인 게 드러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한자병기주도 최대 조직, 사교육업체와 손잡아]

 

최근 교육부는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에 대한 초중등교사들의 의견 수렴 결과를 ‘중등 한문과 교육과정 시안 공개 토론회’에서 발표하기도 하는 등 강한 추진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 4월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철회’를 교육부에 건의하는 등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학부모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최근 한 학부모 교육정보 커뮤니티가 초등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 65.6%가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찬성 입장을 보였다. 반면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조사에서는 73%가 반대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해당 보도 자료 바로가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1026명 중 749명(73%)이 한자병기에 반대했다. 학습 부담의 증가로 인해 초등학생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이며, 중학교 정규수업 시간에 배우는 한자로 충분하므로 초등학교 과정에서 한자를 병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초등학생은 81.1%가 사교육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교육 참여 시간도 고등학생(4.0시간), 중학생(6.5시간)보다 많은 6.6시간에 이른다. (2015년 통계청) 그런데도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정책에 대해 유아와 초등학생 부모의 68%가 별도의 한자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국민운동본부가 지난해 7월에 연 기자회견. ⓒ 한글문화연대

교육부는 사교육 부담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현실은 정책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초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한자를 가르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한자병기가 진행돼 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해지면 학생들은 사교육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사 대상 시민의 88%가 사교육비가 늘어날 것이라고 답한 것이 바로 현실이다. 실제 보도에 따르면 한자병기 정책 발표 이후 초등생 한자자격시험의 응시 추세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결국 한자병기가 사교육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근거다.

 

교과서에 한자가 병기될 경우 조사 대상 시민의 84%가 자녀의 학습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답했다. 시민들은 학습 부담이 아닌 학습 흥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데 한글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영어와 한자까지 추가로 배워야 한다는 것은 부담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교육부는 시민의 절대다수가 반대하는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즉각 중단해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과도한 학습량을 전제로 하는 교육과정 개정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학습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되는 한자병기를 추진하는 일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것이다.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가 부당한 이유 10가지

 

시민들의 반대 여론뿐만이 아니다. ‘한글학회’는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가 부당하다고 보는 이유’를 10가지 이상 예시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한글학회 말글정책 바로가기]

 

1. 역사의 퇴보: 교과서의 문자 표기는 그 사회 문자생활의 본보기로 작용한다. 따라서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 또는 혼용하면 신문·잡지 등 대중 출판물이 교과서를 따라갈 게 뻔하다. 결국 한자병기는 훈민정음 사용 이후 550년 만에 제자리를 잡은 한국어 공동체의 문자 생활을 550년 전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2. 언어와 문자의 혼동 : 문자는 언어를 적는 방편이고 언어는 문자의 종속체가 아니다. 한국어 낱말 ‘김치, 비빔밥, 갈비, 아리랑’ 등이 세계 여러 언어권이 들어가 있지만, 모두 자기의 문자로 기록하지 한국어라고 해서 한글로 기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한글로 어떻게 쓰는지 모르지만 그런 낱말을 곧잘 말한다. 대다수 언어권에서는 한자어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사용한다.

 

3. 인성 교육의 왜곡 : 교육부의 자료에서는 한자 교육을 인성 교육의 일환으로 제시하였으나, 이는 매우 허무맹랑한 논리이다. 한자를 사용하는 한족(중국인)은 다 인성이 훌륭한가. ‘義’를 알아야 의로운 사람이 되고 ‘奉仕’를 알아야 봉사를 잘하는가.

 

4. 공동체 통합의 장애물 : 한자 사용이 보편화하면 한자를 아는 계층과 모르는 계층으로 나누어져,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정보 공유가 순조롭지 못하게 되고, 나아가 사회 통합에 장애를 유발할 것이다.

▲ 한글로만 쓴 글과 한자병기를 한 글. 어느 쪽이 가독성이 높은가?

5. 독서 능률의 저하 : 두 가지 이상의 문자로 표기된 글을 읽을 경우의 독서 속도는 한 가지 문자로 표기된 글을 읽을 때에 비하여 매우 느려진다. 한글만으로 표기된 글이 속독에 훨씬 유리하다.

 

6.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저해 : 오늘날 한국의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문자 체계가 과학적인 한글에 힘입은 바가 매우 크다. 그런데 한자를 함께 써 2가지 문자를 사용하면, 중국·일본보다도 문자 처리 속도가 느려질뿐더러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을 보장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7. 교과 교육의 비정상화 초래 : 국어뿐 아니라 다른 교과목도 각 교과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한자 교육에만 매몰되고 말 것이다. 공기의 주성분인 산소를 이해하는 데에 ‘酸素’가 무슨 도움이 될까? 수학에서 분수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에 ‘分數’는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다.

 

8. 교육 태세의 미비 : 대다수 현장 교사는 한자에 익숙하지 않다. 제대로 가르치려면 충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9. 사교육 부담 배가 : 지금 한자를 제대로 가르칠 교사도 많지 않은 여건에서 한자 교육이 공식화하면 그 대부분은 사교육기관이 좌지우지하게 될 개연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사교육비 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공교육에 대한 외면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10. 학습 부담의 과중 : 한국 어린이의 ‘삶의 만족도’는 OECD 국가 중에서 꼴찌다. (보건복지부) 한국 아동의 67.6%가 방과 후에 학습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여가 활동(친구들과 놀기, 운동 등) 참여율은 매우 낮다는 내용도 있었다. 초등학교에까지 한자 교육을 도입하면 드러날 상황은 상상할 필요도 없다.

 

▲ 한글 공부를 위한 기본 음절 카드

요즘 아이들의 ‘맞춤법 파괴 현상’을 다룬 글[맞춤법 파괴 - ‘발여자’(반려자)에서 불란(분란)’까지]에서 밝힌 대로 이제 아이들에게 한자는 영어나 프랑스어처럼 외국어가 되었다.

 

빛깔을 가리키는 ‘연두’나 ‘고동’을 이해하는 것은 그게 각각 한자로 ‘연두(軟豆: 연한 콩)’, ‘고동(古銅: 오래된 구리)’에서 온 말이라는 걸 알아서는 아니다. 영자로 ‘화이트(white)’가 ‘하양’이고, ‘레드(red)’가 ‘빨강’인 것은 그 어원을 알아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한자에 익숙한 50대 이후의 기성세대에게는 한자가 친숙한 문자 체계고 그 함의를 통해 어휘력을 늘려온 경험이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걸 전혀 다른 문자관(文字觀)을 익히며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에게 강요할 일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7일에 한글 문화단체 모두모임이 낸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성명이 지적하는 부분도 같다. 늘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70년대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이 퇴행적 정책이 지닌 반교육적, 반역사적 성격과 한글의 가치에 대한 부정을 통박하는 글이다. 꼼꼼히 읽어볼 만한 글이다.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방침은 한글의 가치를 부정하고 국어교육을 왜곡한다

 

 

교육부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문․이과 통합형 교육 정책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세부 항목은 이러한 미래 지향과는 아주 거리가 먼 국어 퇴보 정책이 포함되어 있다. 인문․사회적 소양 함양과 인성 교육 강화를 위해 교과서에 한자병기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교과서의 한자병기는 교육으로 보나 언어 상식으로 보나 옳지 않은 일이기에 우리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은 반대 운동을 전개한다.

 

첫째, 한자병기는 여러 나라에서 적극적으로 애쓰고 있는 공공언어의 쉬운 언어 쓰기를 거스르는 것이다. 교과서는 공공언어의 표준 역할을 하는 일종의 규범서이다. 한자를 괄호 속에 넣는다 하더라도 병기 자체가 두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

 

둘째, 낱말의 뜻은 문맥이나 맥락을 통해 파악하는 것인데, 마치 한자를 통해 파악하는 것인 양 잘못된 언어관으로 의사소통 교육을 망치게 한다. 근본적으로 모든 어휘는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이를테면 ‘치매’의 뜻을 우리는 한자 없이 잘 이해하고 사용한다. ‘癡呆’라는 한자는 “어리석을 치, 어리석을 매”인데, ‘치매’가 어리석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셋째, 전 세계 전문가들이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을 극찬하는 이 시기에 이중 문자 체계로 가면서 또다시 한자 논쟁을 벌이게 된 것은 나라의 비극이다.

 

넷째, 초등 교과서는 한자 학습서가 아니라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좀 더 쉽게 나누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하고 때로는 실천하기 위한 중요한 교재이다. 우리나라는 고급 생활 독해력을 측정하는 국제 경쟁력 평가에서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다양한 책을 제대로 읽는 독서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한자를 병기하면 초등학생들은 더더욱 책 읽기를 싫어할 것이다.

 

다섯째, 한자 병기론자들은 우리말 속에 녹아 든 한자어를 오히려 배격하고 있다. 언어문화와 언어공동체를 풍부하게 해 온 한자어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 녹아든 한자어는 당연히 우리말이며 과학적인 쉬운 한글로 표기하여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육부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쉬운 문자를 만든 세종 정신을 거스르는 반역사적이며 반교육적이며 반인간적인 정책을 중단하고 사과해야 한다.

 

우리의 요구

 

― 교육부는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 방침을 즉각 거두라.

― 초등학교에서는 한자 교육이 아니라 독서 교육을 강화하라.

― 교육부는 교과서 한자병기 정책 입안 책임자를 처벌하라.

 

2014년 10월 7일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

 

 

 

* ‘초등 교과서 한자병기 반대 1000만인 서명 안내’는 생략함

 

 

2015. 8. 3.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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