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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바람과 먼지의 세상, 그 길 위에 서서

이 풍진 세상에 /역사 공부 「오늘」196

[오늘] 거제도 수용소의 포로들, 수용소장을 납치하다 [역사 공부 ‘오늘’] 1952년 5월 7일, 거제도 포로수용소장 도드 준장, 포로에게 납치되다 1952년 5월 7일, 도드(T.Dodd) 준장은 제76구역 포로들이 처우에 불만을 품고 포로수용소장 면담을 요청한다는 보고를 받았다. 도드 준장 보좌관은 포로들의 과격한 행동을 우려한 나머지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도록 포로수용소장에게 건의했다. 하지만 도드 준장은 보좌관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약속 시간에 제76구역 출입구에서 직접 포로대표들과 면담했다. 그런데 면담 도중 갑자기 포로들이 그를 에워쌌다. 곧 포로들은 순식간에 도드 준장을 납치하여 포로수용소 안으로 끌고 갔다. - 박도, 중에서 에 연재된 박도 장편소설 에 그려진 대로 1952년 5월 7일, 수요일에 포로들에게 포로수용소장이 납치되는 전무후.. 2024. 5. 7.
[오늘] 일평생 가난과 싸워야 했던 ‘국민화가’ 박수근 떠나다 [역사 공부 ‘오늘’] 1965년 5월 6일, 국민화가 박수근 떠나다 1965년 5월 6일 새벽 1시,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이 간 경화증으로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자택에서 평생을 가난과 싸워야 했던 고단한 삶을 거두었다. 향년 51세. 4월 초에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했다가 회복이 어렵게 되자 퇴원한 지 하루 만이었다. 그는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어, 멀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고단한 생애를 마감했다. 가난으로 중학교에도 진학하지 못했던 화가는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 일가를 이루었지만 살아생전에 끝내 그 가난을 벗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어릴 적부터 크리스천이었으나 그는 예술적 좌절을 이기고자 과음을 계속한 끝에 신장과 간이 나빠졌다. 그로 인해 왼쪽 눈에 백내장을 앓.. 2024. 5. 6.
[오늘] ‘어린이헌장’(1957)에서 ‘아동권리헌장’(2016)까지 [역사 공부 ‘오늘’] 1957년 5월 5일,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제정·공포5월 5일은 94회 어린이날이다. ‘어린이’는 1921년 소파 방정환(1899~1931)이 처음 쓴 이래 아동을 가리키는 낱말이 되었다. 어린이날은 소파가 조직한 천도교 소년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하여 ‘십 년 후 조선을 려(廬)하라’는 전단을 시내에 배포하고 ‘어린이의 날’의 취지를 거리에서 선전하면서  처음 제정되었다.  [관련 글 : ‘어린이’ 해방의 기수 방정환은 ‘사회주의자’였다] 이듬해(1923) 5월 1일, ‘어린이날’ 기념식을 거행하고 조선소년운동협회 주최의 제1회 ‘어린이날’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이날 ‘어른에게 드리는 글’, ‘어린 동무에게 주는 말’, ‘어린이날의 약속’이란 전단 12만 장이 배포되었다.. 2024. 5. 4.
[오늘] 첫 메이데이(May Day),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역사 공부 ‘오늘’] 1890년 5월 1일, 첫 노동절 행사1890년 오늘(5월 1일)은 역사상 첫 번째 메이데이(노동절)였다. 많은 국가의 노동자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형편에 맞는 형식과 방법으로 메이데이 행사를 벌였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는 1일 총파업의 형태로, 독일과 영국에서는 5월 첫째 일요일에, 다른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저녁 시간 대중 집회의 형식으로 첫 노동절 행사를 치렀다. 노동자들이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며 파업과 시위를 벌이자, 자본가들은 이들의 메이데이 기념 시위가 확산하는 걸 막으려 갖은 애를 썼다. 자본가와 결탁한 국가 권력의 탄압과 방해가 이어졌지만, 노동자들은 행사를 멈추지 않았다.  첫 노동절 행사, ‘노동이 멈추면 세계도 멈춘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2024. 4. 30.
[오늘] 청년 노동자 송학선, 조선 총독 사이토를 찌르다 [역사 공부 ‘오늘’] 1926년 4월 28일, 송학선 금호문 의거그는 안중근을 흠모한 청년 노동자였다 1926년 오늘(4월 28일), 11시께부터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서편의 금호문 부근을 한 청년이 서성이고 있었다. 창덕궁은 이틀 전 세상을 떠난 순종 황제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었고, 금호문이 빈소의 출입문으로 쓰이고 있었다.  일제는 순종의 붕어로 3․1운동 때와 같은 거사가 발생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4월 27일부터 서울 시내의 경찰력을 증강했다. 돈화문 앞에 임시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경찰은 물론 기마 순사와 헌병까지 배치하여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청년은 셔츠에 한복 바지를 입고 평상화를 신고 있었지만 품에는 흰 뼈로 된 손잡이의 칼날이 4촌 5푼가량 되는 고급 과도를 감추고 있었다. 그는.. 2024. 4. 27.
[오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판도라’가 열리다 [역사 공부 ‘오늘’] 1986년 4월 26일, 체르노빌 원전에서 방사선 유출1986년 오늘(4월 26일) 오전 1시 23분(모스크바 기준 시간),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북쪽 104km에 있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제4호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되는 세계 최대의 재앙, 체르노빌 참사(Chernobyl disaster)가 일어났다.  사고는 전원 공급이 상실된 상황에서의 부하 검사, 즉 비상 발전 전원이 들어오기 전까지 터빈의 관성력으로 얼마만큼 발전할 수 있는지에 관한 실험을 진행하다가 일어났다. 부하 검사를 위해 안전 시스템을 해제한 상태인 데다가 원자로 자체의 설계 결함과 조작자의 제어봉 조작 실수로 인하여 통제할 수 없는 연쇄반응이 일어나게 된 것이었다. 체르노빌, 최악의 방사선 유출 사고 출력이 .. 2024. 4. 26.
[오늘] ‘아래아 한글’, 시장에 나오다 [역사 공부 ‘오늘’] 1989년 4월 24일, 아래 아 한글 첫 상용버전 출시 1989년 오늘(4월 24일) 토종 문서편집기(워드 프로세서) ‘아래아 한글’(이하 ‘한글’)의 첫 상용버전 1.0이 시장에 나왔다. 개발자 이찬진이 1988년 서울대 컴퓨터연구회에서 만난 김형집, 우원식, 김택진과 함께 베타 버전인 0.9판을 발표한 지 한 달 뒤였다. 5.25인치 2D(360KB) 플로피 디스크 3장 용량으로 만들어진 ‘한글’ 1.0판은 세운상가의 소규모 유통업체를 통해 정가 4만7천 원으로 출시되었다. 현재 쓰이는 ‘한글’에 비기면 거의 석기시대에 가까운 기능밖에 없었고, 컴퓨터 보급이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일반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한국의 문서편집기 시장에 획기적인 대사건이었다. 286 AT.. 2024. 4. 23.
[오늘] 저임금·어용노조에 폭발한 ‘사북 노동항쟁’ 발발 [역사 공부 ‘오늘’] 1980년 4월 21일, 광산노동자 마침내 일어서다 1980년 오늘(4월 21일) 오후 2시께, 국내 최대의 민영 탄광인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에서 탄광 노동자들의 시위가 일어났다. 70년대 정부의 노동삼권 탄압 등으로 인한 기본권 제약에다 저임금과 어용노조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마침내 폭발한 것이었다. 이후 유혈사태까지 초래한 이 ‘사북노동항쟁’은 회사와 유착된 어용노조의 지부장이 회사의 요구대로 소폭의 임금인상을 결정하자 분노한 노동자들이 지부장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시작되었다. ‘노동귀족, 노조 지부장은 물러나라!’ 4월 19일, 노동자 30여 명은 노조 사무실을 방문하여 ‘노동귀족, 노조 지부장은 물러나라고 요구하고 지부장이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신고를 .. 2024. 4. 20.
60년 전, ‘피의 화요일’, 학생과 시민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 [역사 공부 ‘오늘’] 1960년 4월 19일, 4·19혁명의 불길 타오르다 1960년 4월 19일은 화요일이었다. 전날, 평화적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던 고려대학생들이 경찰과 공모한 정치깡패들의 무차별 테러로 다친 뒤라 분위기는 잔뜩 격앙되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하나둘 국회의사당에 모인 학생들은 선언문을 낭독하고 거리로 나섰고 이내 경무대 방향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피의 화요일' 사망 186명, 부상 6026명 애당초 ‘부정선거규탄’과 ‘학원의 자유’를 외쳤던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는 경찰의 폭력 진압 앞에서 질적 변화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날의 구호는 ‘3·15부정선거 다시 하라’, ‘1인 독재 물러가라’, ‘이승만은 하야하라’ 등 독재정권 퇴진과 민주주의 수호를 요구하는 혁명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2024. 4. 19.
[오늘] 임정 지킴이 성재 이시영 선생 돌아가다 [역사 공부 ‘오늘’] 1953년 4월 17일, 부산 동래에서 별세 1953년 4월 17일, 이태 전인 1951년, 이승만의 전횡에 항의하며 부통령직을 사임하고 은퇴한 성재(省齋) 이시영(1868~1953) 선생이 부산 동래의 임시 거처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그는 “완전 통일의 그 날을 못 보고 눈감으니 통한스럽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시영은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인 이유승의 6형제 가운데 다섯째 아들이다. 8대에 걸쳐 판서를 배출한 명문가였던 이 집안 6형제는 나라가 망하자 3만 섬의 재산(현재 시가로 6백억 원)을 처분한 뒤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6형제의 ‘노블레스 .. 2024. 4. 17.
[오늘] ‘대동세상’을 꿈꾼 동학의 최제우, 형장에서 지다 [역사 공부 ‘오늘’] 1864년 4월 15일, 동학 교조 최제우 참수 1864년 오늘(음력 3월 10일) 오후 2시, 대구 남문 밖 아미산 아래 관덕당 뜰에서 동학의 교조 수운(水雲) 최제우(1824∼1864)가 참수되었다. 죄목은 ‘사도난정(邪道亂正)’, ‘서양의 요사한 가르침을 그대로 옮겨 이름만 동학으로 바꾸고 세상을 헷갈리게 하고 어지럽힌 죄’였다. 1860년 4월 깨달음을 얻고 동학의 가르침을 시작한 뒤 불과 4년 만에 그는 불꽃 같은 삶을 형장에서 마감했다. 향년 40세. 1863년 12월에 체포되어 다리뼈가 부서지는 혹독한 고문을 이겨낸 뒤였다. 두 눈을 부릅뜬 그의 머리는 사흘 동안 대구 남문 밖 길가(오늘날 약전골목)에 내걸렸다. 최제우는 경북 경주의 몰락한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2024. 4. 16.
[오늘] 화성 제암리, 1919년 4월 15일 화성의 3·1운동, 그리고 제암리교회 97년 전 오늘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교회에서 주민들이 일제에 의해 집단학살 당한 날이다. 이른바 ‘제암리 학살 사건’이다. 일제는 제암리 주민들을 모아 예배당에 들어가게 한 뒤 불을 지르고 사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학살로 희생된 사람은 스물셋. 마을은 초토화되었고 이웃마을 주민 여섯도 목숨을 잃었다. 제암리(提巖里,속칭 ‘두렁바위’)는 당시 전체 33가구 가운데 2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순흥 안(安)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제암교회는 이 마을의 안종후라는 청년이 한학을 배우려고 서울을 왕래하다가 아펜젤러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에 귀의하고 1905년 자기 집 사랑방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다. 시대가 시대였.. 2024. 4. 15.