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눈높이도 맞추지 못하는 ‘비선출 권력’

이른바 ‘대법원 논란’이 자못 심각하다. 국회 과반 다수당인 여당의 공격이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그간 이런저런 사유로 미뤄져 온 ‘논란’이 다시 지펴지는 모양새다. 현 상황이 ‘위기’라고 규정하는 데 대하여 사법부(대법원)에선 정작 그걸 인정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거야말로 이 위기의 본질을 얼마간 드러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법부, 위기인가 아닌가
대법원이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되는 등, ‘사법 농단’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게 2018년이다. 그 핵심은 양승태 사법부의 “‘박근혜 청와대’와 강제징용 및 위안부 민사소송 재판거래 의혹”과 “‘최고법원’ 지위를 안정적으로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헌법재판소 무력화 계획”이었다. [관련 글 : 대법원 사법 농단, ‘이기적 국민’도 알 건 다 안다]
오랜 세월 법관으로 살아온 이들을 기소한 관련 재판이 지지부진 이어지는 7년 후에 다시 이른바 ‘사법 쿠데타’라는 이름의 대법원의 패착이 이어졌다. 윤석열이 임명한 조희대의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한 ‘정치 재판’이었다. 조희대 등 10명의 대법관이 수행한 이 재판은 궁극적으로 ‘이재명의 대선 출마 자격 박탈’을 꾀한 ‘사법 쿠데타’로 받아들여졌다. [관련 글 : 대법원, 대법관의 ‘의자’를 바꿀 때가 되었다]
그러나 조희대의 기대와는 달리 이 쿠데타는 실패했다. 대법원에서는 1심의 유죄 판결이 2심(고법)에서 무죄로 바뀐 이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전원합의체에 넘긴 지 9일 만에 선고를 강행한 이 판결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초고속이었다.
야당의 반발은 말할 것도 없고, 여론도 들끓었다. 이는 대선을 불과 1달여 앞두고 이루어진 명백한 선거 개입, 정치 재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민주당뿐 아니라 시민사회는 물론, 현직 법관들마저 실명 비판에 나설 만큼 후폭풍이 거셌다. 대법원장 조희대는 자신이 주도한 이 쿠데타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이재명을 대선 후보에서 탈락시킬 수 있으리라고 보았을까.
국민의 눈높이에 못 미친 대법원의 ‘사법 쿠데타’
대법원장을 포함한 10명의 대법관이 합세한 이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것은 이들의 눈높이가 국민의 그것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20대에 사법시험(사시)에 합격하여 판사로 임용된 이들은 평생을 사람들의 죄를 심판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이들이다. 언제나 심판자의 자리에 머물면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그들은, 스스로 성찰하지 못하는 한, 일종의 특권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음이 힘들 뿐, 특권에 안주하는 것은 이내 몸에 배고, 그 기득권의 성채에 머무는 건 어렵지 않다. 그것도 판사 가운데 14명뿐인 대법관이 되면, 비록 과중한 재판이 힘겹긴 해도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사법부가 상명하복의 거대 관료 조직이 되면서 대법관 가운데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원장은 사실상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었다.
조희대의 사법 쿠데타는 이러한 배경에서 감행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론에 밀려 실패했고, 이어진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승리하면서 정권이 교체되었다. 12·3 내란으로 윤석열이 탄핵당하여 구속되고, 내란범들이 줄줄이 기소된 상황에서 신속한 재판으로 이들을 단죄하는 게 요긴한 일이었는데도 관련 재판은 지리멸렬을 거듭했다.
관료 조직화된 사법부, 내란 재판은 지리멸렬
그 과정에서 내란수괴 윤석열의 재판을 진행하던 중앙지법의 지귀연 판사는 구속기간 계산을 일수로 해 온 형사소송법의 관행을 깨고 ‘시간’으로 계산하여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했고,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던 검찰은 즉시 항고를 포기하고 대신 그 ‘석방을 지휘’했다. 형량이 무기징역과 사형에 이르는 내란수괴는 석방되어 상가를 배회하고, 영화를 보러 다니고, 지지자들을 선동하는 등의 기막힌 상황이 연출된 것은 그다음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윤석열은 재구속되었지만, 특검의 조사는 물론, 윤석열은 현재 무려 10회나 연속으로 재판에 불참하고 있다. 주당 고작 1차례의 재판으로 흉내만 내고 있는 지귀연 판사는 올해 안에 심리를 마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 일정이 제대로 지켜질지도 의심스럽고, 또다시 그가 석방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개연성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의구심과 불신에 가득 차 있다. 이에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다시 사법부 개혁 의제를 제기했다. 대법관 수 증원,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 다양화, 법관 평가제도 개편, 하급심 판결문 공개 확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등의 사법 개혁안에 대한 사법부의 대응은 좀 심드렁해 보인다.
또 여당에서 지지부진한 내란 재판에 대한 대안으로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를 꺼내자, 야당에서는 이를 ‘사법부 독립과 삼권분립’의 훼손이라며 반대하는 등 논란이 거세다. 내란 전담 재판부 설치가 위헌이라는 주장에 대해 대통령이 왜 그게 위헌인가, 선출 권력과 임명 권력을 같지 않다. 선출 권력인 국회에서 사법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은 가중되었다.

사법개혁 앞에 선 사법부, ‘민주주의 마지막 보루’와 ‘법비’ 사이
선출 권력이 임명 권력에 우선한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국회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여 구성되지만, 사법부는 선출 권력인 대통령이 임명하는 임명 권력이다. 그 우열을 굳이 다툴 필요는 없겠지만, 그 본질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 사법개혁안에 대한 어정쩡한 대법원 입장을 우려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대법관 증원에 대해 대법원은 대법관을 8명 이상으로 늘리려면, 청사 터 매입 비용 1조 원 등을 포함해 1조 4천억 원 예산이 소요된다고 주장하고 있단다. 정작 본질은 내버려두고, 예산 타령으로 증원을 반대하고 있는데, 이는 궁색하기 그지없다. 요컨대 대법원은 증원으로 ‘권력이 분산’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법사위에서 오는 30일 ‘조희대 청문회’를 의결하고, 조희대 청문회에 한덕수·지귀연·대법관들을 증인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대법원 관련 논란은 이러한 사법 불신에 따른 결과인 셈이다. 쿠데타인 12·3 내란의 발생에도 대법원장은 침묵했고, 그 연장선상에 지귀연 판사의 구속 취소 결정이 뒤따랐으며 재판은 9달 이상 하지세월이다.
조희대가 깃발을 들자, 마치 말 잘 듣는 어린이처럼 나란히 한 줄로 하나의 결론에 숟가락을 얹은, 나머지 9명의 대법관 가운데는 ‘800원 횡령 버스 기사’의 해임은 ‘적법’하고, ‘유흥접대 검사’의 면직 ‘취소’ 판결한 오석준 대법관도 포함되어 있다. 버스 기사 재판의 사측 변호사는 그의 고교 후배였다나……. 대법관 추천위원회 구성 다양화가 필요한 이유도 차고 넘친다.
관건은 사법부의 구성원인 법관들이 국민 일반의 눈높이를 살피고, 어떤 방식으로 사법 정의가 실현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성찰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사법부가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가 될 것인지, 이른바 ‘법비(法匪)’, 법을 가장한 비적(匪賊·도적 떼)에 그칠 것인지는 오로지 그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은 국민은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2025. 9. 23. 낮달
'이 풍진 세상에 > 시사 만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내란중요임무종사 한덕수 ‘징역 23년’ 선고가 알려준 것들 (0) | 2026.01.23 |
|---|---|
| ‘초코파이’ 사건 - 절도’와 ‘관행’, 혹은 ‘관용’과 ‘각박’ 사이 (5) | 2025.09.28 |
| 2025, 대구·경북 대선,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8) | 2025.06.06 |
| 대법원, 대법관의 ‘의자’를 바꿀 때가 되었다 (5) | 2025.05.08 |
| 윤석열의 파면을 촉구하는 작가 414명의 목소리 (5) | 2025.03.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