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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196

[오늘] 85세 이승만의 노욕, 민주주의를 유린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60년 3월 15일, 전대미문의 추악한 부정선거 시간이 흐르면서 역사적 사건도 바래어간다. 그 퇴색은 반드시 현재 시각과의 시차에 따르지는 않는다. 사건의 규모나 영향력, 사건의 성격과 범위가 전국을 포괄하는가, 지역에 한정되는가도 변수다. 어떤 것은 잊히고 어떤 것은 왜곡되어 전해지기도 한다. 바래어가는 역사, ‘3·15부정선거’ 아무리 전후 세대라 하더라도 6·25 한국전쟁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그러나 4·3항쟁이나 5·18민중항쟁은 충분히 알려지지 않거나 왜곡된 형태로 이해되기도 한다. 여기에는 사건의 전국적 성격을 외면하고 의도적으로 지역적 범주로 이해하고자 하는 정치 사회적 의도가 개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재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었던 4·19혁명이나 1987년 6월.. 2024. 3. 15.
[오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기업인 유일한, 돌아가다 [역사 공부 ‘오늘’] 1971년 3월 11일,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별세 1971년 3월 11일, ‘버들표’ 유한양행의 창업자 유일한(柳一韓, 1895~1971)이 온 곳으로 돌아갔다. 향년 76세. 정부는 그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였다. 그는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기업경영으로 축적한 부를 사회에 환원한 민족 기업가였고 미 육군 전략처(OSS) 한국 담당 고문으로 활약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또 기업 이익을 사회 환원에 환원하고자 유한공고와 유한전문대학을 세운 교육가였고, 자신의 거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내놓았던 사회사업가였다. 자수성가한 평양의 재봉틀 판매상이었던 그의 부친은 독실한 개신교도로 미국 감리교에서 조선인 유학생을 선발한다는 말을 듣고 1904년, 9살짜리 큰아들 유일.. 2024. 3. 11.
[오늘] 공병우, ‘세벌식 글자판’ 통일 못 이루고 떠나다 [역사 공부 ‘오늘’] 1995년 3월 7일, 한글 운동가 공병우 박사 타계1995년 오늘(3월 7일)은 유명 안과 의사이자 한글 운동가 공병우(公炳禹,1906~1995) 박사가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89세. 안과의사로 특이하게 한글 전용 운동과 한글 기계화와 전산화에 크게 이바지한 공병우는 유언도 남달랐다.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 쓸 만한 장기는 모두 기증하고 남은 시신도 해부용으로 기증하라. 죽어서 땅 한 평을 차지하느니 차라리 그 자리에 콩을 심는 게 낫다. 유산은 맹인 복지를 위해 써라.” 장례 후, 유족들은 후진들의 의학 교육에 도움을 주라는 유지에 따라 그의 시신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해부학 실습을 위해 기증하였다. 그는 죽어서도 자신의 몸을 후학들의 .. 2024. 3. 7.
[오늘] ‘공공선(公共善)’을 위한 열정과 헌신, 소설가 펄 벅 떠나다 [역사 공부 ‘오늘’] 1973년 3월 6일, 소설가 펄 벅 영면하다 1973년 오늘(3월 6일) 이른 아침, 필라델피아 북쪽 벅스 카운티에 있는 그린힐스 농장에서 소설가 펄 시던스트라이커 벅(Pearl Sydenstricker Buck, 1892∼1973)이 폐암으로 숨을 거두었다. 향년 81세. 퓰리처상(1932)과 소설 로 노벨문학상을 받은(1938) 작가였지만 거기 헌신적인 봉사를 더한 열정적인 그녀의 삶은 작가 이상의 것이었다. 전 세계의 신문들이 다투어 그의 부음을 전했고 그의 문학을 소개하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972년 중국 방문 때 동행을 원했던 펄의 요청을 거부했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그녀를 ‘동서 문명의 다리’라고 칭송했다. 펄 벅, 공공의 선을 위한 열정과 헌신 그녀의 장례는.. 2024. 3. 6.
[오늘] 태극기 조선의 정식 ‘국기’가 되다 [역사 공부 ‘오늘’] 1883년 3월 6일-고종 태극기 정식 국기로 선포 국기법으로 규정하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국기는 그 나라의 대(내)외적 상징이다. 성조기(미국)나 일장기(일본), 오성홍기(중국), 삼색기(프랑스) 따위는 그것 자체만으로 그 나라의 정체성과 권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1883년 3월 6일, 조선 정식 국기 선포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바로 배우게 되는 7·5조의 동요 ‘태극기’를 통하여 우리는 태극기로 상징되는 ‘국가’의 존재를 어렴풋이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운동회 날에 온 교정을 가득 채운 만국기의 행렬 속에서 유독 태극기의 존재를 새로이 이해하게 된다. 3월 6일은 1883년 고종이 태극기를 조선의 정식 국기로 선포한 날이다. 그로부터 133년이 흘렀다. 국기의 모습.. 2024. 3. 5.
[오늘] 2·28-대구 고교생들, 이승만 선거 방해 공작에 맞서 일어서다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고교생 민주 시위 1960년 2월 28일 낮 12시 50분, 대구의 고교생들이 정부와 여당(자유당)의 부당한 선거 개입에 항의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시내 중심가로 진출하여,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별들아”, “학원의 자유를 달라”, “학원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튿날까지 계속된 시위는 3·15 마산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1960년, ‘빈사의 민주주의’ 1960년, 13년째 이어진 이승만 독재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빈사 상태였다. 발췌개헌(1952)과 사사오입 개헌(1954)으로 장기 집권을 위한 권력을 강화한 이승만은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선거와 제5대 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었다. 자.. 2024. 2. 28.
[오늘] 은둔의 나라 조선, 강화도 조약으로 ‘나라를 열다’ [역사 공부 ‘오늘’] 1876년 2월 27일, 강화 연무당에서 조일수호조규 체결 1876년 오늘(2월 27일), 강화산성 연무당에서 조선의 접견대관 판중추부사 신헌(申櫶, 1811~1884)과 일본의 전권대사 구로다 기요타카(黒田清隆, 1840~1900, 2대 내각 총리대신)는 조일수호조규를 체결했다. 흔히들 강화도조약, 병자수호조규 등으로 불리는 이 통상조약은 조선이 일본과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면서 불평등조약이었다. 당시 조선은 흥선대원군이 프랑스(병인양요·1866)와 미국(신미양요·1871)의 통상요구를 물리치고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는 등 통상 수교 거부정책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제국주의 세력이 강요하는 자본주의 세계 질서로의 편입을 거부하는 이른바 ‘쇄국(鎖國) 정책’이었다. 은둔의 나.. 2024. 2. 27.
[오늘] 나치에 항거한 백장미단, 히틀러의 칼날 아래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943년 2월 22일, 백장미단의 숄 남매 등 처형되다 무릇 모든 압제에는 저항이 존재한다. 그것은 때로 실낱같은 의지로 명맥을 이어가기도 하고 때론 거대한 용암처럼 분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활동의 규모로 저항의 의지를 재단할 수는 없다. 활동의 내용과 무관하게 그것은 늘 죽음을 불사하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치 범죄에 맞선 백장미 세계 제2차 대전 시기의 저항으로는 우리의 독립투쟁이나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의 예가 있지만, 독일에서 나치와 맞서 싸웠던 ‘백장미단’(독일어 Weiße Rose 바이세 로제)의 경우는 좀 특이하다. 이들의 저항은 자국을 점령하거나 지배한 적국과 맞선 게 아니라 유대인 학살 등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자국의 지배자를 상대로 했기 때문이다. 폴.. 2024. 2. 22.
[오늘] 재일 교포 권희로, 엽총으로 야쿠자를 살해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68년 2월 20일 권희로 사건 1968년 2월 20일, 시즈오카(靜岡)현 시미즈(淸水)시의 클럽 밍크스에서 권희로(權禧老,1928~2010)는 일본 사회의 폭력배, 이른바 ‘야쿠자’ 2명을 엽총으로 사살했다. 야쿠자가 채권자의 부탁을 받아 빚 독촉을 하면서 ‘조센진, 더러운 돼지 새끼’라 욕하자 격분한 것이었다. 범행 후 그는 실탄과 다이너마이트(무기의 출처에 대해 그는 죽을 때까지 입을 다물었다.)를 들고 차량으로 도주하여 현장에서 45km 떨어진 시즈오카(靜岡)현 스마타쿄(寸又峽)의 후지노미 온천여관에 들어갔다. 그는 이후 여관 주인과 투숙객 13명을 인질로 잡고 장장 88시간의 인질극을 벌였다. 텔레비전과 신문으로 매일같이 중계된 이 인질극을 통해 권희로는 자신이 일본에.. 2024. 2. 20.
[오늘] ‘지구가 돈다’, 코페르니쿠스 태어나다 [역사 공부 ‘오늘’] 1473년 2월 19일-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의 출생 2월 19일은 1473년, 폴란드 출신 독일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태어난 날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중세 교회가 지지해 온 세계관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근대 자연과학의 획기적인 전환을 끌어낸 학자다. 그 무렵 유럽에서는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지구중심설, 즉 ‘천동설(天動說)이 유일하게 공인된 세계관이었다. 일찍이 2세기에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ios)에 의해 체계화된 천동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인간은 그 위에 사는 존엄한 존재이며 달 위의 천상계는 영원한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중세의 우주관.. 2024. 2. 19.
[오늘] ‘전사’이고 싶었던 시인 김남주 잠들다 [역사 공부 ‘오늘’] 1994년 2월 13일, 시인 김남주 지다 1994년 오늘(2월 13일), 자신을 ‘전사’라고 자칭했던 시인 김남주(金南柱, 1946~1994)가 파란 많은 저항의 삶을 마감했다. 이날 새벽 2시 30분, 그는 서울시 종로구 평동의 고려병원에서 췌장암으로 쓰러졌다. 9년 3개월간 복역하고 출옥해 온전히 여섯 해를 채 살지 못하고서였다. 향년 48세. 해남의 산골에서 태어나 이른바 지역 명문 광주제일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김남주는 이듬해 입시 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에 반대하여 스스로 학교를 떠났다. 부모의 요구를 관행적으로 따르는 여느 고교생의 삶과는 일찌감치 작별한 셈인데, 그것은 그가 선택한 반골의 삶을 예고한 것인지도 모른다. 저항과 투쟁의 삶, 그는 전사이고 싶어 했다 검정고시를.. 2024. 2. 13.
[오늘] 국군, 거창에서 양민 719명을 학살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51년 2월 9일, 국군 11사단 9연대 3대대, 거창 양민 719명 학살 산청과 함양에서 무려 705명의 양민을 학살한 뒤 인근 거창군으로 이동한 국군 11사단 9연대(연대장 대령 오익경) 3대대(대대장 소령 한동석)는 1951년 오늘(2월 9일), 거창군 신원면 덕산리 청연마을로 들어갔다. 군인들은 가옥에 불을 지르고 마을 사람들을 눈 쌓인 마을 앞들로 끌어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겨냥해 소총과 기관총을 무차별 난사했다. 눈 덮인 논들은 순식간에 검붉은 피로 얼룩졌다. 학살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마을 사람 84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제1차 집단학살, 청연마을 사건) 빨치산 토벌 목적의 견벽청야(堅壁淸野) 작전을 수행한다는 명목의 이 학살은 이후 11일까지 사흘 동.. 2024.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