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행복한 책 읽기

시 ‘사평역에서’를 다시 읽으며

by 낮달2018 2026. 7. 16.

곽재구 첫 시집 <사평역에서>(창작과비평사, 1983)

*PC에서 ‘가로 이미지’는 클릭하면 큰 규격(1000×667픽셀)으로 볼 수 있음.

▲ 내 서가의 <사평역에서>.(창작과비평사, 1983)
▲ 곽재구 시인의 등단작. 여기 쓰인 그림은 AI 미리캔바스에서 그려준 그림이다.

새벽에 동네 중학교 운동장을 찾아서 1시간가량(요즘은 45분으로 줄였다) 맨발로 도는 걸 일종의 의례처럼 행하게 된 지 7월 말이면 3년을 꽉 채운다. 날씨가 썩 나쁘거나, 아침 일찍 출타할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그걸 빼먹는 걸, 마치 일상의 리듬을 흩뜨리는 것처럼 여기게 될 정도로 이 시간은 루틴이 되었다.

 

라디오나 음악을 듣는 건 아니고,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서 돌다 보면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상념의 내용은 특정할 수 없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가 ‘인지하는 모든 것들’이다. 어떤 것은 성찰로 이어지고, 어떤 것은 회한과 뉘우침으로 다가오고, 또 어떤 것들은 자신을 대견하게 여기게 하는 등, 그것은 만 가지 갈래로 나뉘어진다.

▲ 곽재구(1954~ ) 시인은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했고 신동엽 창작 기금과 동서문학상을 수상했고 순천대에서 가르쳤다.

새벽에 떠올리는 시편들, 그리고 ‘사평역에서’

 

가끔은 가라앉은 새벽의 적막이 일깨우는 감성 덕분인지, 그만그만한 시편을 떠올릴 때도 있다. 감히 시상을 떠올리는 차원은 절대 아니고, 그저 내가 기억하거나, 가르치거나 한 시들 중 어떤 구절을 환기하는 경우다. 중고등학교 때 외웠던 시들을 새삼스레 입속으로 다시 낭송해 보기도 하는데, 놀라워라, 오십 년이 흘렀는데도 내 입에서 그 시구들은 천연덕스럽게 재연된다.

 

그때 외운 시편은 몇 편 되지 않는다. 김소월의 ‘초혼’,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이가림의 ‘빙하기’가 대표적인데, ‘초혼’은 중1 때, ‘목마와 숙녀’는 중3 때, ‘빙하기’는 고교 시절에 외운 시편이다. 시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일종의 겉멋에 취해 있었던 시기에 그냥 멋있어 보여서 암송하게 된 시들이다.

 

성년이 되어서 따로 외운 시는 없다. 30년 넘게 아이들에게 문학 교과를 가르치면서 저절로 외워진 시들이 있긴 하지만, 그건 완벽하게 암송된 것은 아니다. 구조를 중심으로 시를 이해 분석하면 저절로 전문이 암기되는 측면이 있다. 더구나 같은 수업을 여러 반에서 반복하다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런 시의 기억은 오래 가지 않는다.

▲ 사평역은 지금은 폐역이 된 군위군의 화본역과 닮은 그런 시골역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이다. 운동장을 돌다가, 문득 ‘단풍잎 같은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어디로 가는지’라는 곽재구 시인의 시 ‘사평역에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평역에서’는 내가 가르친 문학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았고, 다른 검인정 교과서에 실려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부교재를 통해서 그 시를 배우고 문제를 풀었다.

 

전문을 외우다가, 막힐 때면 스마트폰에서 검색해 들여다보면서 전문을 천천히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이 시를 가르칠 때보다 훨씬 너그럽고 훨씬 다정하게 같은 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우치면서 머리를 주억거려야 했다.

 

42년 전에 산 낡의 시집 <사평역에서>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같은 제목의 시로 당선한 곽재구(1955~ ) 시인은 우리와 동년배다. 나는 그의 첫 시집 <사평역에서>(창비, 1983)를 이듬해 12월에 샀다. 1984년이면 경주의 한 시골 여학교에 부임한 해인데, 책 뒤표지 안에는 ‘본영당서점’이라는 전표가 붙어 있으니, 아마 그해 겨울방학 때 대구에서 산 모양이다.

 

문청(문학청년) 시절을 건너왔지만, 시에는 문외한이라 굳이 시를 찾아 읽는 편이 아닌 내가 그의 시집을 샀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의 시가 좋아서였다. 당시에 내가 쓰던 대학노트엔 <사평역에서>에서 고른 몇 편의 시를 필사해 놓았고, 나중에 이를 컴퓨터 한글 파일로 옮겨놓기까지 했다.

 

어느덧 40년이 훌쩍 지났고, 내 서가의 <사평역에서>는 누렇게 변색해 있다. 대부분 그렇지만, 시인이든 소설가든, 자기 등단작(대체로 신춘문예 같은 공모전 당선작)이 그의 대표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전 생애에 걸쳐 숱한 작품을 낳았는데도 첫 작품이 대표작이라는 건 그만큼 좋은 작품을 쓰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겠다.

▲ 곽재구 시인의 시집과 산문집 등 저서

<사평역에서>가 전하는 서사는 좀 애잔하다. 오지 않는 막차, 쓸쓸한 기차역 대합실의 정경, 설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난한 사람들, 그들의 고단한 삶과 추억, 아픔을 화자는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고단한 삶에 지친, 졸거나 감기에 쿨럭이며, 침묵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화자는 이들이 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우며, 산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가를 공감하고 성찰한다.

 

감각적이고 애상적인 시어로 만들어지는, 우울하고 쓸쓸한 분위기의 정적 풍경은 앞서 말했듯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보다 훨씬 따뜻하고 다정하게 다가왔다. 아마 50여 년 전에는 젊었을 때니 나는 그 애상적 정서에 다소 부정적이었을 수도 있다. 그게 젊음의 특권이기도 한 일종의 ‘치기’거나 과잉이라며 에두르고 말지만.

 

새로 뜯어보는 시어들의 맥락은 아무런 장애도 없이 내 속에서 풀렸다.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같은 유려한 비유와 서술도 편안하게 다가왔다. 실제로 이 시에 쓰인 시구들,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등은 서정시의 전범을 보여주는 표현이 된 듯싶다.

 

‘자정 넘으면 /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같은 시구가 환기해 주는 정서에 나는 푹 젖었다. 아무 근심 없이 거기에 몸을 맡겨도 좋겠다 싶을 만큼. 고단한 삶을 벗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로 동화되면서 마무리된다.

▲ 첫 시집에 실려 있는 '대인동 부르스'와 '소국'

오래 살아남을 서정시 ‘사평역에서’ 

 

적어도 이 시는 한국 서정시의 역사에 오래 살아남는 시가 되리라. 앞서 밝혔듯 <사평역에서>를 읽고 나는 시집에 나온 시 가운데 몇 편을 내 비망록 노트에 옮겨적었다. 광주의 집창촌 대인동의 몸 파는 여인을 노래한 ‘대인동 부르스’, 다방 종업원을 노래한 ‘엄경희’,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 ‘희망을 위하여’ 등이 그것이다.

 

참고로 ‘대인동 부르스’와 이제야 다시 뒤적이다가 눈에 쏙 들어온 짧은 시 ‘소국’의 전문을 붙인다.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한 시인은 신동엽 창작 기금과 동서문학상을 받았고 순천대 문예창작과에서 시를 가르치면서 여러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유감스럽게도 그의 다른 시집을 읽지 못했음을 은근히 뉘우친다. 그러니 그의 시가 어떻게 변모해 갔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가 좋은 시를 써 온 시인이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26. 7. 16. 낮달

 

곽재구 시집

《사평역에서》 (창작과비평사, 1983)

《전장포 아리랑》 (민음사, 1985)

《서울 세노야》 (문학과지성사, 1990)

《참 맑은 물살》 (창작과비평사, 1995)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열림원, 1999)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이가서, 2011)

《와온 바다》 (창작과 비평사, 2012)

《꽃으로 엮은 방패》 (창작과 비평사, 2021)

     -  <위키백과>에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