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부 ‘오늘’] 1943년 2월 22일, 백장미단의 숄 남매 등 처형되다
무릇 모든 압제에는 저항이 존재한다. 그것은 때로 실낱같은 의지로 명맥을 이어가기도 하고 때론 거대한 용암처럼 분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활동의 규모로 저항의 의지를 재단할 수는 없다. 활동의 내용과 무관하게 그것은 늘 죽음을 불사하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치 범죄에 맞선 백장미
세계 제2차 대전 시기의 저항으로는 우리의 독립투쟁이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의 예가 있지만, 독일에서 나치와 맞서 싸웠던 ‘백장미단’(독일어 Weiße Rose 바이세 로제)의 경우는 좀 특이하다. 이들의 저항은 자국을 점령하거나 지배한 적국과 맞선 게 아니라 유대인 학살 등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자국의 지배자를 상대로 했기 때문이다.
폴란드를 점령한 이래 30만 명의 유대인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했다… 독일인들은 아둔한 잠 속에서 이러한 나치의 범죄를 조장한 셈이다… 사람마다 나는 이러한 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나는 양심에 꺼릴 것이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모두가 유죄, 유죄, 유죄이다!”
— 백장미단, 두 번째 전단에서
백장미단은 나치에 맞서 뮌헨 대학교의 대학생들과 그들의 지도교수가 구성한 비폭력 저항 그룹이다. 백장미단은 1942년에 결성되어 1943년 2월까지 나치의 전쟁 범죄를 폭로하는 전단을 만들어서 뿌리는 방식으로 나치에 저항했다.
백장미단은 결성 후 6차례에 걸쳐 전단을 작성하여 대학 내에 살포하였다. 그들은 전쟁의 잔혹함과 반인륜적인 나치에 대한 반대, 관용과 정의에 입각한 유럽의 연합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여섯 번째 전단을 학내에 뿌리던 숄(Scholl) 남매가 학교 경비에게 발각되면서 모든 구성원이 체포되었다.
한스 숄(Hans Scholl)과 그의 여동생 조피 숄(Sophie Scholl), 뮌헨대학교의 학생이었던 알렉산더 슈모렐(Alexander Schmorell), 빌리 그라프(Willi Graf), 크리스토프 프롭스트(Christoph Probst)와 그들의 철학 교수였던 쿠르드 후버(Kurt Huber)가 백장미단의 구성원이었다.
이들 가운데 한스 숄, 조피 솔 남매와 크리스토프 프롭스트는 첫 공판 이후 1943년 2월 22일 처형되었고 나머지 사람들도 두 번째 공판 후 처형되었다. 사형은 이례적으로 단두대에서 집행되었는데 한스와 조피는 처형 직전 각각 “자유여 영원하리.”와 “태양은 아직도 빛난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 한스는 스물여섯, 조피 숄은 스물두 살이었다.
조피와 한스 남매는 백장미단의 중심인물이었다. 1941년, 나치가 유럽인의 유전자 풀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안락사 정책을 벌이고 있었을 때 조피와 한스는 이를 비난하는 아우구스트 폰 갈렌 주교의 설교를 듣게 된다. 그리고 이 젊은이들은 거기에 저항과 실천으로 화답했다.
나치의 정책에 경악한 조피 숄은 주교의 허락을 받고 설교문을 복사하여 뮌헨 대학에 뿌렸다. 게슈타포의 심문에 한스 숄은 자신들의 이름을 유드 네보른과 안네트 둠바흐라고 대답했었고 이 이름은 당시 그가 읽고 있던 스페인 소설 <백장미>의 등장인물 이름이었다. 후일 한스는 전단의 표제로 ‘백장미’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백장미단은 나치 독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저항조직으로 체계적으로 히틀러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들은 아무도 ‘아니요’라고 말하지 못할 때 등사기로 수천 장의 전단을 만들어 ‘전쟁 범죄자’ 히틀러 체제의 부당함을 고발했다.
백장미단의 활동은 이들의 활동과 장렬한 최후를 담은 기록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으로 국내에 알려졌다. 1980년대 초반에 교육 민주화 운동이 시작될 즈음에 교사들 사이에서 이 책은 참교육 운동의 입문서처럼 읽혔는데 교사들은 이 책을 읽고 그들의 용기와 희생에 깊이 감동하였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한스 숄의 누나인 잉에 숄((Inge Aicher-Scholl)이 쓴 백장미단의 활동을 담은 기록이다. 이 책은 담담한 필치로 나치 치하의 독일의 상황과 당대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백장미를 기리는 뮌헨의 길과 광장
이 책은 독일에서 인권에 대한 가치관과 민주에 대한 개념을 정확히 심어주기 위해 수업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1978년 청사가 처음 번역 출판한 이래, 여러 출판사의 판본이 나와 있다.
백장미단의 흔적은 지금도 뮌헨 시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뮌헨의 거대 공립기숙사 단지인 ‘Studentenstadt’는 백장미 단원들의 이름을 딴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길(Christoph-Probst-Str.), 빌리 그라프 길(Willi-Graf-Str.)에 있다.
루트비히-막시밀리안대학교 역시 메인 캠퍼스 근처의 광장들을 “숄 남매 광장(Geschwister-Scholl-Platz)” 및 “후버 교수 광장(Professor-Huber-Platz)”이라고 명명하였다. 또한 칼스플라츠(Karlsplatz)의 광장 바닥에는 백장미 단원들의 이름과 생애, 추모사, 그리고 처형 당시의 신문들을 조각 형태로 찾아볼 수 있다.
조피 숄은 2003년에는 반나치 운동가로는 최초로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 발할라(Walhalla) 신전에 헌정되었다. 아테네 판테온을 모델로 지은 이 기념사원은 게르만 민족의 예술가, 성직자, 과학자 등 191명을 부조로 만들어 기리고 있는 곳이다.
백장미단의 활약은 두 번 영화로 만들어졌다. <백장미>(1982)와 <조피 숄의 마지막 날들>(2005)이 그것이다. 두 번째 영화 <조피 숄의 마지막 날들>은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감독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백장미단이 배포한 다섯 번째 전단에 담긴 뜨거운 절규를 천천히 읽어본다. 70년도 전의 옛 역사지만, 그 메시지는 오늘도 뜨거운 격동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들은 보지 않고 듣지 않습니다. 맹목적으로 거짓말쟁이들을 따라 폐허를 향할 뿐입니다. 그들의 깃발에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라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히틀러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쟁은 이미 패배했습니다.
독일인이여!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이 유대인들과 같은 운명에 처하길 바랍니까? 당신이 거짓말쟁이들과 같은 책임을 지길 바랍니까? 우리가 모든 인류에 의해 증오받고 배척받길 바랍니까? 아닙니다! 여러분으로부터 국가사회주의 하등 인간들을 멀리하십시오! 당신의 행동으로, 당신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새 해방전쟁이 다가왔습니다. 국민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자들이 우리 편에서 싸울 것입니다. 당신이 마음에 두른, 무관심의 장막을 걷어내십시오! 너무 늦기 전에, 결정을 내리십시오! 볼셰비즘의 공포를 뼛속에 각인시켰던, 국가사회주의자들의 프로파간다를 믿지 마십시오!
국가사회주의의 승리가, 독일의 안녕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믿지 마십시오! 깡패들은 독일의 승전을 이끌 수 없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 당신과 국가사회주의와 연관된 모든 관계를 끊으십시오! 비겁하고 우유부단하게 숨은 자들에 대해, 후일 혹독하지만, 지엄한 법정이 열릴 것입니다.
- 백장미단의 다섯 번째 전단, “독일 반나치 운동 전선의 선언문–독일 국민에게 고함” 중에서
2016. 2. 20. 낮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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